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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Dec 25. 2015

망설임 , 그 후 - 3

# 사자와 같이 강하게

"행운의 여신은 사자와 같이 강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마음이 약한 자는 그것을 운명이 준 것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늘 두렵다. 남들은 모든 쉽게 쉽게 시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 뛰기를 하며 숨을 헐떡이는 것 같다. 겁이 많아서 일까? 영악하지 못해서 일까?  나는 많은 사람들과 햇빛 아래 있으면서도 늘 적막한 그늘 아래 있는 것 같은 소외와 외로움으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나의 시작은 언제나 불안한 시소 타기로 출발한다. 시작을 위해 놓아야 할 많은  것들과 그것을 놓고 감당해야 할 또 다른 것들의 무게의 균형 잡기는 쉽지가  않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땅에서 발을 떼고 하늘을 나는 짜릿한 오르가슴은 느낄 수도 없다. 놓을 용기도 감당할 배짱도 없는 망설임의 시간들이 의미 없는 시간들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상처받기도 싫고 상처 주기도 싫다면 시소에 오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눈을 감으면 그만이다. 귀를 닫으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은 고요할 것이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귀를 닫으면 귀를 열고 들을 수 없었던 내 안의 깊은 침묵의 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안주하기엔 내 심장은 너무 뜨웠다. 나는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강한 사자이고 싶었다.

  

 인도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아이들 아빠에게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망설임의 시간은 길어지고 8월의 다짐은 마른 가을 단풍을 맞더니 이른 첫눈까지 맞고 말았다. 이웃집에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 날짜를 훔쳐보다 모르는 척  외면하다  가을학기가 끝나버렸다.

 러닝머신에서 정신없이 달리다 내려왔다고 숨을 고를 땐  마지막 남은 12월의 달력이 싸늘한 벽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입을 떼고 힘겹게 허락을 받아냈을 땐 12월이 반이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없었다. 망설임이 너무 길었다. 망설임은 나를 조급하게 했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을 만들었다. 출국 예정일을  12일 남겨두고 저렴한 항공권을 구하는데 이틀을 쓰고 아이들 여권을 받았을 때 여권 만료일이 한 달이나 지나 있었다. 아이들이 5년짜리 여권을 가진  미성년자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울고 말았다. 바보 같은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소리 없이 울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대책 없는 엄마가 뭔 일을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바람을 넣었는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래 망설였을까?


"엄마 욕심 아니야!"

큰딸이 말했다. 너무도 무모한 내 욕심이라고 했다. 둔탁한 주먹이 머리로 날아온 것 같았다. 그랬다. 나의 망설임은 욕심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내 욕심이 오랜 망설임을 만들었다. 과감하게 놓아야 했다. 시작을 위해선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것을 놓아야 했다. 망설이지 말아야 했다.


망설임은 또다시 긴 기다림을 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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