올 겨울은 유달리 날씨가 따뜻하다. 꺼내놓은 패딩도 거의 입지 않을 정도로 겨울이 맞는지 추웠던 날이 언제였지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친구들에겐 아쉬운 겨울이고, 호박이한테는 더없이 좋은 겨울이다. 최소한 추워서 감기에 걸릴 걱정은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에 태어난 아기들은 바깥세상을 볼 기회가 적은데 호박이는 유모차를 개시했다.
병원 치료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카시트를 타 온 터라 호박이는 다행히 유모차도 쉽사리 적응했다. 유모차 위에 조심스레 눕히고 방풍비닐, 다리 부분 커버 등 보온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아파트 주변, 상가 등 가까운 곳을 시험 삼아 돌았는데 미세 진동 덕분인지 호박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주러 나온 것인데 결론적으로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육아에 지친 엄마와 아빠가 코에 바깥바람을 넣게끔 해준 것으로 목적이 바뀐 것 같다.
* 유모차 구입
임신 후반기 유모차를 구매하기 위해 나 홀로 비행기를 탔었다. 비행 목적에 충실하게 운동화에 반바지 트레이닝복을 입고 탔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 당일치기 비행기표를 끊고 한 달간 출석체크, 온갖 제휴 할인 등을 통해서 인터넷 면세점에서 EGG 유모차를 구매했다. 정가 대비 절반 가격이라는데 정가는 200만 원 상당으로 매우 고가... 이런 유모차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절반 가격에 무척 좋은 유모차를 살 수 있다는 와이프의 설득으로 구매했다. 면세점 인도장에서 단단하게 캐리어와 결착시키고 거의 등에 짊어지다시피한 상태에서 후쿠오카 공항에서 2시간을 대기 후 한국으로 다시 입국... 공항버스에서 내린 후 정말 유격훈련처럼 고난의 행군을 했었다. 만약 누군가 동일한 방법으로 유모차를 구매한다고 하면 내가 한 방법을 추천하지 않겠다. 금액적인 할인 혜택은 많을 수 있고 다양한 육아용품을 한번에 구매할 수 있으나, 비행기 값의 최소화를 위해서 혼자 가야 하기 때문에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다.
유모차 개시
설날 연휴 기간을 틈타 호박이를 차에 태워서 정동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출산 직전에 추석이 있었는데 이때 고향으로 내려가기 어려워 서울에서 보냈고, 이 때도 정동으로 나와 브런치를 즐겼다. 그 기억이 나서 또는 그때도 사람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사람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설 연휴 호박이를 차에 태워 정동으로 향했다. 역시 설 연휴 정동을 조용하고 사람이 없어 약간 황량한 느낌도 든다. 평소 자주 가는 카페(정동 루쏘랩)로 향했고, 여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출산 전에는 자리 선정이란 것을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혹시나 시끄러워 보이는 자리 또는 찬바람이 들어올 것만 같은 곳, 호박이가 울면 피해를 줄 것 같은 곳은 모두 피했다. 자연스레 구석 창가 자리만 남아 조심스레 호박이를 안고 주문한 커피를 기다렸다. 얼마만의 가족 나들이인가. 와이프와 같이 걷는 것을 좋아해서 연애시절 또는 결혼 초 많이도 걸어 다녔는데 임신, 출산이라는 큰 변화를 겪으면서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나는 회사라도 가는데 와이프는 아무리 관리사님이 봐주는 시간밖에 나간다고 해도 맘도 불편하고 이리저리 제약이 많았을 것이다)
고맙게도 카페에서 울지 않고 분유를 잘 먹어준 호박이 덕에 짧지만 성공적인 외출을 마칠 수 있었다. 2층 카페 창밖을 내려다보는 호박 이를 보면서 참 기분이 뿌듯하고 좋았다. 그리고 또 길을 지나가면서 행인들의 잘생겼다, 귀엽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뭔가 아빠로서 한 없이 뿌듯함이 느껴졌다. 여러모로 기분 좋은 외출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