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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Dec 26. 2015

기다림 - 4

#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위험은 아직 닥치기 전에 두려워해야 하며, 이미 닥쳐왔을 땐 상황의 요구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 히또빠데사



  망설임이 그리움도 설렘도 없는 기다림을 달고 왔다. 우선 뒤죽박죽 된 머릿속부터 잘 흔들어 정리해야 했다. 멍청하게 굴다가는 또 어떤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지 몰라 심장은 마른 무화과처럼 쪼그라들었다. 아이들 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 한다면...... 방학을 앞두고 학교를 뺀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생각하니 눈 앞이 아찔했다.

 

"아님 마는 거지 뭐!"

 큰딸 진아는 덤덤하게 말했다. 어른스럽게 욕심 부리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작은딸 진영이는 상황을 전해 듣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인도 못 가게 되면 엄마가 책임져!"

 책임! 나는 처음으로 인도 여행에 대한 무게를 실감했다. 나는 책임을 져야 했다.   이 상황을 책임을 지려면 이미 닥친 위험을 직시하고  이 상황의 요구에 적절히 대처해야 했다. 

주말을 끼고 5일 만에 여권이 나왔다.


"불가능한 것은 결코 실현되지 않고, 가능한 것은 반드시 실현되니, 수레는 물 위로 갈 수 없고, 배가 땅 위로 갈 수 없다."               

                                                                - 히또빠데사


 

  나는 여권을 받아 들고 여름에 하루 만에 발급된 e 관광비자를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인내심을 담보로 긴 기다림의 시간과 대면했다.

 비자 신청을 하는데 꼬박 열여섯 시간이 걸렸다. 신청서를 겨우겨우 다 작성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하면 컴퓨터 화면에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드는 파란 글씨가 나타났다.


"이 페이지는 표시할 수 없습니다"


"인도가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았니?"

"인도 가는 게 그렇게 쉬울 줄 알았어?"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welcome to india"  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 시간만에 비자신청서 작성을 끝내고 결제를 하려는 순간 마지막 단계에서 또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파란 글씨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나는 한계에 부딪쳤다. 뻐근해오는 허리와 헝클어진 머리, 흥분해서 일을 망치게 될까 봐 참았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런 그지 같은"

카드 결제 승인 메시지는 계속 날아오는데 비자센터에선 얼른 결제를 하라고 보채었다. 조회수를 넘겼으니 다시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소리 없는 위협을 가했다.  "welcom to  india" 앞에 잔뜩 졸아 마우스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언제 또 페이지가 다운될지도 모르고 받은 사람도 없는 돈을 지불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런 그지 같은 나라에 뭐 볼 게 있다고 기를 쓰고 가려고 하는 걸까? 두 눈을 감고 8월의 인도를 생각했다. 후~~

 "인도는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어."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가능하다고 믿어야 했다. 출국예정일이 5일 남았다. 물러설 수 없었다.


끝까지 가보자!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해보는데 까지 해보자!

행운의 여신이 누구 편인지 확인해야겠어!

 

 아이들에게는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알려 주었다.

"엄마도 어떻게 끝날 지 모르겠단다. 하지만 해 볼 수 있을 때까지 해 보려고 해"

"엄마, 잘 될 거야! 걱정 마"

진아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밤을 새워 퀭한 내 눈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여섯 시간 만에 비자 신청이 잘 접수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젠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는 것외엔...

나는 기지개를 쭉 펴고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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