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강 Mar 07.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25

## 푸쉬카르를 떠나며

  "스물한 살쯤 되었을 때 혼자  오고 싶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날리기를 하다 어둑어둑한 사원 길에 손전등을 비춰가며 내려왔다. 배가 고팠다. 여행을 하면서 하루 세끼를 챙겨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늦은 저녁을 먹었었다.

 푸쉬카르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근사한 곳에서  먹고 싶었다. 푸쉬카르는 힌두 성지라 술과 고기를 먹기 힘들다. 고기를 좋아하는 큰 참새가 닭요리를 찾길래 사정을 얘기했더니 바로 받아들였다.


 푸쉬카르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이태리 식당을 찾아갔다. 가격이 조금 비싸긴 했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조용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하고 난간을 타고 들어오는 호수의 바람을 반갑게 맞았다.

"푸쉬카르 어때?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데"

"아쉬워요. 좀 더 머물고 싶은데....."

"다시 올 수 있겠지?"

큰 참새는 다시 찾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시 오고 싶어?"

"응! 스물한 살쯤 되었을 때 혼자  오고 싶어"

 의외였다. 여행 내내 힘에 부쳐 하던 녀석이었다. 호흡기가 좋지 않아 기침이 하느라 힘들어했었다. 그랬구나! 큰  참새에게 무엇 때문에 혼자 오고 싶은지, 왜 스물한 살인지 묻지 않았다.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환호성이 터졌다. 비주얼에 놀라고 맛에 감동했다. 인도에서는 저렴하게 이태리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참 좋다.


 인도의 식당에서는 식탁에 빈그릇이 있는 것을 참지 못한다. 종업원이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기 무섭게 달려와 치워도 되는지 묻는다. "식사 끝났으면 빨리빨리 일어서"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식사를 끝내고 담소라도 나누려면 눈치가 보인다.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좌불안석이다. "인도 사람들은 원래 그래!"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도 안되면 적당한 뻔뻔함이 필요하다. 당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은 푹신한 소파에 편하게 기대앉아 흘려 나오는 팝송을 따라 흥얼거렸다.



저녁을 먹고 가트에 나갔다. 푸른 불빛으로 반짝이는 호수의 적막함이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가트 한쪽에  명상을 하는 수행자들이 보였다. 여름에도 많은 수행자들이 호수의 가트를 지키고 있었다. 저들은 왜 고행의 길들어섰을까?


 때로는 내 안의 나를 보는 일이 아플 때가 있다. 내면의 나를 만나 본연의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까짓 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잘난 척에 반항이라도 하듯 나를 놓아 버리고 흔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흔들리고 나면 더 초라해진 나를 만나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 나는 늘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듯했다.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지만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나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가 꿈꾸는 나는 내가 본 그림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아니라고 강하게 거부했지만 혼자가 되고 나서야 나는 나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엄마, 그 노래는 너무 슬퍼"

"참새들 자장가였는데....."

"기억나. 우리 어릴 때  엄청 많이 불러줬잖아!"

 참새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큰 참새를  업고 작은 참새를   안은채  거실을 서성이며 부르던 자장가였다. 습관이 되어 참새들이 다 자란 후에도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엄마, 다른 노래 불러줘!"

"그래. 푸쉬카르 호수에는 이쁜 동요가 어울릴 것 같아!"


"나뭇가지에 실처럼 날아든 솜사탕~~"

참새들이 박자에 맞춰 입으로 동그란 소리를 냈다.  손 장구를 치며 푸쉬카르 호수에 우리들의 노래를 띄워 보냈다. 밤이 익어가고 있었다.


                        가야트리 사원에서 바라본 푸쉬카르

 푸쉬카르에서의 마지막 날!

 가야트리 사원에 올라  아침을 맞았다. 엊그제 만났던 백인 청년이 성큼성큼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사원 옆에 자리를 잡더니 길게 뻗은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는 왜 이 곳에 올랐을까?

 나는 왜 이곳에 올라왔을까? 이 곳에 오면 멀리 보게 된다.  하늘 가까이에서 바람을 느끼며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게 된다. 세상 속에서 더 큰 세상을 보는 것 같다.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원을 내려갈 쯤엔 한결 가벼워진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쉬바 신과 그의 아내 파라바티

그리고 아들 가네쉬

          비슈누 신 (좌)            브라흐마 신(우)                                                                                   


 푸쉬카르를 떠나기 전에 브라흐마 사원에 들르기로 했다. 힌두교의 3 대신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쉬바이다. 그런데  인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신은 비슈누와 쉬바이다.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가 가장 사랑받을 것 같지만 인도 사람들은 이미 창조가 끝났기 때문에 브라흐마의 역할은 없다고 생각한다.   파괴와 해체가 있어야 재생과 유지가 있다고 믿는 인도 사람들이다. 그래서 인도의 사원의 대부분은 비슈누와 쉬바를 본존으로 한다. 푸쉬카르에만 유일하게 브라흐마 사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는 다.  

 브라흐마사원은 바자르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사원 입구에 있는 대리석 계단 앞에는 신발을 맡아 주는 곳이 있다. 인도의 모든 사원은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상점에서는 신발을 맡기면  원색의 꽃과 과자가 담긴 작은 접시를 내민다. 꼭 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신발을 맡아 주니 꽃을 사든가 나오면서 약간의 돈을 주면 된다. 우리들은 빈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입장료는 없고 입구에 총을 멘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테러 때문에 경비가 더욱 강화된 듯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브라흐마 본존이 있고 그 앞에 사제들이 앉아 있었다. 사제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온 성물을 받고 조금 떼어 다시 나눠 준다. 우리는 하얀 과자 맛이 궁금해서 두 손을 내밀었다. 쌀 튀밥과 작고 동그란 흰 사탕이었다. 사원 곳곳에는 화려한 꽃과 단과자가 뿌려져 있어 벌떼와 새들이 모여들었다. 발바닥에는 끈적끈적한 것이 달라붙어 찝찝했다.

"미친 사람들 같아!"

참새들은 지저분한 붉은 석상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는 인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무슨 사원이 이렇게 더러워!"

계속해서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몇 발자국만 걸으면 발바닥에 이상한 것이 달라붙어 있었다.

서둘러 사원을 나와 신발을 신고 상점 주인에게 10루피를 주었다. 참새들에게 브라흐마 사원은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춰 숙소로 돌아와 방값을 지불하고 다시 배낭을 맡겼다. 아즈메르에서 3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주인장에게 두 시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름엔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고 승차권을 끊어 주었었다. 정직하고 신뢰가 가는 사람들이었다. 아점을 먹고 다시 돌아와 보니 약속대로 택시가 와 있었다. 우리들은 주인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택시에 올랐다.

사막에서의 하룻밤!

파완 레스토랑의 라지!

가야트리 사원의 바람!

푸른 푸쉬카르 호수!

모든 것들이 또 하나의 꿈처럼 지나갔다. 스물한 살의 큰 참새가 만나게 될 푸쉬카르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또 새로운 꿈을 꾸며 푸쉬카르를 떠났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