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을 나들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기분이 든다. 필자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그런 사람이다. 광합성을 해야 하는 식물 타입 인간 같기도 하다. 감성적인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포장하곤 했었는데, 친한 친구가 "날씨 따라 기분이 바뀌는 거, 그거 단순한 거 아니야?"라는 얘기를 듣곤 반박할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여하튼 단순한 사람이지만 감성적이라며 포장해 보고 싶었다.
더없이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은 설레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을이 길었으면 좋겠지만, 홈쇼핑에서 연신 '매진 임박'을 외치는 것처럼 점점 짧아지는 가을은 조급함을 더한다. 짧아서 더 아쉬움이 남고 사랑하게 되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가을볕을 향유하길 바라며 아름다운 서울 가을 나들이 스팟을 모아봤다. 언제 조기 소진될지 모르는 가을볕을 어서 쟁취하길 바란다.
유산소 운동을 좋아하지만 등산은 왜인지 친해지질 않는다. 낙산공원을 오르는 길, 산책이라 하기엔 다소 힘들 수 있는 애매한 높이를 갖고 있다.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워 정상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있음에도 걸어 올라가곤 한다. 가을바람은 다소 높을 수 있는 산책길에 시원함을 더해주니 이곳을 가기에 딱 좋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유럽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산과 도시가 함께 있는 거라고 한다. 평야가 많은 외국과 달리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선 흔한 도시의 모습이지만, 이방인들이 보기엔 이색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다. 도시를 개발할 때는 꽤나 골칫거리였겠지만, 도심 속 산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훌륭한 힐링 장소가 되어준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푸른 하늘과 높게 뻗은 나무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낙산공원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과거 수도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성벽길은 자연환경과 문화역사를 바탕으로 복원되어 낙산공원으로 재탄생 되었다. 복원된 성곽길은 여러 갈래의 산책길을 만들어냈다.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 흥인지문과 청계천을 만날 수 있고, 혜화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로니에 공원과 대학로를 만날 수 있다. 번화가에서 활기를 즐겼다면 가을밤에 조용함을 찾아 천천히 올라보는 건 어떨지.
이곳은 야경, 노을스팟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가 있어도 해가 진 이후에도, 어느 때여도 매력적이라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필자 역시 어느 시간대에도 좋아하지만, 그중 제일을 꼽자면 볕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는 오후 3시쯤의 낙산공원을 가장 좋아한다. 해가 적당히 밝고 높은 가을 하늘은 낙산공원에서 보는 탁 트인 시티뷰를 한결 더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시야에 걸리는 게 없이 맑은 하늘을 마음껏 만끽하길 바란다.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낙산길41
- 문의 : 02-743-7985
- 운행버스 : 종로03 마을버스 (공원 입구까지 운행)
성수동, 연남동, 인사동 등 핫한 지역의 많은 복합문화공간들은 대게 큰 건물이나 공간을 하나의 컨셉으로 만들어냈다. 짧은 동선 안에 여러 가지의 문화를 즐길 수 있으니 계속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공간의 형태이기도 하다.
서울 한복판, 빌딩도 건물도 아닌 섬 전체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낸 곳이 있다. 서울 도심 속 자연과 조화를 이룬 힐링 아일랜드 노들섬을 소개한다.
한강대교를 지나는 길목, 한강 한복판의 한 섬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밭과 헬기장 등만이 자리 잡고 있는 방치된 섬이었다. 2017년 새로운 노들섬을 꿈꾸며 시작된 공사는 2019년 완공되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완성됐다. 서울 중심가에 있지만 강 위에 있기 때문에 강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다. 한강대교로만 왕래가 가능한 섬은 도심 속 복잡함에서 벗어나 멀지 않은 곳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도심 속 작은 휴양지가 되어준다.
노들섬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생활이 가능하다. 길가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여느 건물이나 빌딩처럼 접근성이 뛰어나진 않다. 하지만 서점, 음식점, 아틀리에 등 섬안에서 하루를 보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니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보기 바란다.
특히 이곳에서는 식물 체험관, 식물 향기 아틀리에, 가드닝 편의점 등 식물을 기반으로 한 문화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식물공간은 자연과 함께하는 새로운 도시문화를 제안하며 대변해 준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난 쉼과 자연을 누리고 싶다면 이번 주말 노들섬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잘 만들어진 실내를 충분히 즐겼다면 밖으로 나가보자. 또 다른 노들섬에 매력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너른 공원은 가을 나들이에 아주 적당한 장소가 되어준다. 푸른 풀밭에서 캠핑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각자의 방법대로 가을을 느끼는 모습은 편안하고도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노들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섬을 한 바퀴 둘러 산책할 수 있는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다. 강물에 비친 반짝이는 가을 윤슬은 산책길을 더 낭만적인 여행으로 만들어주니 천천히 걸어보며 가을을 향유하는 것도 좋겠다.
노들섬은 자연을 즐기는 공원인 동시에 훌륭한 야외 스튜디오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스냅, 노을 스팟이 되어 SNS에 사진이 올라오곤 한다. 섬의 낮은 지대는 가까운 강물과 그에 묻은 해를 담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가 되어준다.
또한 이곳은 야외 스튜디오로서 재미난 요소들을 제공한다. 섬의 서쪽은 여의도 방향으로, 빌딩 숲과 그 사이를 질러가는 철도가 이국적인 해안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니.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이색적인 포토스팟에서 인생 네 컷으로는 모자랄 수 있으니 인생 수십 컷을 건져보길 바란다.
- 주소 : 서울 용산구 양녕로 445
- 문의 : 02-749-4500
위에서 말했 듯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한 지인들도 알고 있을 정도다. 노을스팟을 찾던 찰나에 지인에게 노을 사진을 찍으러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흔쾌히 수락했고, 상세 경로를 묻지 않는 게 잘못이었다. 가벼운 뒷산 정도만 오르면 된다는 지인 말을 듣고 올랐지만, 웬걸 1시간이나 올랐다. 말 그대로 등산이었다... 후문을 들어보니 경로를 얘기하면 가지 않을 거 같아 말을 안 했을 뿐 거짓말은 안 했단다. 여하튼 오르는 내내 탄식이 나왔었다. 나중에 차로 중턱까지 오를 수 있는 경로가 있다는 걸 알고 한 번 더 탄식했던 기억이 있다.
힘들긴 했지만 사실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이 정말 아름다웠기에 지인에게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완연한 가을볕에 묻은 식물들은 푸른빛과 난색의 빛을 고루 띄며 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차를 이용한다면 보다 편하게 들를 수 있으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코스겠다. 뭐가 되었든 취향대로 방문해 보길 바란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에 있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으로, 조선 왕실의 보장처(피난처)의 역할도 하는 곳이었다. 남한산성은 역사에 있어 건물과 건축의 기술, 경관과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보전되고 있다.
방어력을 극대화했다는 건 사각지대를 최소화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탁 트인 시야를 제공했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기가 막힌 '도시뷰 노을 스팟'을 선물했다.
동남쪽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긴 한강과 롯데월드타워, N서울타워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땅거미를 따라 밝혀지는 수많은 조명들은 하늘의 별을 도시에 담아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몽환적이다. 전망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꽤나 오랜 시간 머물렀었다. '불멍', '물멍'에 이어 '해멍'이 시간을 녹일 수 있으니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누리길 바란다.
- 주소 :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780번길 105
- 문의 : 031-743-6610
유난히도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볕, 선선해진 공기, 난색의 식물들은 이 계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면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곳에서 지나는 가을을 만끽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