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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Mar 01.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20

## 다시 만난  푸쉬카르의 행복


" 잠시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12시 45분에 도착하기로 한 기차가 5분 일찍 아지메르에 도착했다. 귀신소굴 같은 아지메르의 하늘은 흐렸다. 겨울 인도의 하늘은 언제나 흐린 것인지 시야를 가린 뿌연 먼지들이 가슴을 누 것 같았다. 기차역광장으로 나오자 귀에 익은 요란한  경적소리가 우리를 맞았다.  뽀얀 먼지를 입은 채 빠곡하게 주차된 탈 것들이 무너질듯 낡은 건물 들을 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역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릭샤왈라와 택시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 들었다. 어느 역을 가나 똑같은 모습이다.

 우리는 푸쉬카르에 묵기로 했다. 아지메르는 숙박비도 비싸고 외국인을 받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슬람성지가 많아 언제나 혼잡하고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끌벅적한 이 곳이 싫었다.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러대는 릭샤왈라들과의 흥정 지쳐고 있었다. 뻔히 가격을 알고 있는 데도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고 등을 보이고 돌아서면 뚝 떨어지는 그들의 얄팍한 상술이 지겨웠다.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인도사람들도 많지만 외국인를 상대로  한 사기꾼들도 많.  인도여행에서 흥정은 필수라고 하니   물러설  수 없었다.


  여름에는 아지메르에서 푸쉬카르까지 합승택시로 300루피를 주고 갔었는데 여행성수기라 그런지 가격이 올라 400루피에 흥정을 마쳤다. 택시를 타고 푸쉬카르로 향하는데 택시가  잠시 멈춘  사이  여자아이가 다가와 창문틈으로 손을 내밀었다. 복잡한 도로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어 불안했다.  마침 기차에서 싸온 아침식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창문 을 열고 건네 주었더니 빼앗듯  봉지를 낚아챘다. 택시가 출발하고 아이는 멀어져갔다. 나는 잠시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아지메르역

  택시는 포장된 산길을 달렸다. 멀리  뿌연 먼지에 쌓인  아지메르시가지가 보였다.  속세로 부터 벗어나 산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원숭이다"

작은 참새가 소리를 지르며  창문밖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안돼! 창문 밖으로 핸드폰을 내밀면 위험해."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원숭이가 반가운 작은 참새의 마음은 알지만 옆으로 휙휙 지나가는 오토바이족들에게 언제 날치기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 조심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지메르시가지

 산길에는 원숭이와 소들이 제 집 안방처럼 노닐고 있었다. 이십여분을 달리자 택시기사는 마을 입장료를 줘야한다고 했다. 푸쉬카르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20루피를 주었다. 마을 입장료를 언제부터  

받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지메르에서 산 하나를 넘어 찾아온 손님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더구나 푸쉬카르 호수마을은 한참을 더 가야했다.  마치 아지메르와 푸쉬카르 중간에 있는 소득없는 작은 마을에 통행세를 지불하는 기분이었다.

  택시는 푸쉬카르 마을 입구에서 멈추었다. 택시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  입구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좀 걸어야겠구나 싶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자신의 호텔에 머물것을 권했다.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조용한 곳이라고 했다. 호객행위를 할 정도면 마을에서 떨어져 있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곳은 푸쉬카르 호수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이라 멀어봐야 거기서 거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오토릭샤로 모신다고 하니 크게 손해볼 것도 없을 듯 했다.  


푸쉬카르 거리

 숙소는 호수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녀본 숙소 중 가장 깨끗하고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뽀송뽀송하고 묵직한 이불이었다. 방도 넓고 뜨거운 물도 콸콸 나왔다. 숙소 구석구석 탐나는 인도 전통 장식품들이  놓여 있어 주인장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된 궁전에서 떼어온 듯한  둥근 쇠고리를 단 두 쪽짜리  투박한 방문까지도 맘에 들었다.


"당신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했어요"
푸쉬카르의 라지셰프

 간단히 짐을 풀고 마을로 내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참새들에게 푸쉬카르의 멋진 라지세프를 소개해 주고 싶어 마음이 급했다. 여름에 푸쉬카르에 머무는 동안 맛있는 요리로 나를 행복하게 했던 라지였다.

  참새들을 데리고 라지의 가게에 갔다.

