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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Feb 26.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16

##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무언가 어제와 다른 나를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았다."


 새해 첫날 아침이 밝았다. 메인 바자르 거리는  사람들이 밤새 남기고 간 흔적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서 양 쪽에 발 하나씩을 담그고 불확실한 오늘을 어제와 구분해 놓은 시간의 경계를 상기하고 있었다.  델리의 하늘은 맑았다. 새 유리를 갈아 끼운 듯 반짝이는 태양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달라고 보채는  듯했다. 무언가 어제와 다른 나를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았다.


2016년 1월 1일 인도 영자신문

열심히 비질을 하는 거리의 청소부를 바라보며 따뜻한 짜이(Chai)를 마셨다.  온 거리가 쓰레기통인 인도를 쓸고 닦으며 지켜내는 사람들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자기 집은 열심히 쓸고 닦는다. 이른  아침부터 여인들은 빗자루를 들고 물청소를 하며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집 안팎을 쓸고 닦는다.  그런데 왜 집 밖을 나서면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한 상인들은 일찍부터 가게문을 열고 열심히 물건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골이 잔 뜻 난 듯한 굳은 얼굴로 맨발로 드나들어도 될 만큼 하얀 대리석 바닥을 닦아내는 상인들의 묵직한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 오가는 사람도 없는데 아이들 목에 걸면 좋을 듯한 원숭이 인형을 바닥에 늘어놓은 젊은 상인도 있었다. 저걸 누가 살 까 싶은데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가 원숭이 인형을 들고 사랑스럽게  가슴에 품었다. 부지런한 참새의 하루는 길고 풍성하다는 것을 배운 순간이었다.

  뉴델리에서 맞는 새로운 2016년을 기억하기 위해 인도에서 가장 큰 영자신문인 "THE TIMES OF  INDIA"를  5루피에 샀다.  새해  첫날 발행되는 신문 1면에 전면광고라니!  찬란하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나 희망찬 새해를 맞는 사람들 혹은 원숭이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역시 인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사면서 참새들이 태어나던 날 발행된 신문을 스크랩해두었던 기억이 났다. "네가 태어나던 날 세상엔 이런 일이 있었단다." 신문을 펴 들고 순백의 모습으로 웃고 있는 갓난아기에게 주절주절 떠들었었다. 시간이 흘러 잘 정리된 두 권의 앨범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던 참새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랩에 쌓은 배꼽과 너무나도 작고 귀여운 발도장을 꺼내 들고 "내가 이렇게 작았어?" 신기한 듯 바라보던 아이들이었다. 활자를 좋아하는 큰 참새는 신문을 펼쳐 들고 베이징대학에서 연설을 하던 김대중 대통령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누구야?" 물었었다. 어느새 정말 작아서 깨질 것 같던 아가들은 자라는 줄도 모르게 훌쩍 자라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고 있었다.


 작은 참새는 은근한 감기 기운을 안은 채 아침을 맞았다. 추운 듯 춥지 않은 듯 긴소매 옷을 입으면 덥고 짧은 소매 옷을 입으면 서늘한 냉기가 감도는 날들이었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한 한기가 여행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흰죽이 먹고 싶다는 작은 참새를 위해 포리 지를 룸서비스로 주문했다. 포리 지는 곡물을 잘게 빻아 물과 우유를 넣어 끓인 죽요리였다. 흰죽에 가장 가깝고 아침식사 대용이나 환자들에게 많이 먹는 음식이다. 두어 번 숟가락질을 하던 참새가 쟁반을 밀치고 누워버렸다. 다시 작은 참새를 일으켜 앉혀 놓고  달래 가며 포리 지를  떠 먹였다. 오늘은 인도 문과 붉은 성을 가려했다. 하지만 작은 참새의 몸 상태를 보고 움직여야 했다. 작은 참새를 침대에 눕히고 큰 참새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나왔다.

행복한 요리사

인도의 길거리 음식은 정말 싸고 맛있다.  마살라로 맛을 낸 삶아 으깬 감자를 삼각형의 만두 모양으로 만들어 튀겨 낸 사모사(Samosa), 여러 가지 채소를 마살라 맛 반죽에 넣어 튀긴 빠코라(Pakora), 삶아 으깬 감자를 찹쌀 모찌 모양으로 빚어 철판에서 구운 후 잘게 썬 양파, 고추와 매운 소스를 곁들여 먹는 알루 촙 (Aaloo Chop), 묽은 밀가루 반죽을 끓는 기름 위에 흘려 고리 모양으로 튀긴 후 달콤한 설탕물에 담근 젤라비, 한국의 백설기 같은 찐빵 이들리(idli) 등 간단한  간식거리부터 생선요리,  양배추와 양파, 당근에 면을 넣어 볶은 초면과 볶음밥까지 다양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초면을 선택했다. 양에 따라 20~30 루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20루피의 초면도 양이 많았다. 팬을 달구는 요리사에게 양배추를 많이 많이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노 프라블럼!".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 썰어 놓은 양배추와 양파, 당근을 볶다가 삶아 놓은 면을 크게 한 줌 집어넣고는 재빠르게 주걱으로 휘젓는다. 거침없이 역동적으로 요리하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행복한 사람이 만든 초면은 정말 맛있었다. 먹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요리였다.

