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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Feb 22.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13

##  나를 돌아보는 시간

 "너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란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특별하고 특별하기 때문에 자기를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들도 너를 사랑하고 너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자기애에서 출발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했던 말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나는 늘 외로웠다. 외로우니까 사람인지, 사람이니까 외로운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은 원래 외로운 거야'라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마다 속표지에 짧은 흔적을 남기는 습관이 있는데 가끔 다시 읽게 되어 그 흔적을 만날 때면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흔적들 속의 나는 늘 외롭고 우울했으며 죽음을 향해가고 있었다.


   '정말 죽고 싶었니?' 

 거울 속의 내게 물어보지만 '응'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 나는 아직 살고 싶었다. 죽음을 생각했다면 여기저기 쓸데없는 투정 같은 흔적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을 생각했다면 하루하루 그렇게 열심히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어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참 힘들다. 어느 날  문득 길에서 만난 나는 소통을 원하면서도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좋다. 그 만남 또한 지극히 이기적이고 나 중심적인 만남이지만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나와 관계 맺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나를 꿈꾸게 한다. 특히나 인도 사람들의 깊고 매혹적인 눈은 나를 깊은 심연으로 이끈다. 뚜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더욱 깊어 보이는 그들의 눈을 한참 바라보면 그들 속으로 빨려들 것 같다.  반짝이는 별 하나씩을 눈에 담고 있는 그들의 눈은 언제나 뜨겁게 불타오를 듯도 하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낼 듯도 하다.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린 그들의 미소를 더욱 순수하게 만드는 그들의 눈은 아름다운 세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나는 주로 나이 드신 어르신이나 사리에 얼굴을 가린 젊은 여인들을 사진에 담고  싶은데 곱게 나이 들고 싶은 욕망과 사리 속에 가려진 여인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 욕망이 공존하는 것 같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푸쉬카르의 사막에서 만난 여인R

  이상을 꿈꾸지만 이상을 향해 가는 현실에 살고 있다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면 사람들 속으로 가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이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나와 소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자기애를 말했던 것은 자기애를 잊지 않기 위한 자기 최면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어.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해"

  그것은 세상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나를 현실에 붙잡아둔 힘이었다. 꿈을 꾸는 것 조차 사치라고 느낄 때마다 떠오르는 죽음을 향한 동경은 불안하고 우울한 일상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강하게 밀어낸  트라우마는 더욱 강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악마의 모습으로 내 주위를 맴돌다가 내가 나약해진 틈을 비집고 들어와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유혹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었다. 불완전한 여자는 어렵게 얻은 두 딸을 안고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너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란다."

  

콜카타의 거리에서 만난 생각하는 남자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몸속에 있는 청춘을 조금씩 내주고 내  청춘의 기억을 다듬는  것이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잔주름만큼 줄어드는 웃음으로 얼굴은 보기 싫게 굳어져 간다. 흘러가는 시간을 움켜쥐고 싶은 마음에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던 내가,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들이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 듦을 거부할 수 없으니 당당하게 마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왕이면 이쁘게 시간을 따라가고 싶었다.


"엄마, 왜 이렇게 늙었어?"

  나를 볼 때마다 작은 참새는 타박이다. 원래 화장을 잘 하지도 않는데 어쩌다 민낯을 보게 되면 서운할 만큼 구박을 해댄다. 아이는  언제나 젊고 예쁜 엄마로 남아있길 바라는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엄마도 고운 한복을 입은  마흔셋에서 멈췄으니 아이도 내가 가장 이뻤던 순간만을 기억하는 것 같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편안하게 나이 들고 싶다. 내 안의 내가 편안해서 나를 보는 사람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 거울 앞에 서기 때문이다. 

나는 규칙으로 꽉 채워진 사람이다. 삶의 순간순간에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위한 기준을 정하며 살아왔다.  그중에 하나가 내 인생의 기점을 마흔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마흔이 넘어도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면 이건 분명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마흔이 넘어 같은 말을 세 사람에게 듣는다면 그게 나이므로 인정해야 한다.

마흔이 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인생을 돌아봐야 한다. 등등


 마흔을 넘기면서 내 마음에 다섯 개의 바구니를 만들었다.  다섯 개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바구니 안에 들여놓을 것들을 선별하고 나머지는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대신에 언제든 나를 담을 수 있는 바구니 하나는 비워두었다. 눈을 감고 바구니 속에 몸을 숨긴 나를 온전하게 안을 수 있는 나만을 위한 가장 큰 바구니를 갖고 싶었다.  하나를 덜어내면 새로운 하나를 채워 넣었다. 덜어내는 것에 미련을 두지는 않았다. 매 순간마다 망설이고 두려움에 머뭇거렸지만 덜어내고 나서는 돌아보지 않았다. 새롭게 채워 넣은 것들을 사랑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콜카타의 거리의 구두장이
톨스토이를 떠오르게 하는 콜카타의 구두장이


 마흔을 넘기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예전보다  유연해졌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책임지려고 했던 교만을 버리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불편을 느껴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잘 돌아갔다. 마흔이 넘어서야 정육면체의 내 세상이 둥글게 변하고 있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 속으로 들어가니 세상은  지극히 공평했다. 나는 세상 안으로 들어가 있지만 또 다른 세상 밖에서 그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인도박물관 앞에서 만난 평온함


 사람이 좋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면 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사진을 찍으라고 자세를 잡으며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계속하면서 "노 프라블럼"으로 답했다. 나는 태블릿 pc로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모든 삶이 다르다. 삶을 어떻게 마주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내가 만들어진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뉴델리행 기차를 기다리며 사진을 정리하다 사진기를 들어 나를 담아보았다. 참새들은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뉴델리로 향할 특급 열차 라지다니 익스프레스(Rajdhani Express)가 우리에게  어떤 인도를  선물할지 기다림이 조바심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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