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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Mar 16.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31

## 아침 강가에서 만난 사람들 2

" 이른 아침 강가에서 행해지는 그들의 의식은 매우 관능적이며 신의 이름으로
 허락된 유혹이었다. "

이른 아침 강가에는 여행자를 실은 수많은  배들이 화려한 꽃처럼 떠 있다.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떠 있는  배들은 서로의 곁을 스치며 같은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란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오늘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내일을 꿈꾸는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노를 저어 움직이던  배들은 모터를 달고 기름을 넣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찰진 물살을 밀어내던 소리는 요란한 동력선에 묻혀 버렸다. 동력선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긴  무지갯빛 기름띠를 달고 쏜살같이 달렸다.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했고 환호성을 질렀다. 참새들과 나는  잠에서 깨어난 시끄러운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침묵하기로 했다.

 배에서 내려 메인 가트인 다슈와메트가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메인 가트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새벽 강가에서 목욕을 마친 사람들이 넓은 가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대부분이 하얀 피부에  불룩  나온 배를 자랑스럽게 내민  남자들이었다. 이 중에서 어깨에 흰 명주실을 두르고 뒤에 꽁지머리를 한 사람들이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다.  그들은 육중한  체구에 매서운 눈을 하고  묵직하게 앉아 있다.


 여인들은 얇은 사리를 입은 채로 강가에 뛰어들었다. 흠뻑 젖은 사리를 입고 물 밖으로 나온 여인들은 매혹적이었다.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의 <목욕하는 여인> 이 떠올라 사리 속에 감춰진 여체의  부드럽고 이상적인 곡선이 그려졌다. 사리 사이로 보이는  나이 든 여인의 풍만하게  늘어진  가무잡잡한 피부는 더욱 아름다웠다.  능숙한 솜씨로 옷을 갈아입고  긴 머리를 빗질하는 여인들! 이른 아침 강가에서 행해지는 그들의 의식은 매우 관능적이며 신의 이름으로  허락된 유혹이었다.


강가 마타지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화려한 원색의 꽃들이 가트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작은 일회용 접시에 담긴  화려한 꽃불을 강가에 띄웠다. 사원 앞에서는 이발사가 빨간 쪼리를 벗고 편안하게 앉은 손님을 맞고 있었다. 턱에 하얀 거품을 잔뜩 바르고 면도를 기다리던  손님이 어릴 적 아빠를 따라갔던 동네 이발관을 떠올리게 했다. 둘째가 아들이길  바랐던 아버지는  장군 같은 듬직한 얼굴을 한 계집아이가 태어나자 크게 실망하셨다고 한다. 아들을 바라서였을까? 아버지는 나를 아들 같은 딸로 키우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아빠를 따라 이발관을 다녔다. 그때는 긴 면도칼이 지나갈 때마다 하얀 거품을 걷어내고 드러나던 아빠의 맨살이 멋있어 보였다. 성 정체성이 서지 않은 어린 나이라  멋진 남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인도는 나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는 듯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 핸드폰을 들었더니 이발사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사진기를 들 때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시간을 잡아두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기에 오랫동안 추억하기 위해 사진기에 담는다. 하지만 너무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쪽에는 방금 목욕을 끝낸 순례자들이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을 건네 주자  순례자들은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붉은빛이 강한 룽기를 두른 순례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을 찍으라고 자세를 잡았다. 참새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는 흔쾌히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유쾌한 순례자를 만나 상쾌한 아침이었다.


  "저 할아버지는 뭐예요?"

 저쪽에서 독특한 복장을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는 종종 수행자라 불리는 "사두(Sadhu)"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얼핏 보면 걸인 같기도 한 사두도 있고 화려하게 치장을 한 사두도 있다. 그런데 가끔 화려하게 치장한 사두들은 사진을 찍으라고 하고 모델료를 요구한다. 일종의 보시 개념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더러는 자율적 보시의 개념을 넘어 돈을 강요하는 사두도 있었다.


얼굴에" 비부티"라는 하얀 재를 바르고 지팡이를 짚고 당당하게 걸어오던 사두는 우리 앞에 멈춰 서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웃으며 괜찮다고 했더니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두 같았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10 루피로  보시를 했다. 아침에 따뜻한 짜이 한 잔이라도 들게 하고 싶었다.


