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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Mar 08.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27

## 내가 산 값이 가장 싼 값이다.

 

"인생은 얼마나 짜릿한 코미디인가!
하루 웃고 하루 울다가 살아지는 재미난 세상이다."

 

인생은 참 공평하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가 채워진다. 인도에 도착해서 참새들에게 비상금으로  2000  루피씩을 주었었다.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무조건 택시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의 네임카드를 보여주라고 했다. 비상금을 어찌 쓰든 참새들 지갑에는 항상 2000  루피가 있었다. 하지만 큰 참새는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반면 작은 참새는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물건을 살 때 10번 생각해보라고 일러두었지만 길거리 자잘한  풍선까지 탐을 냈다. 델리에서 화장품을 사느라 650  루피를 쓴 작은 참새와 비교할 때 큰 참새가  억울할  것 같았다.


 그런데 타지마할에서 작은 참새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750  루피가 생겼다. 마치 작은 참새의 화장품 값에 넉넉한 이자까지 달려온 느낌이었다.

여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자이푸르에서 잃어버린 250  루피가 아그라 성의 어설픈 검문에서 채워졌었다. 인생은 얼마나 짜릿한 코미디인가! 하루 웃고 하루 울다가 살아지는 재미난 세상이다.

 점심을 거하게 먹고 처음으로 전기 릭샤를 타고 아그라 성에 갔다. 속도감은 없지만 오토릭샤에 비해 조용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화려한 원색으로 칠해져 아이들 장난감 자동차 같았다. 50 루피의 저렴한 가격도 마음에 들었다.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아이가 된 기분으로 깔끔한 전기 릭샤를 타고 달렸다.


 샤 자한이 지은 델리의 붉은 성을 닮은 아그라 성(Agra Fort)은 1565년 악바르 대제가  지은 것이다.  특히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무삼만 부르지(포로의 탑)에  갇혀 멀리  타지마할을 바라보던 샤 자한의 눈물이 야무나 강을  따라 흐르는 듯했다.  푸른 잔디 위에는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화려한 궁전이 늘어서 있었다. 야무나 강은 타지마할을 돌아 아그라 성으로  흐르고 있었다.  야무나 강바람이 아그라의 탁한 공기로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타고 흘렀다.  정원에는 사람과 친숙해진 다람쥐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아그라  성의 75%가 군사시설이라 완전하게 개방된 아그라 성을 만나지는 못 했다. 하지만 무굴제국의 영광과 권력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악바르 대제는 무굴 왕조를 제국으로 성장시킨 왕이다. 아그라에 새로운 도성을 쌓고 권력을 쥐고 있었던 아버지의 가신들을 몰아내고 무굴 왕조를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하얀 대리석 옥좌에 앉아 자신이 이룬 제국의 영광을 내려다보는 악바르 대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려는 수많은 적들과 손을 잡기도 하고 내치기도 하며 자신의 뜻을 펼쳤으리라. 성을 쌓는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안으로부터 나를 세우는 일인 것 같다. 적은 안과 밖에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선 내가 산 가격이 가장 좋은 가격이야."

 타지마할을 나오면서 작은 참새가 타지마할 모형이 들어있는 작은 스노우볼을 샀다. 왜  물건을 사고 나면 더 싸고 더 좋은 물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50루피를 부르는 스노우 볼을 30  루피에 구입하고 싸게 샀다며 좋아했다. 그냥 돌아섰으면 그만인데 바자르를 빠져나오면서 다른  상점에서 가격을 물어보니 20루피를 달라고 했다.

"여기서 살걸! 모양도 더 예쁜 것 같아!"

"괜찮아! 인도에선 내가 산 가격이 가장 좋은 가격이야."

 인도에서는 흥정이 필수지만 다른 사람이 산 가격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건을 샀는데 나보다 싸게  산 사람을 만나면 손해를 본 것 같아 속이 상한다. 특히 인도의 상점에서 파는 공산품을 비롯한 많은 물건들은 포장지에 써 있는 가격 그대로 판매한다. 받을 수  있는 최대 가격이라고는 해도 정직하리만치 가격표에 충실하다. 그러나 노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고 내가 흥정한 가격이 내 물건의 값이다.  그래서 여러 곳을 둘러보고 흥정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손해가 덜하다. 갑자기 델리에서 만난 헤나 사기꾼을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맞아! 네가 산 스노우 볼은 딱 30루피 짜리야!"

