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바라보는 것으로 삶이 풍요로워 지길!
"아버지 왜 죽음을 두려워하십니까?
아직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 러시아 속담
우리는 죽음 앞에서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죽음은 경험할 수 없다. 다만 타인의 죽음을 기억할 뿐이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일 수도 있고 분노가 될 수도 있으며 동경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분노였다. 내가 만난 첫 죽음은 여고시절 외할머니와 이모가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파리한 입술로 차갑게 누워 있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4년 뒤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만취상태로 여자친구들을 태우고 달리던 스무 살의 청년에 의한 죽음이었다. 난 불공평한 세상에 분노했다. 고생만 하던 착한 나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몬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 세상에 굴복한 나의 사람들이 원망스러웠고 나를 두고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산다는 건 이런 것인가?
참새들과 함께 화장터가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로 향했다. 화장터 가까이 가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가트 곳곳에 검은 재가 묻어있었다. 화장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배에서 사진기를 들고 화장터를 주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고 화장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병든 들개와 염소들 그리고 소들! 천연덕스럽게 망자의 불 옆에서 잠을 청하는 녀석들은 죽음을 초월한 저승사자 같았다. 무언가 어수선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듯한데 이곳의 하늘만 궹한 눈을 하고 있는 듯했다. 참새들이 걸음을 멈추는 곳에서 나도 걸음을 멈추었다.
화장터 근처를 서성이면 현지인들이 여행자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게 해주겠다거나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여름에 마니카르니카 화장터를 찾았을 때 우리에게 접근한 현지인도 특별한 혜택을 줄 것처럼 따라다니며 돈을 요구했다. 바라나시를 잘 알고 힌두어를 잘하는 일행을 보고 놀라며 물러섰지만 다른 여행자에게 버럭 화를 내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보았다. 한 일본 청년은 사진을 찍다 들켜 사진기를 뺏길 위기에 처했었다. 끝까지 사진기를 사수하긴 했지만 서너 명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었다. 화장터에선 다가오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조용히 방해가 되지 않을 거리에서 지켜보면 된다.
바라나시에는 두 개의 화장터가 있다. 메인 가트인 다 샤슈와 메트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하라슈찬드라 가트의 화장터가 있고 북쪽으로 마니카르니카 가트의 화장터가 있다. 유명한 마니카르니카 화장터에 비해 하라슈찬드라 화장터는 한산하고 접근성이 좋다. 누가 화장터가 관광코스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하겠다. 여행자들이 강가의 가트를 거닐게 되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곳이긴 하지만 관광코스라서가 아니라 독특한 인도의 화장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어쩌면 망자를 사진기에 담으려는 것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것도 무례한 욕심이다. 사랑하던 사람의 손을 놓는 일이 어찌 슬프고 아프지 않을까! 화장터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슬픔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다. 이국땅에서 또 다른 죽음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터 근처에서는 망자를 비롯한 화장터의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강가의 마니카르니카는 "보석 귀고리"를 의미한다. 고행을 하던 비슈누 신 앞에 나타난 시바신의 귀고리가 연못에 빠졌다는 신화에서 유래한다. 신들은 뭘 그렇게 하나씩 흘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지 모르겠다.
강가에는 시신을 태울 장작을 실어나르는 배들로 혼잡하다. 화장터에서 일하는 불가촉천민들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커다란 통나무를 쉬지 않고 지고 나른다. 마니카르니카 가트의 화장터는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망 당일에 운반되어 온 시신은 시바신을 모신 타라게슈와르 사원에 우선 안치된다. 시바신이 죽은 자의 귀에 타라카 만트라 (구재의 진언)를 속삭이면 생전엔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도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천으로 싼 대나무 들것에 운반되어 온 시신은 황금색(여자는 붉은색) 천으로 싸여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다. 4명의 사내들이 어깨 위로 시신을 들것에 받쳐 들고 강가에 이르면 그대로 강가에 적신 후 어느 정도 물이 빠지면 준비된 장작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화장터를 어슬렁거리던 소와 염소들은 시신을 덮고 있던 꽃을 먹기 위해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다. 상을 당한 사람들은 정수리 부분에 동전만 한 크기의 머리카락만을 남기고 삭발을 하는데 삭발을 한 상주는 신성한 "소마풀"에 불을 붙여 장작더미를 빙 둘러 불을 놓는다. 불꽃을 접한 장작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시신을 덮고 있던 황금색 천이 먼저 타들어가고 서서히 망자의 몸이 드러난다. 망자는 불길이 이르는 대로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를 허공에 남기며 3시간 동안 타들어 간다.