"자신이 믿는 것이 최고의 신이며 자신의 신께  경배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메인 가트  주변에는  사제들이 곳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평상 위에 커다란 파라솔을 펴놓고 있기도 하고  사원 지붕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사제들은 여행자들이 지나가면 열심히 손짓을 하며 부른다. 다가가면 검지 손가락에 염료를 묻혀 이마 가운데에  티카를 찍어준다. 그리고는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기도 한다.  

사제들은 가정에 초청되어 제의식을 치러준다. 부유한 가정에서는 매일매일 집에 있는 신당에 제를 모시기 위해 사제들을 초청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정에서 예배를 볼 때 신부님이나 목사님을 초청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사제 앞에 삭발을 한 청년이 열심히 짜파티 반죽을 떼어 동그란 경단을 만들고 있었다. 궁금해서 물으니  돌아가신 부모님의 위령제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삭발을 한 상주에게 폐가 될까 봐 조용히 뒤로 물러나왔다. 다른 쪽에서도 삭발을 한 상주들이 사제 앞에 앉아 있었다. 저들은 사제에게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

강가의 가트에서는 매일 저녁 6시 30분 경부터 한 시간 정도 "아르띠 푸자"가 열린다. 아르띠(Arti)는 기름등불을  의미하고, 푸자는(Puja)는 예배란 의미이다. 그래서 아르띠 푸자는 기름등불을 가지고 하는 예배를 총칭하는 말이다.  엄격하게 선발된 8명의 전문 사제들이 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동작으로 마치 군무를 추듯 푸자를 진행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들고 제를 치르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한쪽에서는 4개의 종소리가 끝없이 울리고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축문인지 주문인지 모를 반복적인 음성은 사람들을 푸자 앞에 모여들게  한다.  여름에는 가트가 물에 잠겨 가까운 옥상에서 치러지는 푸자를 보기 위해  강가에 띄운 배에 올라 관람했다. 각푸자는 각 가트마다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는데 좀 더 많은 볼거리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경쟁하듯 푸자가 치러진다. 푸자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푸자를 보러 오는 사람 말고도 사제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사람들을 통제하는 사람, 그리고 보시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시 가트의 푸자가 열리는 곳

 푸자가 끝나갈 때쯤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하레하레 마하데비(Hare  Hare Mahaadev)"

 "위대한 신이시여 찬양합니다."를 외친다.

 처음 푸자를 보았을 때 종교단체의 부흥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푸자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눈은 불과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들의 믿음 앞에서  타 종교와의 비교는 무의미했다. 나는 세 번째 푸자를 보고서야 웃으며 사람들과 함께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종교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같은 성서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은 자신이 믿는 것이 최고의 신이며 자신의 신께  경배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가 상업화되고 상품화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종교가 정치와 손을 잡고 광기로 변하는 모습이다. 인간이 신처럼 굴지 않기를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 내가 아닌 우리에게 향하길 기도한다.


내 안으로 당겨지는 "오늘 아침"을 되뇌며 건강한 하루를 열고 있었다.

 어디서 왔을까?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가트에 앉아 있었다. 길잡이의 지시에 따라 앉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가트 상인의 마음도 들떠 있을 것 같았다.


  부지런한 청년 화가도 만났다. 가트에서 강가를 그리는 가트의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도구라고는 낡은 팔레트와 붓 하나  그리고 페트병에 담긴 물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훌륭했다. 큰 참새가

"어떻게 저것만으로 저런 멋진 그림을 그리지?"

하고 의아해했다. 믿기 어렵다는 눈치였는데 한참을 지켜보더니 그저 놀란 눈만 깜박거렸다.


아침 강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와 참새들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강가에 나왔으리라. 강가에서 아침을 맞는 사람들은 모두 건강해 보였다.  내 안으로 당겨지는 "오늘 아침"을 되뇌며 건강한 하루를 열고 있었다.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을 만난 나도 행복했다. 나를 만난 그들도 행복하길 기도했다. 나와 함께 있는 내 사랑들도 행복하길 강가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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