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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Feb 23.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14

##  기차는 뉴델리를 향해 달린다.

 

"내가 지불한 돈만큼 서비스를 받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현실적이다."



 기차는 뉴델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참새들은 기차역에서 만난 인도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기차역  입구부터 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은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옆에 두고 제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며 주전부리를 하고 있었다. 참새들이 보기엔 길바닥에 앉아 뭐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활방식으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인도의 기차에는 해당 칸의 탑승자 명단을 출입구나 게시판에 게시한다.  우리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게시판 앞으로 갔을 때 커다란 소 한 마리가 질펀하게 오줌 섞인 똥을 싸고 있었다. 소뿐 만 아니라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아무 데나 오줌을 싸 지린내가 진동했다. 소가 역내에  들어온 것도 놀라운데 편안하게 큰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참새들을 경악케 했다. 큰 참새는 구역질을 하며 입을 가렸고 작은 참새는 말도  안 된다는 기막힌 표정을 지으며 허허거렸다.  인도는 화장실 시설이 좋지 않아 사람들은 하수구든 길 가든 아무데서나 소변을 본다. 기차역 내의 화장실은 대부분 돈을 받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은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모여 앉아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다니며  쉬지 않고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었다.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자기가 쏟은 음식물조차 치우지 않는다. 그 옆엔 걸인들이 구걸을 하거나 길게 누워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퍼즐 조각을 맞추듯 붙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놓은 것 같았다. 


 인도의 기차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지만 자기 형편에 따라 좌석을 선택할 수 있다.  급행이나 특급 기차처럼 주요한 관광지를 빠르게 지나는 열차도 있고 장거리 운행을 별로 하지 않는 보통열차도 있다. 좌석은 First  A/C,  Second  A/C,  Third A/C,  3 A/C Economy,  A/C  Chair Car,  First Class, Sleeper,  Seond Seating 의 8등급으로 나뉜다.  단 모든 기차가 8등급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탄 특급 열차는 에어컨 차량만 있고 보통 기차는 2등석만 있는 것처럼 종류에 따리 편성이 달라진다고 한다.  빈부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현장이기도 하지만 내가 지불한 돈만큼의 서비스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현실적이다. 그래도 가장 비싼  First A/C (에어컨이 있는 1등석)과 가장 싼   Seond Seating  ( 2등석)의 가격 차이가 10배 이상이라는 사실은 돈이 사람의 등급을 정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자기 형편과 상황에 맞게 좌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객의 입장에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인도 사람들도 인도 사람을 믿지 못한다."



  인도의 겨울(11월 ~2월)은 여행 성수기다.  더구나 연말이라 기차표를 미리 예약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좌석 등급에 상관없이 남은 좌석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슈퍼 특급(Super Express)  기차인 라지다니 익스프레스(Rajdhani Express) 의 Third A/C  좌석이  남아 있었다. 인도의 기차를 처음 타는 참새들에게는 다행이다 싶었다. 뉴델리까지의 장거리 여행에 좌석까지 불편하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체력 소모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참새들은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잠자리를 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새들은 모두 이층을 선택했다. 참새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층을 주려고 했다. 왜냐하면 일층은 잠들기 전까진 내 자리여도 내 자리일 수 없다. 이층이나 삼층에 있는 사람들이 앉아서 일행과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내 자리를 사수하면 되는데 야멸차게 몰아낼 수가 없다.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없는 3층에서 천장을 이고 눕는 일이 나라도 곤혹스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하얀 시트와 베개가 누런 서류 봉투 안에 담겨 침대마다 놓여 있었다. 관리원에게 담요를 요청하니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건너편 사람은 가방을 열어 담요와 편한 슬리퍼를 꺼내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인도 승객들의 가방이 큰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낭을 좌석 밑으로 밀어 넣고 자물쇠를 확인한 후 배낭과 배낭을  단단히 연결해 묶어 놓았다. '인도 사람들도 인도 사람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소매치기들이 워낙 많아서 여행가방을 쇠사슬로 동여맨 후 자물쇠를 잠가 손목에 연결하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도 있다. 여행객들은 소매치기들의 목표가 되기 쉽기 때문에 자물쇠가 없는 가방은 내 물건이 아니라는 뜻으로 통한다. 내 가방은 절대 열수 없어라는 표시로 커다란 자물쇠를 앞에 달고 다니는 것은 여행의 필수항목이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배낭에는 중요한 물건을 넣어두지 않는 것이 좋다. 돈과 여권은 배에 밀착할 수 있는 전대에, 그 밖의 중요한 것은 작은 배낭이나 가방에 넣고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여권과 돈이 든 가방을 목에 걸고 베개 밑으로 넣었다. 가능하면 사람들 앞에서 가방을 열지 않는 것이 좋지만 열더라도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많은 눈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침대 시트와 베개가 담긴 봉투

