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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Feb 29.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18

## 세 번 만에 만난 붉은 성

 "이번에는 허탕 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 길을 나섰다."

델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새벽에는 푸쉬카르(Pushkar) 사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지메르(Ajmer)로 떠나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했다. 인도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참새들과 함께 랄 킬라(Lai Qila), 또 다른 이름 붉은 성(Red Fort)을 가기로 했다.  지난번 여행에서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한 곳이었다. 한 번은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뚫고 왔는데 공사 중이었고, 또 한 번은 8월 15일 독립 기념식이 열려 들어갈 수 없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힘없이 되돌아오는 일이 없었을 텐데 손해 볼 것 없는 릭샤왈라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우리를 붉은 성 앞에 내려놓았었다.

 한국의 설 연휴가 생각나서 혹시나 휴관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는 허탕 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 길을 나섰다. 델리 역 반대편에 메인 바자르 끝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까지 가기로 했다. 찬드니 초크에서 붉은 성까지 이어지는 올드델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의도였다. 12루피를 주고 지하철 승차권을 끊었다. 두 번째 타는 지하철이라 설렘도 두려움도 덜어져 웃고 떠들며 편안하게 나를 맡길 수 있었다.

찬드니 초크거리

  1911년 콜카타에서 델리로 영국령 인도의 수도가 옮겨지면서 영국인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가 20년에 걸쳐 뉴델리를 건설했다. 영국인들의 생활의 편리를 위해 건설된 관청과 주택, 고급 호텔 그리고 그 주변으로 형성된 상업지역이' 뉴델리'를 만들었다. 반면 붉은 성을 중심으로 한 이전의 델리는 자연스럽게 '올드델리' 라 불리게 되었다.

찬드니 초크는 금은 세공 바자르(시장)가 있어 "달빛 거리""은의 거리"라고도 불린다. 좁은 골목마다 은세공 장인들의 가게가 즐비하다. 예전에는 황제나 마하라자에 물건을 납품했던 전통가게들도 있다고 하는데 과거의 명성만큼 활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공중에  거미줄처럼 엉킨 전선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뉴델리와는 다른 혼잡함과 거칠어 보이는 사람들의 도전적인 눈빛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찬드니 초크를 지나 붉은 성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사이클 릭샤왈라들을 만났다. 참새들은 한 번도 타 보지 않은 사이클 릭샤에 관심을 보였다. 책에서만 보던 사이클 릭샤를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타기로 하고 2km에 달하는 붉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싸이클 릭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욕심 없이 무심에서 사는 삶을 말하지만 한 순간의 꿈이라도 꾸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250루피의 입장료를 내고 무굴제국의 제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의 위엄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 유명한 아그라 타지마할의 왕 사 자한이 아그라에서 델리로 수도를 옮기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샤 자하나바드(Shah Jahanabad)를 건축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올드델리이다. 1639년~1948년 붉은 사암으로 지은 "붉은  성"을 "지상의 천국"이라고 시로 읊은 사람도 있었으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미해진 그 방대함과 화려함을 온전하게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붉은 성(Red Fort)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는데도 붉은 성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광장 왼쪽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섰다. 문을 통과하자 양 옆으로 기념품점이 늘어선 차타 초크(아케이드) 가 있었다. 유적지 안에 늘어선 기념품점이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가방과 전통 인형, 다양한 장식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적지 안에 아케이드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는데 과거에는 궁중여인들을 위한 상점이었다는 말을 듣고 궁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여인들의 삶이 안쓰러웠다.

