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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Feb 29.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17

##  새해 첫날 인도문에서

    건조하다. 우기(6월 ~ 9월)의 인도는 물에 잠긴 듯한 눅눅함과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곁을 떠나지 않았었다. 숙소 밖의 기온보다 더 낮게 에어컨을 틀어놔도 가시지 않던 습한 공기가  온몸에 이끼를 자라게 했었다. 그러나 건기(11월 ~2월)의 인도는 뿌옇게 일어나는 마른 먼지가 버석거렸다. 내 몸에 있는 물기를 모두 빨아들이고 그 자리에  음산한 냉기를 채워 넣는  듯했다. 피부는 바짝바짝 말라갔다. 쪼리를 신은  뒤꿈치는 쩍쩍 갈라졌다.  갈라진 틈을 비집고 자리 잡은 검은 먼지는 가려움과 약간의 통증을 느끼게 했다.

 

 인도문으로 향하는 릭샤왈라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새해를 맞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온갖 탈 것들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릭샤왈라는 대로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요리조리 날렵하게 좁은 골목을 달리면서도 무슨 곡예를 즐기듯 흥얼거리며 자신의 운전 실력을 자랑했다. 스카프로 입과 코를 가린 우리들은 들썩이는 엉덩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인도문
인도문을 지키는 경찰

 한산했던 여름에는 인도문 앞까지 릭샤가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새해  첫날 사람들의 홍수로 자칫 하다가는 압사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날이었다.  큰길에 릭샤를 세운 릭샤 왈라는 1시간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200루피 왕복 요금을 주기로 하고 탄 릭샤였다.

 길 건너에 보이는 인도문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인간 홍수"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길 하나 건너는데도 줄을 서고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외국인에게는 호의적인 인도 사람들이다. 어리바리 허연 얼굴을 한 동양 여자 셋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치켜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참새들도 이제는 적응을 한 듯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대신에  새치기하는 사람들이나 무지막지하게 밀어대는 사람들을 제지하거나 먼저 가라고 길을 내주기도 했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웃으며 감사를 표시했다.

 인도문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인도 병사의 위령비이다. 전후 인도 독립을 조건으로 영국에 협력하여 참전했지만 독립을 실현하지 못한 채 큰 희생만 치렀다. 인도문 벽면에는 전몰자 1만 3,50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인도문 서쪽으로 라지 파트(Raj Path)가 건설 당시 인도 총독관저로 사용되었던 대통령 관저까지 뻗어 있다. 관저 양쪽으로 사우스 블록, 노스 블록 정부합동 청사, 원형의 국회의사당이 서 있다. 1월 26일 공화국기념일에 성대한 퍼레이드가 열린다고 한다.

군고구마 장수

 인도문 광장에는 대목을 노리는 장사꾼들이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을 만큼의 간격을 두고 판을 벌이고 있었다. 장사꾼 나이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남녀노소, 파는  물건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구운 옥수수에 소금과 라임을 발라주는 여인, 고운 빤을 파는 소년, 검은 종이 뱀 장난감을 파는 소년, 사모사, 알루 촙, 팝콘 장수 등 나들이를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나들이를 포기한 그들은 두둑해진 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며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 맞은편에서 그들의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군고구마다"

"인도에도 고구마가 있네!"

 참새들은 신기한 듯 환호성을 지르며 군고구마 장수에게 달려갔다. 벌건 숯불 위에 쌓인 고구마가 모락모락 작은 연기를 피우며 익고 있었다. 고구마는 고구마 축제가  열릴 만큼 감자와 함께 인도 사람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식재료이다. 어릴 때 화로나 아궁이에 구워 먹던 고구마가 생각났다. 노릇노릇 잘 익은 고구마를 식히느라 호호 호들갑스럽게 입김을 불어 댔었다.

 그런데 인도의 군고구마는 왠지 뜨거울 것 같지 않았다. 숯불을  파고들어 익히는 우리네 고구마와 달리 숯불 위에서 은근히 익어가는 모습이 설익는 고구마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구마 장수는 우리가 다가가 신기해 하자 구운 고구마의 껍질을 벗겨내고 칼로 한 조각 베어 건네주었다. 노란 고구마가 생각보다 달았는데 역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고구마 특유의 맛은 나지 않았다. 참새들도 신기할 뿐 사 먹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군 옥수수를 파는 여인

 도전적인 어찌 보면 거만한 자세로 앉아 옥수수를 굽는 여인이 있었다. 옆에는 그녀의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인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구운 옥수수가 내 입에는 잘 맞지 않는다. 옥수수 알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지도 않았고 소금과 라임의 독특한 맛이 익숙지 않아 손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숯불을 피워 놓고 앉은 여인에게 눈길이 갔다. 인도의 상인들은 대부분 불친절하다. 어딜 가나 물건을 툭툭 던지듯 건네고 물건을 팔기 위해 굽신거리는 것도  없다.

