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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Mar 01.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19

## 나는 문이다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 생떽쥐베리


 4시 30분!

 아지메르로 향하는 6시 45분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참새들은 써늘한 호텔방의 한기를 피하기 위해 침낭 깊숙이 파고들어 곤한 잠을 자고 있었다. 잔뜩 웅크렸던 몸은 잠에서 깨어나도 여기저기 쑤시고 저려왔다. 참새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참새들을 깨우고 참새들이 씻는 동안 침대를 정리했다.

 앙증맞은 포트를 산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따뜻한 짜이를 마실 수 없는 이른 새벽에 코코아와 커피 한 잔이 밤새 굳어버린  온몸을 녹여 주었다. 참새들은 이제 혼자서도 알아서 배낭을 꾸리고 숙소를 돌아보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6시! 시간을 확인하고 마지막 남은 크래커와 커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일어나 볼까? 다시 길을 떠나야지!"

"사막으로 출발!"

 작은 참새는 길게 기지개를 켜더니 파이팅을 외쳤다. 소파에서 잠이 든 종업원을 깨워 숙박비를 계산했다. 잠을 깨운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벽 메인 바자르를 떠나며

  호텔을 나서자 우리처럼 기차를 타기 위해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새벽을 여는 사람이 우리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행을 만난듯  안도감이 들었다. 뿌연 메인 바자르 가로등 불빛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잠들지 않는 인도의 기차역에는 잠들 수 없는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지고 나르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한산한 새벽 기차역을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새해에 펀잡지방에서 일어난 테러로 검문검색이 강화되어 있었다.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대합실 밖까지 이어져 더디게 움직이고 있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간 기차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새치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방법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할 수 없이 검색관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옆으로 난 또 다른 플랫폼 입구를 알려주었다. 기차를 놓치면 큰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밀치고 검색대에 배낭을 던져 넣고는 검은 천을 통과하는 배낭 머리가 보이자마자 낚아채 둘러메고 또 달렸다. 그래도 깔깔거리면서 달리는 참새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2번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는 기차 출발 5분 전이었다. 서둘러 기차에 오르고 나서야 목에 걸린 거친 날숨을 몰아쉬었다.

우리의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배낭을 선반위에 올리고 암수 훅을 찾아 하나로 단단히 연결해 놓았다. 참새들은 담요를 꺼내 덮고 다시 잠을 청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해가는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

  삽다비 익스프레스는  새벽안개를 뚫고  아지메르로 달리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그렇다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델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들춰보았다. 쉼터에서의  첫날부터 인도문과 붉은 성을 거쳐 코넛 플레이스까지 여러 곳을 돌아본 것은 아니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 날들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해가는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텅 빈 공간! 누구라도 지나갈 수 있는 커다란  열린 문이 되고 싶다. "

 사진을 들춰보다 문(門)을  만났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문을 찍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다양한 문을 사진에 담아 두었다. 대부분 숙소 앞 작은 원형 마당을  중심으로 빙 둘러 있던 문들이었다. 인도의 화려한 원색의 문과는 다르게 모든 문이  하얀색이라 인상적이었다. 한 번도 활짝 열린 것을 본 기억은 없었다. 언제나 굳게 닫힌 철문 사이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가는 물소리가 새어 나왔던 것 같다. 과연 사람이 사는 집인지 의심스러웠다.

 한 번은 이른 아침 짜이를 마시고 들어오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내놓고 볼일을 보는 소년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잘생긴 소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창피한 듯 손가락을 입에 물고 배시시 웃었다. 나는 "어머" 장난 섞인 목소리로 놀란  척했다. 두 눈을 가렸던 손가락 새로 "까꿍" 했더니 아이는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 한 번은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빠가 하얀 대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푸른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는데 얇은 비닐에 비치는 모양새가 구아바 같았다. 잠시 후에 계집아이 하나가 문을 열고 아빠를 반갑게 맞았다. 경계를 하듯 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얼른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남의 집을 엿보다 들킨 사람처럼 민망하고 겸연쩍어 나도 모르게 "노 프라블럼"을 중얼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델리에서의 셋째 날 마당이 들썩거릴 만큼 음악이 터져나왔다. 인도의 경쾌한 댄스 음악이었는데  한쪽으로 움푹 들어간 집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음악에 맞춰 어깨가 들썩거렸다. 참새들은 창피하다는 듯

"엄마 하지 마"를 연발했는데 그래도 나는 그들과 소통하고 싶어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잦은걸음으로 한 바퀴를 빙 돌았다. 그것을 보았는지 안에 있던 젊은 청년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줄행랑을 치는 참새들을 쫓아가느라  급하게 두 손을 모아 "나마스떼"인사를 하고 따라 들어갔었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하얀 대문을 지키던 개들은 한 번도 깨어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언제나 문 앞에 자리를 잡고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주인이 외출에서 돌아올  때까지 집 앞을 지키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듯했다.. 비록 졸고 있지만 집안으로 들어가려면 졸고 있는 개들을 타 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졸면서도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인도 사람들이라더니 문단속을 어지간히 철저히 한다 싶었다. 이웃지간에 저리 못 믿고 어찌 살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인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이웃사촌이란 말은 옛말이 되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지 않는가! 홀로 고독사 한 이웃을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서야 발견하지 않는가!  인도와 한국의 닫힌 문이 어딘가 닮은  듯했다.  닫힌 문을 열수는 없을까?  주먹을 불끈 쥐고 굳게 닫힌 철문을 세게 두드리고 싶었다.


 참새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나에게 혼이 나거나 화가 나면 부서질 듯 방문을 닫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화가 났으니까 나를 좀 봐달라는  자기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은 네 자유야. 그런데 그 문을 여는 것도 네 몫이야. 안에서 잠긴 문은 안에서 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어. 왜 화가 났는지 잘 생각해보고 생각이 정리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문을 열고 나와. 대신에 문을 열고 나올 때는 웃는 얼굴이어야 해"


 참새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참새는 웃는 얼굴 대신 자기가 생각이 짧았다고 잘못을 말했다. 작은 참새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웃으며 내게 안겼다. 작은 참새가 자기 얘기를 들려주면 나는 내 얘기를 하면서  화해를 했다. 그 이후로 참새들은 화가 나서 문을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안에서 잠긴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졌다 해도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열 수 없다. 누군가 나의 문을 두드릴 때 잠금장치를 풀어야 한다.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되어 세상과 만나야 한다.  텅 빈 공간! 누구라도 지나갈 수 있는 커다란  열린 문이 되고 싶다.

 창밖으로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검은 단복을 입은 스텝들이 짜이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참새들은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나도 굳이 참새들의 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기차는 우리를 대신해 멈추지 않고 기운차게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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