기년품 점에 걸린 전통 인형들

 아케이드를 통과하자 길게 뻗은 길을 따라 접견실이 있고 정면 높은 곳에 유리관으로 둘러싸인 옥좌가 있었다. 샤 자한의 시대에는 루비나 사파이어, 에메랄드 장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허물어져 가는 붉은 성을 보수하기 위한 거치물들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었다. 그 앞으로 펼쳐진  푸른 잔디밭에는 젊은 연인들이 자유롭게 누워 사랑을 꽃피우고 있었다.  한쪽에는 공연을 위한 무대와 긴 의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고  관광에 지친 사람들의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었다.  도성이라기 보단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보니 시민들의 공원 같기도 했다. 붉은 성 밖의 올드델리와는 다른 자유롭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옥좌로 올라오는 길

  야무나 강을 배경으로 안쪽에는 귀빈 접견실 디완이 카스(Diwan-i-khas)와 랑 마할(Rang Mahal), 황제의  처소였던 카스 마할, 황제 전용 모스크 모티 마할(진주의 궁전)이 늘어서 있다.  궁정 여인들의 거주구역이었다가 현재는 붉은 성 박물관으로 바뀐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에는 무굴 시대의 회화와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는 곳마다 공사가 한창이라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답답했다. 250루피나 주고 들어왔는데 참새들에게 맘껏 보여 줄 수 없는 것이 속상했다. 참새들이 시시하다고 할 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참새들은 넓고 푸른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인도를 호흡하고 있었다. 인형 같은 인도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비둘기를 쫓기도 하며 자유롭게 붉은 성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뒷쪽에 야무나 강이 흐른다.
평화로운 붉은 성내 모습

 한 때 무굴제국의 도성이었던 붉은 성, 랄 킬라는 세포이 난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 방대함과 화려함이 사라진 빛바랜 흑백사진 같았다. 하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자취는 붉은 성 곳곳에 남아 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욕심 없이 무심에서 사는 삶을 말하지만 한 순간의 꿈이라도 꾸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무굴제국의 화려함 대신 평화로운 젊은 인도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엄마 , 이곳에는 사계절이 다 있는 거 같아!"

작은 참새가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한 말이었다. 긴 털옷에 털모자까지  눌러쓴 사람,  봄꽃처럼 살랑거리는 사리를 입은 여인,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외국인, 우리처럼 긴소매 옷을 입은 사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자리에 다 모여 있었다.

'인도의 다양성을 여기서도 만나는군!'


코넛 플레이스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토릭샤를 타고 코넛 플레이스로 향했다. 여름에는 걸어갔던 길을 100루피의 오토릭샤를 타고 달리니 주변 광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면 걸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았지만 참새들이 얼른 자라 홀로 이 길을 걸으며 오늘을 추억하길 바랄 뿐이었다.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는 델리 시내 관광의 명소로 고급 브랜드와 영화관, 갤러리 등이  밀집한 쇼핑몰이다. 붉은 성 근처의 올드 델리와 뉴델리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방사형으로 형성된 코넛 플레이스 주변에는 잔타르 만 타르(Jantar Mantar) 천문대와 만디르 마르그(Mandir Mg) 사원 거리 등이 있다.

 큰 참새는 여러 가지 장식품에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나무로 만든 코끼리상과 고급 체스판을 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괜찮다 하고 고르면 5,000 루피가 넘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아 있어 잘  보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할 수 없이 바라나시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작은 참새는 화장품에 관심을 보였는데 노점에서 파는 명품 화장품을 보더니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런 작은 참새를 보는 큰 참새의 눈이 곱지 않았다.

"무슨 화장품이야?"

"네이키드 시리즈? 대박이다.  이게 얼마나 유명한 건데 꼭 살고 말 거야!"

 작은 참새 말로는 엄청 싸게 나온 거라는데 화장을 잘 하지 않는 나도 알지 못하는 화장품의 세계라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작은 참새가 화장품을 고르는 동안 큰 참새는 가까운 갤러리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큰 참새는 정면을 응시하는 인도 소녀의 그림 앞에 멈춰있었다.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소녀의 눈 속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갖고 싶다"

 큰 참새의 혼잣말이었다. 나도 가질 수 있다면 갖고 싶었다. 갤러리 계단을 내려오면서 큰 참새의 손을 꼭 잡았다. 큰 참새도 내 손을 꼭 쥐었다.