큰 참새가  작은 참새를 달랬었다. 그런데 아그라 성에서 나오면서 길거리에서 타지마할 스노우 볼을 든 장사꾼을 만났다.

"얼마예요?"

작은 참새는 10루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했다.

"800루피"

 정말 요지경 속이다. 어떻게 같은 물건의 가격이 20 루피에서 800 루피까지 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금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나오는 대로 떠드는 것 같았다.

"800루피라고?"

장사꾼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작은 참새의 얼굴이  밝아졌다.

"당신은 나빠! 난 똑같은 걸 30루피에 샀거든"

작은 참새는 장사꾼에게 다부지게 한마디 던지고는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거봐! 네가 산 가격이 가장 좋은 가격이라니까"

우리는 스노우 볼을 들고 황당해하는 장사꾼을 돌아보며 웃었다.


"낭송은 뇌를 깨우고 몸의 오장육부를 두드리는 입체적인 공부 방식이다. "


  자마 마스지드로 가기 위해 릭샤 왈라와 흥정을 했다. 한 사람과 흥정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릭샤왈라가 끼어들어 더 싼 가격을 제시했다. 우리가 그쪽으로 가려하자 먼저 온 릭샤왈라가 나중에 온 릭샤왈라를 후려쳤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싸움이 붙어 우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것 같아 슬그머니 피해 점잖아 보이는 릭샤왈라에게 갔다. 150 루피에 아그라 성에서 자미 마스지드까지 갔다가 다시 타지마할까지 가기로 했다. 성격이 난폭한 릭샤왈라의 릭샤는 불안하다. 가능하면 먼저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보다 깔끔하고 점잖아 보이는 릭샤왈라를 고른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성실함을 보여 주고, 얼굴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 준다. 대체로 눈이 선하고 미소를 머금은 편안한 사람을 고른다. 우리를 태운 릭샤왈라 역시 조심스럽게 승객을 배려한 안전운전을 했다. 우리는 자마 마스지드 입구에서  내려 릭샤왈라에게 30분 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자마 마스지드 입구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HOTEL"이란 말이 종종 우리가 알고 있는 숙박시설이 아니라 식당이란 개념으로 쓰인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호텔이란 간판을 단 식당을 보니 신기했다.

 

자마 마스지드 (Jama Masjid)는  델리의 붉은 성 남서쪽에 있는 자마 마스지드처럼 적사암으로 지은 장방형의 이슬람 모스크, 즉 이슬람교도들의 예배당이다. 건축광이었던 샤 자한에 의해 1648년에 건설되었는데 인도 최대의 모스크 사원이라고 한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넓은 광장 한가운데 분수가  있고 빙 둘러 붉은 모스크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다. 바로 앞에 아그라 붉은 성의 성곽이 보였다.


 오른쪽에 공부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가까이 다가가 선생에게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까딱하더니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하얀 왓치를 쓴 남자아이들과 검은 차도르를 쓴 여자아이들이 선생에게 암송한 것을 검사받고 있었다. 사진기를 들자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방문에 놀란 아이들 몇몇이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은 회초리를 들어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우리는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는 것 같아한 발짝 물러섰다. 한쪽에는 남자아이 둘이 일어서서 코란을 낭송하고 있었다.


