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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Mar 13.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30

## 아침 강가에서 만난 사람들 1

 "좁은 골목을 걷다 가트로 나오면  온몸을

휘감았던 밧줄을 끊고

 나만의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

바라나시의 아침은 서늘했다. 밤새 내려앉았던 어둠의 이슬이 가트를 따라 강가로 밀려나고 있었다. 제법 두툼한 숄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이 강가의 아침을 맞기 위해 나와 있었다. 사람들은 벌써 배를 타고 강가로 나가 떠오르는 태양 아래 머물기도 했다. 가트 반대편에서 떠오른 태양은 강가 위에 길게 붉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바라나시의 미로같은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하더라도 강가를 향해 가트로 나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바라나시에서 모든 길은 가트로 통하기 때문이다. 탁 트인 가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가트 뒤에 꽁꽁 숨은 오밀조밀하고 복잡한 세상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반대로 좁은 골목을 걷다 가트로 나오면  온몸을 휘감았던 밧줄을 끊고 나만의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비슈누 레스트 하우스 옆으로 난 긴 계단을 내려오니 이른 아침 강가에 나와  빨래를 하는 도비를 만날 수 있었다. 더러는 가트에 앉아 빨래를 하는 도비도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서서 강가에 발을 담근 채 힘차게 빨래를  돌에 내리치는 모습은 역동적이었다. 아이들은 경사진 벽으로 빨랫감 보따리를 굴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제 몸짓 만한 보따리를 양쪽에서 들고 도비가 있는 곳까지 나르는 것이었다. 밝고 유쾌한 아이들이었다. 따뜻한 침대 속에서 어리광을 부릴 이른 시간에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빨래 보따리도 찝찝한데 강가의 흙탕물에서 빨래가 될까 싶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흘러나온 오폐수들이 정화도 되지 않은 채 강가로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에 빨래를 빨고 눈부시게 하얀색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신기했다.  빨래를 하던 도비들이 자신들을 찍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소리쳤다. 자신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조금 물러나 희미한 그들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가트는 강변에서 강가까지 이르는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제방을 말한다. 바라나시의 구시가지 강 서쪽을 따라 80여 개의 가트가 줄지어 있고 강 상류에 위치한 아씨 가트 위로도 새로운 가트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1시간 정도 걸으면 이름 난 가트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강기슭을 따라 높게 쌓아 올린 왕후의 저택과 사원들이 그 사이를 메우고 있다. 우기 때는 물이 불어 가트가 모두 잠기고 높은 성벽까지 물이 찼었다. 물이 빠지면서 매일 매일 조금씩 드러나는 가트의 진흙을 씻어내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급경사의 가트에 자로 잰 듯 질서 정연하게 널려 있는 하얀 침대 시트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간혹 흙 위에 보따리 천을 깔고 널어놓은 빨래도 보였다. 바람에 날아갈 까 돌로 눌러 놓았는데 나는 날아갈 걱정보다 더러운 흙이 빨래에 묻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빨래를 전문으로 하는 도비들이 아니더라도 빨래를 하러 나온 여인들이 있었다. 남자 아이는 엄마 옆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빨래하는 여인들을 보니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생각이 났다.  더러운 때를 두드리는 동네 아줌마들의 방망이 소리가 냇물 소리와 합쳐져 근사한 음악이 되었었다. 나와 친구들은 옆에서 송사리를 잡느라 물풀을 헤치고 다녔다. 집으로 돌아갈 때 쯤이면 다시 냇물에 쏟아부을 물고기를 뭐하러 그리도 열심히 잡았는지...... 그래도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엄마가 그립고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립다. 거기에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내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원스럽게 빨래를 하는 여인들의 유쾌함이 좋아 사진을 직어도 되냐고 물으니 수줍은 두 여인은 입을 가리고 웃는데 여장부 같은 털털한 여인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며 활짝 웃었다. 나도 엄지 손가락을 들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강가의 아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가는 그들를 품어주는 어머니이다."

"바라나시"라는 지명은 북쪽에서 흐르는 바루나(Varuna)강과 남쪽으로 흐르는 아시(Assi)강 사이에 자리한 데서 유래하였다. 바라나시의 옛 이름은 순례 성지로서의 명칭인 카쉬(Kashi)였다. 이것은 '영적인 빛이 넘치는 마을'을 의미한다고 한다. 카쉬 또는 까쉬라는 지명은  "하레하레 마하데비 카쉬-비슈와나트-강가"라는 주문에도 나타난다. 우리는 강가(Ganga)의 영어 명칭인 갠지스(Ganges) 란 명칭이 익숙하지만 강가 자체가 여신 강가 마티지(Gangamataji-어머니인 강가신)로 숭배되고 있다.