"참새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큰 참새의 생각이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참새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혼잡한 코넛 플레이스의 고급 상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행색부터 달라 보였다. 화려한 고급 사리와 펀잡을 입은 당당함이 그들의 부를 상징했다. 반면에 거리에는 걸인들도 넘쳐 났다. 한국에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설 경비원들이 상접 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상점 바로 앞에는 노점들이 또 다른 장을 펼치고 있었다. 큰 참새가 들렀던 고급 인테리어 소품점 앞에도 젊은 청년이  인테리어 소품을 버젓이 바닥에 펼쳐 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노점 상인들을 쫓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정정당당히 경쟁을 하고 있었고 손님들은 자기 형편에 맞는 물건을 구입하면 그만이었다. 걸인들도 상점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피부병이 걸린 개들이 어슬렁거려도 그것은 상점 밖의 일이었다.  이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할까?


 "엄마 저 사람들 입에서 빨간 피가 나와요!"

"저건 피가 아니고 어제 인도문에서 봤던 빤 이라는 거야"

코넛 플레이스의 하얀 기둥이 빤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기둥을 향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뱉어내는 사람들을 본 작은 참새가 피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 먹어볼래?"

"싫어!"

큰 참새가 옆에 있는 빤 장수의 좌판을 가리키며 작은 참새를 놀리고 있었다. 빤을 뱉는 젊은 남자의 벌건 치아를 본 작은 참새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코넛 플레이스 거리

 한참을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랐다. 40루피의 코카콜라 한 병과 105 루피를 주고 아이스크림을 세 개 샀다. 인도에 오면 이상하게 탄산음료가 당긴다. 한국에선 먹지도 않는데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어딜 가나 탄산음료를 먹게 된다. 20루피의 물은 항상 휴대하고 다니지만 물과는 다른 단맛이 속을 진정시켰다.

 긴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큰 참새가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저 애가 내 아이스크림을 혓바닥으로 핥았어!"

 큰 참새는 마치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큰 참새의 손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큰 참새의 아이스크림을 핥은 거지 아이는 우리 앞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 아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 걸까?  그때 큰 참새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소년은  아이스크림을 낚아채더니 길게 혀를 빼고 빨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웃으면서.

 "괜찮아?"

"응 괜찮아!"

 작은 참새가 언니에게 콜라를 내밀었다. 큰 참새는 웃으며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참새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큰 참새의 생각이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참새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그 소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참새들은  신기해하면서도 무질서한 차들 사이를 힘겹게 달리는 릭샤가 불안한지 손잡이를 꼭 잡았다.

 작은 참새의 화장품은 귀중품이 되었다.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고무줄로 묶어 깨지지 않도록 봉해졌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그릇 가게에 들렀다. 인도에 온 첫날 산 코일은 산지 오분 만에 숙소의 차단기를 내려 버렸다. 60루피나 주고 샀는데 아깝다는 생각보단 주인장에게 들킬까 봐 창문을 열고 전선 타는 냄새를  빼느라 애를 먹었었다. 코코아 한 잔 먹으려다 큰일 치를  뻔했다. 그래도 코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는데 여름에 2L짜리 압력밥솥을 샀던 기억이 났다. 그릇 가게에서 600루피를 주고 가장 작은 포트를 하나 샀다. 코일도 밖으로 보이지 않고 깔끔한 디자인이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메인 바자르 거리의 우마차

 쉼터에서 한동안 먹을 수 없는 김치찌개를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큰 참새는 아이스크림 소년 이야기를 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사는 모습은 왜 그렇게 다르냐고 물었다.  큰 참새는 고급 사리를 입고 쇼핑백을 든 여인과 아이스크림 소년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했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것 같다고 했다.  세상은 공평할 수도 있고 불공평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불공평하다고 느낀다면 불평등하다고 느낀다면 공평한 세상이 되도록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만들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먼저 꿈틀거리고 내가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큰 참새가 물었다. 델리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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