알루  촙
젤라비
빠코라


사모사
" 그의 눈에 반짝이던 진실을 믿고 싶었다. 아니 바보가 되기 싫어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


 "인도에 오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뭐야?"

"헤나"

"헤나?"

"응!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보면 신기하더라고. 문신 같기도 한데 몸에 멋진 그림을 그린다는 게 신기했어."

"그럼 헤나 하러 갈까?"

"엄마도?"

"아니 엄마는 별로...... 몸에 뭐 칠하는 거 싫어!"

 큰 참새는 어릴 때부터 기하학적 문양이나 독특한 그림을 좋아했다. 나를 따라 미술 전시회를 가면 작은 참새보다 진지하게 그림 앞에 머물곤 했다. 누군가의 간섭도 싫어해서 작은 참새가 내 옆에 꼭 붙어 다닐 때 저 혼자 조용히 사라져 작품을 감상했다. 나는 헤나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내 몸에 다른 덧칠을 하는 것이 싫기도 하고 선명했던 그림들이 지워질 때의 추함이 싫었다. 청순한 모습으로 내려와 진흙탕을 만들며 천덕꾸러기가 되는 눈을 보는 일이 가슴 아픈 것처럼 불완전한 흐트러짐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고 버겁다.  

 

눈치 빠른 장사꾼들은 헤나를 찾아 기웃거리는 우리를 금방 알아보았다. 청바지에 청색 니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헤나를 하고 싶다는 우리에게 자신을 헤나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그를 따라 길가에 있는 그의 작은 가게로 갔다. 가게라 봐야 길가에 세워진 커다란 간판과 플라스틱 의자가 전부였다.  한쪽으로 헤나를 위한 염료들이 놓여 있었다. 다양한 모양의 헤나를 한 여행자들의 사진을 넣은 앨범을 펼치더니 어떤 문양을 원하는지 고르라고 했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니 앨범 맨 앞장에 있는 가격표를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싼데!"

 그는 자신이 헤나 전문가임을 연신 강조하며 자기를 믿고 맡기라고 했다. 깊은 그의 눈 속에 진실의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여기서 할까?"

"응"

헤나로 완성된 공작
헤나 가격표

큰 참새는 소매를 걷고 하얀 팔을 내밀었다. 복잡하고 흉측한 것은 싫고 단순한 문양을 원한다고 했더니 자기가 알아서 멋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의견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길게 말을 늘어놓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모르는 분야는 무조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일이 진행되는 동안은 토를 달지 않는 나였다. 그는 정성스럽고 조심스럽게 그림을 그려갔다. 작은 꼬갈 모양의 튜브에서 실처럼 흘러나오는 갈색 액체가 부드럽고 고운 선을 만들며 춤을 추었다.  유난히 하얀 큰 참새의 팔 위로 인도의 국조인 공작이 우아하게 둥지를 틀고 있었다. 큰 참새와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를 칭찬했다.

"당신은 진정한 아티스트군요!"

"당신의 재능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완성된 그림을 드라이기로 말리고 칼로  긁어내고 나니 그제야 공작이 가벼운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젊은 아티스트는  값을 지불하려는 우리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채 기다렸다. 잠시 후 반지르르하게 생긴 한 남자가 오더니 큰 참새의 팔에 줄자를 대기 시작했다. 뭐하느냐고 물으니 사이즈를 재고 있단다.

"사이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으니 다시 가격표를 보여주며 "Price Per Inch"르 손으로 가리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왜 그걸 보지 못했을까! 나는 그들의 행동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Two thousand four hundred rupee"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지금 얼마라고 했니?"

