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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Mar 06.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24

## 노 프라블럼!

  "꿈을 꾼다는 것은 내일이 있다는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다. "

 긴 낮잠에서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참새들은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잠이 들었었다. 부스스 일어난  참새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랬나 봐. 졸려 그리고 배고파요. 밥 먹고 또 잘래"

"나갈까?"

"귀찮은데......"


 엉망인 얼굴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근처에서 파코라와 비스킷 그리고 구아바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아기 참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 참새가 되었다.

."느끼하다"

나도 금방 일어나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라면을 먹자."

"어떻게?"

우린 그다음 답을 알고 있었다. 

"노 프라블럼" 

합창을 하듯 "노 프라블럼"를 외쳤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잘게 부순 라면을 넣었다. 마지막 남은 신라면이 면이 살아있는 죽이 되었다.  포트 안에 들어 있던 컵에 라면 죽을 따르고 비행기 기내식을 먹을 때 챙겨둔 일회용 수저로 후루룩  퍼 먹었다.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맛있었다. 라면은 정말 위대한 음식이다.


"이제 우리 뭐하지?"

더 자겠다던 참새들이 배고픔을 채우더니 밖에 나가자고 했다.

"연 날리러 가자!"

"그거 좋은 생각인걸. 우리 연 날리러 가자."

참새들은 가야트리 사원 근처에서 연을 날리던 아이들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때 소원을 빌며 연을 날리자고 했던 기억이 났다. 연축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푸쉬카르의 메인 바자르

                                                               한산한 골목과 거리의 쓰레기통


시위하는 학생들

 우리는 연을 사기 위해 바자르로 나갔다. 숙소에서 바자르로 가는 갈림길 한 가운데 커다란  쓰레기통이 보였다. 분명  4개월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인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푸쉬카르 거리는 부지런한 아낙들 덕분에 깨끗하다. 소와 낙타, 원숭이 , 개 , 멧돼지, 염소까지 온갖 동물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어슬렁거려도 델리나 바라나시의 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정리된 느낌이 든다. 그만큼 사람들이 없는 작은 마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부지런한 마을 사람들의 수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자르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며칠 지내며 낯이 익었다고 오가며 상점 주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요란한 악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광대 부부가 재주를 부리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현수막을 들고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차게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정작 연을 파는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발길을 돌려 가야트리 사원으로 향하는데 숙소에서 가까운 골목에 연을 파는 가게가 마주하고 있었다. 하나에 5루피! 대나무에 얇은 습자지를 붙인 단색의 연이었다. 5루피를 더 주고 연줄을 사고는 주인장에게 묶어 달라고 했다. 젊은 청년은 연줄로 가로 세로 중심을 잡아 직접  연줄을 묶어 주었다. 그런데 왠지 불안했다. 너무 약하고 엉성해서 살짝만 건드려도 찢어질 것 같았다.

가야트리 사원에 오른 아이들
노 프라블럼!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연을 들고 가야트리 사원으로 향했다.

"뱀이다"

 돌계단 위에 뱀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겁 없는 작은 참새는  소리지르기가 무섭게 뱀을 쫓아 뛰기 시작했다. 정말 대책이 안 선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뱀인데 거미만 봐도 펄쩍 뛰며 괴성을 지르는 녀석이 뱀을 잡겠다고 달리다니!

"막대기가 있어야 하는데." 

"진영, 뱀은 영물이야. 사원을 지키는 신인지도 몰라 함부로 잡으면 안 돼!"

"진짜?"

"인도인들이 사랑하는 파괴와 해체의 신 쉬바는 뱀을 목에 감고 있어!"

"나도 목에 감고 다니고 싶다."

  정말 헉이다. "여자애가"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왜 하필 뱀을 좋아하는지 신기했다. 난 뱀이 발이 없어서 싫고 작은 참새는 발이 없어서 좋단다. 같은 것을 보고도 누구는 사랑스럽다고 느끼고 누구는 징그럽다고 느낀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야트리  사원의  저녁 바람이 달콤했다. 사원을 오르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수줍게 웃었다. 깊고 커다란 눈이 푸쉬카르  호수처럼 반짝였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저희들끼리 깔깔거리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사진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참 예쁜 아이들이다. 


 참새들은 연을 날리기 위해 바람을 뒤로 하고 섰다. 하지만 사방이 뻥 뚫린 사원의 바람은  얇은 사리 자락을 잡고 춤을 추듯 제멋대로 흘러 다녔다.  연은 떠오르지도  못 하고 자꾸만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사원에서 저녁 푸자를 준비하던 사제가 인사를 했다. 위에서 참새들 하는 모양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더니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사제는 맨발로 달려와 큰 참새에게 연 날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사제는 연줄을 잡더니 바람의 바다에서 낚싯줄을 낚아채듯 재빠르게 잡아당겼다. 바람을 거스른 습자지가 "퐁퐁"소리를 내며 앞으로 당겨오는 듯하더니 하늘로 떠올랐다.

"와우! 연이 바람을 탄다"

참새들은 신이 나서 팔짝거렸다. 수줍은 계집아이들도 박수를 치며 같이 뛰었다.

또 다른 사제는 따뜻한 짜이를 들고 나왔다. 나는 사원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짜이를 마시며 참새들의 웃음소릴 들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그렇게 활짝 웃으렴! 아무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렇게 웃으렴!"


 멀리서부터 어둠이 빛을 밀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낙타를 타고 걸었던 사막도 붉게  물들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가까이서 보면 헐벗은 아이들과 쓰레기들이 뒹구는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한 모금의 물을 마시기 위해 타는 목마름을 참고 견뎌야 할까? 한 모금의 물로 생명을 연장한 채 또 다른 오아시스를 만날 때까지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일까?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겠지! 그래야겠지!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까!

 석양이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면 인생은 모두 희극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 것 같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싫어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은 멀리 보아야 하는가 보다. 참 재미있는 인생이다. 


 저녁 하늘을 날던 큰 참새의  연이 발밑으로  고꾸라졌다. 연줄이 끊어지고 떨어지면서 연도 찢어졌다.

너무나 짧은 연날리기였다. 울상이 된 큰 참새가 포기하려는데 사제가 다시 달려 나왔다.


"노 프라블럼! 안 되는 것은 되게 하면 됩니다. 포기하지 말아요."


사제는 끊어진 연줄을 능숙한 솜씨로 다시 묶기 시작했다. 워낙 손이 빨라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제는 다시 연을 들어 하늘로 띄웠다. 달아나려는 연을 튕기듯 몇 번 낚아챘더니 연이 다시 날기 시작했다.

"진짜 신기해"

작은 참새는 다시 날아오른 연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 되는 것은 되게 하면 됩니다." 사제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인도 사람들이 습관처럼 말하는"노 프라블럼"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가야트리 사원의 일몰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를 읽고 세 가지 만트라와 함께 스물일곱 일기장에 써 놓은 글귀였다. 첫 아이를 잃고 일주일에 한 번 채혈을 하러 병원에 드나들던 때였다. "노 프라블럼" 명상법으로 마음을 다스렸던 때이기도 했다.  


너 자신에게 정직해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 마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붉게 물든 일몰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아이들의 연에 어떤 소망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설령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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