' 네가 필요하면 사고 아니면 말고 ' 이런 식이다. 나한테만 이러나 싶기도 하여 불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원리원칙대로 정직하게 자신의 물건을 팔고 이익을 얻는 그들만의 표현방식 같다.

아이스크림 장수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인도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는 것으로 인도문 구경을 마쳤다. "HAPPY NEW YEAR 2016"

  인도문 앞에서 새해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추억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밀고 들어가 인도문 앞에서 환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엿보였다. 참새들은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엄마, 우리 이러다 장렬히 묻히겠는걸!."

작은 참새가 엉덩이를 삐죽거리며  사람들을 살짝살짝 밀어냈다. 귀여운 녀석!

"빨리 나가자. 엄마"

"그래"

큰 참새와 나도 작은  참새처럼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장난감 뱀를 파는 소년

인도의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한낮에는 햇볕이 따뜻해서 초여름 같은 날씨를 보인다.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오니 주변 열기는 식었지만 땀이 났다.

"엄마,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어요."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작은 참새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나와 큰 참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하나에 35루피! 길거리에서 파는  초면 하나 보다 비싼 값이다. 한 끼  식사보다 비싼 아이스크림이지만 인도에서 얼음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엄마, 저렇게 어린애가 장사를 하고 있어!"

버건디 자킷을 잘 자려 입은  10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장난감 뱀을 팔고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종이뱀을 움직이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부모님을 돕고 있겠지!' 물어보지도 않고 내 맘대로 생각을 했다.

빤을 파는 소년

"엄마, 저게 뭐에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열 두어살 쯤 돼 보이는 소년이 빤(Pan)을 팔고 있었다.

"참새 보기엔 뭐 같니?"

"예쁜 꽃 같기도 하고 ......"

인도사람들이 돌돌 말아 씹는 구강 정화제였다. 인도는 담배값이 비싸서 하층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은 비리라는 엽궐련을 피운다고 한다. 빤은 심장모양으로 생긴 커다란 킴마 잎에 다양한 향신료와 견과류를 싼 것이다. 입담배와 허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인도 사람들은 빤을 돌돌 말아 씹고 나서 요상한 모양으로 아무데나 뱉어낸다.  건물의 구석이나 기둥엔 어김없이 붉게 물든 빤의 흔적이 남아있다. 빤을 씹은 인도 사람들의 혀와 치아사이는 붉게 물들어 마치 썪은 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어떤 맛일까 궁금하지만 치아가 보기흉하게 물들까봐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아무데나 "찍찍"거리며 침을 뱉는 경망스런 모습이 더러워 더더욱 싫었다. 빤에 마약 성분이 있는 환각제를 넣어 팔기도 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는 겁이 덜컥 나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 번 먹어보고 싶어."

호기심 많은 작은 참새가 관심을 보였다. 오, 이런! 허락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하고 있는데 큰참새가 작은 참새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팔을 잡아끌었다. 큰참새가 얼마나 고맙던지!

즐거운 릭샤왈라

 우리를 태우고 왔던 릭샤왈라를 만나 메인 바자르로 돌아가야 했다. 릭샤왈라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우리를 발견한 릭샤왈라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를 두고 간 줄 알았다고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릭샤왈라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상점 한 군데를 들르자고 제안했다. 호객행위인 줄 알고 미간이 찌푸려지려 했는데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잠깐이라도 들러 주면 자신의 릭샤에 기름이 채워진단다. 즐거운 릭샤의 콧노래를 계속 듣고 싶다는 생각에 흔쾌히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고급스러운 사리와 카펫을 파는 상점을 잠깐 들렀다가 숙소로 릭샤를 돌렸다. 릭샤왈라는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노 프라블럼" 작은 참새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참새들은 델리를 정말 좋아했다. 무엇보다 공기가 좋고  먹을거리도 많아 편하다고 했다. 물론 잘 터지는 와이파이도 한 몫했다.

"이제 인도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이제 정말 적응했어!"

참새들은 인도 여행 5일 만에 인도안에 들어왔다. 우리들의 남은 여행이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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