너무 놀라 큰 참새를 쳐다보았다. 큰 참새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2,400 루피면 6일 치 방값이었다. 기가 막혔다. 우리에게 그는 이미 헤나 아티스트가 아니라 헤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에 반짝이던 진실을 믿고 싶었다. 아니 바보가 되기 싫어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2,400루피가 맞냐고 다시 물으니 능글능글 웃으며 맞다고 가격을 확인해줬다.  헤나 가격을 모르고 일을 저지른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타협 끝에 2,000루피를 주고 돌아서면서 멍청이처럼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뭔가 찝찝했다. 돌아서는 뒤통수가 근질거리고 등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기분 나빴다. 3미터쯤 걸어왔던 것 같다.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좀 전의 그가 헤나가격으로 얼마를 불렀는지 물었다. 2,400이라고 답하자. "오 마이  갓!"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마를 쳤다. 큰 참새의 팔을 보더니 200 루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당신, 당신 말에 책임질 수 있어?"

 그는 다그치는 듯한 나의 말에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자기 가게로 오면 200루피에 해주겠단다. 이런 젠장! 방금 찝찝한 헤나를 하고 나왔는데 다시 헤나를 하라고? 다 똑같은 사기꾼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미 돈은 지불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큰 참새는 내 팔을  잡아끌며 그냥 가자고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숙소로 돌아왔다.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작은 참새는 기운을 차리고 앉아 있었다.

"좀 어때?"

"괜찮아졌어. 엄마, 나 배고파."

"뭐 시켜줄까?"

"아니 나가고 싶어. 힘들게 왔는데 이렇게 누워 있는 게 너무 아까워!"

 나의 작은 참새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언니와 15개월 차이를 두고 태어나 오롯이 아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큰 참새와 달리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도 좋아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서 자기관리도 철저한 녀석이었다. 가끔 가무잡잡한 피부에 쌍꺼풀 없는 눈과 작은 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자신을 가꾸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둘째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기에 녀석의 마음을 헤아려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새로 생긴 한국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식당 안에는 젊은 여주인과 먼저 온 한국 여행자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주인장이 새해  첫날이라고 떡국과 잡채를 내 왔다. 인도에서 새해  첫날 떡국을 먹을 줄은 몰랐다. 떡국을 먹으면서도 헤나에 대한 불쾌함이 가시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주인장에게 이곳 헤나 가격을 물으니 200루피란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갈 걸! 하지만 후회는 늘 늦게 온다. 그래도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헤나꾼을 찾아갔다.

"돈 돌려줘! 당신은 나를 속였어!"

유창한 영어로 멋지게 하고 싶은데 내 입에서는 한국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작은 참새까지 합세하여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곳 있는 헤나 가격을 다 알아봤는데 200루피가 맞다더라. 당신은 내게 나머지 돈을  돌려줘야 해.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를거야."

헤나꾼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맞받아쳤다. 자기가  사용하는 염료는 자기가 직접 만든 특별한 천연 염료라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커지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헤나꾼은 당황하는 듯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렀다.

"당신 2,400루피짜리 헤나 할래?"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낯선 인도 땅에서 겁도  없이 무슨 생각으로 눈을 부라렸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를 화나게 한건 헤나꾼의 눈에 반짝이던 별 때문인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헤나가격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쫓느라 헤나꾼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  돌려줄 수는 없고 반만 돌려주겠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한국말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뭔 그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와중에도 그는 내 입을 가리키며

"당신은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활짝 웃으세요"

라고 말했다. 이와 중에 웃으라고? 나는 더욱 화가 났다.

"네가 만약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당신이 헤나  사기꾼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이 자리에 매일매일 서 있을 거야"

 목소리를 높이고 인상을 쓰며 두 발을 벌린 채 발을 세게 굴러댔다. 헤나꾼은  난감해했다.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의 친구들이 다가오더니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의 형이라는 사람도 전화를 받고 달려왔는데 화를  내기는커녕 실실 웃으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헤나꾼이 조금은 불쌍했지만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돌려 줄게요"

헤나꾼은 1,500루피를  건네주었다. 돈이 적다고 하자 나와 작은 참새를 가리키며 헤나를 해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해 첫날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았다. 작은 참새가 헤나꾼 앞에 앉아 팔을 내밀었다. 작은 참새가 헤나를 하는 동안 헤나꾼은 나를 보고 이제는 웃으라고 말했다. 나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그랬더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very good"이란다. 정말 기가 막혀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헤나꾼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정말 멋진 아티스트야! 근데 거짓말은 하지 마!"

그는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나도 웃으며 악수를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

마른 헤나를 긁어내는 모습

 가끔 내가 아는 모든 사실이 진실이길 바랄 때가 있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에 진실은 존재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진실이라고 믿고 마음을 다한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진실 따위는 묻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다. 내가 진실하면 언젠가는 진실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하고 싶다.  

 헤나 사건은 웃음을 담은 악수로 끝이 났다. 새해 첫날 벌어진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겨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끝까지 웃음을 보이는 인도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한편으론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닮고 싶었다. 우리는 삼거리로 나와 릭샤를 타고 인도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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