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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Dec 21. 2015

사랑이 아닌 의무 - 1

# 떠날  수 있을까?



 "떠나고 싶다"

"어디로?"

"모르겠어! 여기가 아니면 어디든 좋겠어"


  어느 날 세상이 싫어질 때가 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걸리적거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말들이 귀에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져 여름 한철 풀벌레 소리처럼 왕왕거릴 때가 있다. 심각한 현기증에 시달리다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흔들어도 눈 앞엔 언제나 절규뿐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혓바닥엔 늘  허연 백태가 끼고 마른 입술로   텁텁하고 씁쓸한 입맛을 맛보고 나면 몇 번의 되새김질에도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내 안의 내가 싫어 미칠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내 삶은  온실 속의 화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남들의 동정을 살만큼 큰 고난과 역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부러진 남의 팔보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성을 내고 곪는 것 같아 많이 아팠을 뿐이다. 사랑이 아닌 의무를 다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결혼 20주년을 맞은 마흔다섯두 딸의 엄마였다.


 자유롭고 싶었다. 훨훨 날지는 못하더라도 내 몸뚱이 하나 내가 책임지고 내 두 발로 자유롭게 쏘다니고 싶었다. 타인을 위한 인내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고 싶었다. 속않이로 병든  살 속을 파고들었던 날카로운 칼자국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자유를 가지려니 놓아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내 심신  하나 편하고 싶다 하니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해야 했다. 나는 에기 저기서 날아오는 돌멩이를 뻔뻔한 얼굴로 맞았다.

그렇게 얻은 자유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집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떠날 수 있을까? '

 꿈을 현실로 끌어오는 일은 심장을 쪼그라들게 한다. 처음이라는 두려움과 시작이라는 설렘이 뒤죽박죽 엉켜 혼란스러웠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로 시작된 배낭여행이었다

가자. 어디로든 일단 한번 가보자.


"왜 인도야?"

글쎄!  왜 인도였을까? 가고 싶다고 노랠 부르던 곳은 산토리니였잖은가!  난 가난했다. 매월 1일 꼬박꼬박 집주인 통장으로 35만 원의 월세를 입금해야 하고, 말일이면 날아오는 각종 고지서를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어야 하는 마흔다섯 세상 물정 모르는 아줌마였다.

또 다른 이유를 대라면 철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살면 살수록 깝깝한 인생공부를 하고 싶었나 보다. 누가 인도에 가는 세 사람 중 하나는 성직자 아니면 철학자 아니면 똘아이라고 했다. 성직자보단 똘아이가 낫고 똘아이보단 철학자가 폼나 보였다. 그래서 나는 철학자가 되고 싶어 인도로 갔다.

 여름 한 달여를  인도에서 보냈다. 47리터의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인도를 쏘다녔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웃고 있었다. 키도 한 뼘쯤 자란 것 같고 뜨거워진 심장은 경쾌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살고 싶어 졌다.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뜨거운 심장으로 살고 싶어 졌다.  내일 또다시 죽음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취해서 비틀거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만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리곤 다짐했다. 다시 인도에 오리라. 사랑하는 두 딸과  인도에서 새해를 맞으리라!

2015년 여름 , 나는 두 번째 인도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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