 인도를 여행 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바라나시의 강가를 기억한다고 한다. 강가의 성스러운 물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악이 씻겨 나가고, 바라나시에서 죽어서  화장하고 남은 재가 강가에 뿌려지면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힌두 성지인 바라나시를 찾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 곳에서 죽음을 맞기 위해 오는 이도 있다고 한다.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어머니의 강, 강가! 우리에겐 신성하다기 보단 오염된 흙탕물처럼 보였다. 실제로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강가에서 행해지는 의식을 보고 나면 손조차 담그기 꺼려진다.

 강물은 고여 있지 않고 흐른다지만 북쪽의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는 망자를 태운 검은 재가 흐르고, 강물을 따라 내려오던 재가 물결을 따라 흩어지면 사람들은 강가에서 목욕을 하며 죄를 씻는다. 강가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담근 사람들 사이사이에는 신성한 강가 물을 긷는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불을 밝힌 꽃 접시를 띄우는 사람들이 있고, 푸자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아래에선 도비들이 빨래를 하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또 하나의 화장터에서 망자를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아름답고 성스러운 광경이지만 예고 없이 자리를 잡고 치러지는 강가의 많은 의식들은 어머니의 강, 강가의 여신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름에 강가를 찾았을 때 강가 물을 정화시키겠다는 한국에서 온 이들을 만났었다. 정수기 회사는 아니라고 했는데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가 물을 담은 투명한 통에 작은 약품을 넣고 흔들었다. 그러자 강가 물은 맑게 정화가 되고 바닥에는 뭉글뭉글한 갈색 오물들이 남아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놀라움에 소리를 지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거기까지 지켜보다 자리를 떠 그다음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인도 사람들은 어머니의 강, 강가가 더럽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요즘은 인도 시민단체에서도 "강가를 살리자"는 운동을 펼쳐치고 있다고 한다. 그들도 강가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가는 그들를 품어주는 어머니이다.


"보트 탈래요?"

 메인 가트 쪽으로 나가자 배를 타겠냐고 묻는 호객꾼들이 다가왔다. 우리는 배를 타고 강가 곁으로 좀 더 가까이 가기로 했다. 호객꾼 중에 한 명이 알은 체를 했다. 자세히 보니 여름에 보트르 태워주었던 사람이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 기억이 좋은 기억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다.

배 삯은 사람 수와 시간에 따라 다랐는데  우리는 1시간에 200 루피를 주기로 했다. 여름에는 푸자를 보기 위해 배를 타려면 1000루피를 부르기도 했었다.


 강가는 잔잔한 바다 같은 모습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사람들 주위를 맴돌고 선상 기념품 장사들은 손님을 찾아 열심히 노를 저었다. 지나가는 배를 세워 꽃 접시를 두 개 샀다. 불을 밝히고 소원을 빈 후 강가에 띄웠다. 하나는 참새들을 위해 또 하나는 나를 위해 물살을 저어 멀리멀리 밀어주었다.


" 아프지 말고 아프더라도 조금만 아프고 자라게 하주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과 맞서게 해주세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게 해주세요. "


"큰사람이 되거라. 세상 앞에 우뚝 서서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 되거라."

 강가에서 색다르게 아침을 맞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은  마을 어르신 예닐곱분이 모여 앉아 손바닥 크기의 작은 악기들을 두드리며 푸자를 하고 있었다. 일종의 교리공부같아 보였다. 경쾌한 리듬악기에 맞춰 낭송을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췄다.  가까이 가서 한참을 서 있었더니 자리를 내주며 옆에 와서 편히 앉으라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가까이 앉았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강가로 퍼지는 맑은 합창이 듣기 좋았다. 품위있게 나이든 어르신들의 모습이 나를 다시 한 번 미소짓게 했다.

짜이를 파는 길거리 카페

 따뜻한 짜이를 들고 발밑에 강가가 내려다보이는 둥근 가트에 앉았다. 강가의 바람이 향긋했다. 강가의 아침을 여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동력선의 검은 연기도,  강가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위협적인 갈매기의 날갯짓 까지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다.  가만히 숨을 들이 마쉬고 두 눈을 감았다. 너그러운 엄마품에 안긴 듯 편안했다.  그리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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