 낭송이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고미숙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의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 묵독을 하거나 혼자 공부하는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은 뇌를 죽이고 자기 세계에 갇힌 평면적 공부 방식이다. 낭송은 뇌를 깨우고 몸의 오장육부를 두드리는 입체적인 공부 방식이다. 자기 목소리를 낼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여 낭송하는 모습이 서당개에게 들릴만큼 큰소리로 글을 읽는 서당 아이들 같았다. 아이들의 낭송 소리가  화음을 넣은 낭랑한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여자 아이 둘이 선생 몰래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아이들 손을 잡아 내렸다. 그리고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경계를 하거나 적개심을 품은 눈이 아니라 수줍은 소녀의 눈이었다. 나와 참새들은 소리 없는 붕어 입모양을 하고 웃으며 "안녕?"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이 예배를 보고 있었다. 구석에는 빨간 원색의 꽃잎이 흐트러져 있고  밖을 향해 난 구멍 뚫린 창문 앞엔 불을 밝힌 초들이 타고 있었다. 길게 연결된 모스크 길 중간중간에 정면에 있는 벽을 향해 길게 엎드려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긴 모스크 한가운데 서서 다리 한쪽을 들고  "얼쑤" 춤을 추었다. 작은 참새도 달려오더니 나를 따라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었다. 남의 예배당에서 무례 한 행동을 한 것 같아 금세 멈췄지만 기분 좋은 한판이었다. 우리를 지켜보던 인형 같이 생긴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어린 계집아이가 당돌하게 이름부터 묻는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다짜고짜 이름을 물으니 내 이름을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이름부터 묻는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 싶은데 인도 사람들의 이름에 계급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면 이해가 된다. 하나 더 나가서 인도 사람들은 아버지 이름까지 묻는다. 역시 계급을 알기 위해서 란다. 굳이 급을 따지자면 인도인들에게 외국인은 불가촉천민급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물가가 싼 인도에 와서 괜히 우월한 척 뻐기다가는 큰일 난다.

 

 "나는 경이야"

 불완전한 나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당신은 참 아름다워요."

"고마워!"

당돌하고 똑 부러진 아이의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도하러 온 엄마를 따라왔다고 했다. 잠시 후에 기도를 마친 여인들이 나왔다.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잠든 아기를 안은 젊은 여인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참새들은 잠든 아기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만져봐도 되냐고 묻고는 아기의 볼을 살며시 문질렀다.  여인은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 하니 잠든 아기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아기를 곧추세웠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은 다 같은 것 같다. 당돌한 여자 아이도 사진기 앞에 차렷 자세를 취했다. 참 이뻤다.

 우리는 가볍게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동정이 아니고 거래였어! 아이는 우리의 모델이 되어주었잖아. 아이가 돈을 어떻게 하든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모스크를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반라의 동생을 안고 우리를 따라왔다. 진한 눈이 매력적인 아이였다. 나이는 어려 보였는데 움직이는 모양새는 다 자란 어른 같았다.

"나와 내 동생에게 돈을 줄 수 있어요?"

진짜 헐이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당차다고 해야 할지 생글생글 웃으면서 돈을 달라고 하니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기가 막히다. 우리한테 돈을 맡겨 놓은 것도 아니면서 대 놓고 구걸을 하네"

작은 참새는 못마땅한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너에게 왜 돈을 줘야 하니?"

아이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우리는 가난한데 당신이 돈을 주면 행복할 것 같아요."

재미있는 아이였다.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당돌하지만 자기생각을 자신 있게 얘기하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그냥 줄 수는 없어. 네가 내 사진의 주인공이 되어 준다면 약간의 돈을 줄게."

아이는 흔쾌히 모델이 되어 주었다. 동생을 안고  한쪽 다리를 내밀고 비딱하게 선 아이의 모습이 영악해 보였다. 우리는 아이에게 모델료로 20 루피를 주었다. 돈을 받은 아이는 동생을 안고 우리를 질러 어딘가로 달려갔다. 자세히 보니 광장 입구에 앉아 있던 여인들 중 한 사람에게 가는 것이었다. 천천히 아이를 따라갔더니 여인에게 웃으며 우리가 준 돈을 내밀고 있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너의 엄마니?"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아이를 앞세워 돈을 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흘낏 쳐다보더니 얘기를 나누던 일행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거봐 주지 말자니까!"

"쓸데없이 동정하면 안 된다니까. 완전 직업형 구걸이잖아!"

 참새들은 격양된 목소리로 아이와 엄마를 흘겨보았다.

"동정이 아니고 거래였어! 아이는 우리의 모델이 되어주었잖아. 아이가 돈을 어떻게 하든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참새들은 수긍을 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 나오면서 맑고 초롱초롱했던 아이의 눈을 생각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모스크 안에서 만났던 여자아이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아이 들을 위해 잠시 기도했다.

입구에서 우리의 신발을  지켜 준 노인에게 감사의 뜻으로  10루피를 주었다. 릭샤왈라는 우리가 내렸던 곳에서 꼼짝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릭샤는 오늘 하루의 출발점인 산티로지 게스트 하우스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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