 오랜만에 기차여행을 즐기려는 듯 참새들의 재잘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리자 스텝들이 먹을 것을 들고 왔다. BREAD STIC으로 시작된 서비스는 저녁식사로 이어졌고 중간중간 짜이를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일인당 하나씩  지급되는 빨간색 플라스틱 물통 안에는 뜨거운 물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참새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지 잘 먹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콜카타에서는 제대로 된 인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음식만큼은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을 먹도록 했더니 파스타와 피자 같은 이태리 음식과 과일로 배을 채웠었다. 특히 지금까지 으랏차 챠 기운차게 움직이던 작은 참새가 통 먹지를 못해 내심 걱정이 되었다. 불편하다는 투정 없이 웃고 떠들고는 있었지만 한풀 꺾인 기운이 느껴졌다.  나 역시 속이 울렁거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비닐봉지 안에 차곡차곡 음식을 담아 두었다. 어차피 기차 삯에  포함된 것이라 먹지 않으면 나만 손해였다.  나중에 먹을 수도  있으니 저장을 해둔 것이다.  배는 빵빵하고 속은 계속 울렁거렸다. 이제는 그만인가 하고 자리에 누우니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준다. 마치 사육당하는 짐승 같았다. 좁은 기차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계속해서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히터가 들어와 공기까지 후끈하니 답답함이 더했다. 


 스텝들은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청소부는 수시로 기차 안을 쓸고 닦았다 화장실 앞에 서 있으니 잠깐 멈추라고 하더니 크레졸을 뿌려 깨끗이 닦은 후 들어가라고 했다. 음식을 나르는 스텝들도 승객들의 시중을 드느라 좁은 통로를 바쁘게 움직였다. 

저녁 5시 나온 첫번째 간식
저녁 식사로 나온 탈리

"엄마, 화장실 좋은데"

화장실의 청결상태를 확인한 작은 참새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인도 여행을 간다니 친구들이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이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숙소에서도 기차에서도 화장실은 참새들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았다. 기차 안에는 서양식과 인도식의 화장실이 마주하고 있다. 될 수 있으면 불편하더라도 양변기보단 인도식 변기를 사용하도록 권했다. 위생상 양변기보단 인도식 재래식 변기가 더 나을  듯했다.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 인도 사람들은 볼 일을 보고 나서 화장실 내에 있는 물로 뒤처리를 한다. 그래서 가끔 화장실 내의 세면대나 변기 밖에 오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을 갈 때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슬리퍼 보단 운동화를 신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크게 숨을 내쉰 후 들어간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중심을 잘 잡고 볼일을 보고 난 후에는 밖에 있는 세면대에서 깨끗이 손을 씻어야 한다. 


  참새들은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꽂고 영화를 보았다. 출발하기 전에 참새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 서너 편을  다운로드하여 놓으라 했더니  그중에 전지현 주연의 "암살"을 감상했다. 낯선 외국인 세 여자의 쫑알거림이 신기했는지 옆 사람들이 웃으며 쳐다보았다.  특급 기차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점잖고 조용했다. 

 9시가 되자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3층 승객이 잠을 청하려는 듯 계단을 밟고 올라가 자리에 누웠다. 커튼이 쳐지고 양쪽 벽면에 3개씩 매달린  6개의 침대가 하나의 작은 방을 이루었다. 커튼이 쳐진 통로는 깜깜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참새들은 단잠을 잘 수 있을까? 불안한 기차에서의 첫날밤이었다. 


 한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니 스텝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둬들인 물통과 수저들을 씻기도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쪽 구석에는 스텝 한 사람이 종이박스를 깔고 누워 있었다.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는데 위쪽 벽면의 작은 창이 열리더니 스텝 중의 한 사람이 교대를 위해 내려왔다. 다리도 펼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내 스텝들의 잠자리

 

 작은 참새의 코 고는 소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빅토리아 기념당을 거쳐 쇼핑까지 고된 하루였나 보다. 잠이 많은 큰 참새는 일찌감치 머리 끝까지 담요를 끌어올리고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참새들의 쫑알거림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고맙다. 환하게 웃으며 친구 얘기를 하고 함께 고민하는 녀석들! 음악에 몸을 흔들고 낯선 곳에서 낯설지 않게 자기를 지키는 녀석들이 기특했다. 철없는 엄마와 개성 강한 나의 두 딸! 우리는 다시 친구 같은 삼총사가 되어 뉴델리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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