"나마스떼! 라지, 나를 기억하나요?" 라고 물으니

"당연히 기억하죠"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라지를 다시 만난 반가움에 약간 흥분이 되었다. 여름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당신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했어요" 라고 솔직한 내 맘을 전했더니  라쥐도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준 아름다운 당신도 나를 행복하게 했어요"  라는 말로  나를 기분 좋게 했다.

 5개월의 시간이 기억에서 편집되어 가위로 싹둑 잘려나간 것 같았다. 마치 어제 푸쉬카르를 다녀간듯 편안했다.  라지에게 참새들을 소개했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 딸들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 자란 숙녀 같은 딸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를 놀라게 했다. 내 딸들이 맞다고 재차 확인시켜 주는 내 목소리가 경쾌했다.

"날아 올라라. 높이높이 멀리멀리
맘껏 날아올라라.힘껏 날아올라라"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고 행복했다. 참새들도 작고 조용한 푸쉬카르를  맘에 들어 했다. 사람들이 밝고 정겨워 보인다고 했다.  참새들과 손을 잡고 가트를 따라 호수로 나갔다.

 푸쉬카르에는 52개의 가트와  400여개의 사원이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브라흐마사원을 간직한 힌두성지로 순례자들은 푸쉬카르 호수에서  더러움을 씻고  브라흐마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천지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손에 들려 있던 연꽃이 지상에 떨어지면서 솟아 난 물이 바로 푸쉬카르 호수라는 전설이 있다.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건물들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건물의 지붕에 앉아 있던 한 떼의 비둘기들이 호수 위로  날아 올랐다. 작은 그림  엽서에서 살아 나온듯한 자유와 평화가 절로 시를 읊게 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를 저어 오오"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둔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나를 바라봐 주고 내가 바라 볼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참새들은 맨발로 가트 위를 거닐고 있었다.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따라 하늘로 오를 듯 두 팔을 벌려 날개짓을 했다. 나는 가트에 앉아 참새들의 멋진 비상을 위해 기도했다.

"날아 올라라. 높이높이 멀리멀리

맘껏 날아올라라.힘껏 날아올라라"

 사랑하는 참새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내주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었다. 큰참새는 내 손을 잡고 나는 작은참새의 손을 잡았다. 잔잔한 푸쉬카르 호수 위에 은빛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가?


 둥둥 북소리에 맞춰 나팔소리가 들리고 소리를 잡으려는 심벌즈 소리가 가트를 따라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참새들은 벌써 가트를 뛰어오르고 있었다. 반짝이던 은빛 별들이 물 위로 튀어올랐다.

"으이구! 녀석들"

나도 참새들을 따라 가트를 올 라갔다.

 거리에는 신을 모시는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악대를 앞세우고 거리 행진을 하며 불꽃같은 주황색 옷을 입은 노인이 멋지게 춤을 추며 사원으로 가는 길을 열고 있었다.

 참새들은  손을 흔들며 그들을 환호했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작은참새가 말했다.

"그래 정말 즐거워보인다."

 사뿐사뿐 가볍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을 보고 있으니 나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정말 좋아서 온 몸으로 춤을 추는 것 같아."

"무엇이든 가슴으로 하면 행복한것 같아"

참새들은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고 있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가?


푸쉬카르의 일몰

 푸쉬카르를 처음 만났을 때의 평온함을 잊을수가 없다. 우기라 흙탕물에  더러운 부유물들이 여기저기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맑고 푸른 호수였다. 새하얀 건물에 둘러싸인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온 설움이 주르르 한줄기 눈물이 되어 흘렀다. 푸쉬카르 호수에 더러움을 씻기 위해 몸을 담그지는 않았지만 바람을 타고 오는 푸른 손길에 내가 정화되는듯 했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미뤄두었던 빨래를 하기로 했다. 여름에는 반나절이면 마를 빨래였지만 겨울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매일매일 옷을  갈아입는 습관으로 생각없이 훌렁훌렁 벗어던지던 참새들이었다. 하지만 인도에선 자기 옷은 자기가 빨아 입어야했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을것이라는 약간의 협박도 잊지 않았다. 참새들은 어쩔 수 없이 따뜻한 사막에 가는 날만 기다렸다.

티슈형 세제를 풀어 한보따리 빨래를 하고 발코니 난간  한가득 널어 놓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서쪽 하늘로 하루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푸쉬카르의 하늘을 조용히 물들이며  어둠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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