가난한 자들은 죽은 후에도 가난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400불 정도의 장작 값을 대지 못하는 사람들은 질이 좋지 않은 장작을 사거나 적은 양의 장작으로 화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시신은 오롯이 재가되지 못하고 남아 들개들의 먹이가 되곤 한다. 소와 염소들은 꽃을 먹고 들개들은 타다 남은 시신을 먹고 화장터의 사람들은 망자의 해탈을 도움으로써 생을 유지한다. 시신이 타고 남은 재는 화장터에서 일하는 도무가스트에 의해 강가에 흘려보내 진다. 강가를 따라 떠내려가는 검은 재는 아래로 흐를수록 멀리멀리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머니의 품에서 와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을 찾지 말라. 죽음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완성으로 만드는 길을 찾으라."
- 함마슐트
아직 인생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이와 인생을 초월한 출가 유행자는 화장하지 않고 누름돌을 달아 강 깊은 곳에 가라앉힌다. 그러나 5세 이하의 아이는 누름돌을 달지 않고 그대로 강가에 떠내려 보낸다. 그래서 가끔 강가에서 물살을 타고 가는 어린아이의 시체를 만나기도 한다. 지난여름 강가를 찾았을 때는 죽은 소가 떠내려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수면 위로 떠오른 정체 모를 물체를 보면 오싹하면서도 유심히 보게 된다. 이렇듯 어머니의 강, 강가는 강가에 버려진 모든 것들을 품고 그것으로 새 생명을 자라게 한다. ( 위의 사진 일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화장터 관리국의 허가를 받아 촬영된 프로존 blog.prozone.com에서 가져왔다)
"엄마, 그만 가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큰 참새였다. 작은 참새가 굳은 표정으로 화장터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큰 참새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했다. 우리는 화장터 뒤쪽으로 돌아 메인 가트로 돌아왔다.
"불편했니?"
"응 할아버지 생각나서"
"그랬구나!"
"할아버지도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 재가 되셨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좋지 않았어!"
작은 참새가 큰 참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벌써 3년이 지났다. 엄마를 잃었을 때 보다 나를 더욱 슬픈 두려움에 흔들리게 했던 시아버지의 죽음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하늘의 문으로 들어가는 죽음을 지켜본 것이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기엔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아버지는 나를 원망하듯 짙은 황달의 눈을 부라리시며 밤마다 나를 찾아왔었다. 아버지를 살리지 못한 죄책감과 아버지의 부재로 떠안은 남은 시간들이 나를 짓눌렀었다. 하지만 시간은 어쭙잖은 변명을 만들고 무뎌지는 기억만을 남겨놓았다. 그제서야 나는 현실을 직시했고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갈까?"
"난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 어차피 죽은 사람은 모르는 건데 뭐. 모든 것은 남은 사람의 몫이지!"
큰 참새의 말은 차가웠다.
"글쎄 어디로 갈까?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근데 난 엄마가 안 죽었으면 좋겠어!"
"바보야,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죽거든!"
"알아. 근데 엄마는 우리 곁에 영원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영원"이란 것이 존재할까? 지금까지 살아본 바에 의하면 영원한 것은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면서도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어리석음을 확인할 뿐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니?"
"그럼!"
"당연하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하는 참새들이 낯설었다. 작은 참새는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고 두렵지만 공부 때문에 자살한 사건을 접하거나 죽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을 때면 한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고 한다. 자기 목숨은 소중한데 저런 걸로 죽나? 하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그럴 땐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어른들이 정말 밉단다.
"진영이는 그런 생각해 본적 없어?"
"있지!"
작은 참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작은 참새도 나도 모두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손목에 난 희미한 칼자국을 보았을 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울었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아이의 가슴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은 참새는 그 일을 겪은 후 부쩍 자랐다. 소심했던 녀석이 중학교에선 학교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매 순간을 즐겼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가는 녀석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었다.
"진아는 어때?"
" 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죽기 싫어. 그냥 열심히 나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거야!"
큰 참새다운 대답이었다. 자기가 하기 싫은 건 절대로 하지 않는 아이였다. 자유로운 아이라 틀에 박힌 것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어찌 되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였다.
"언니는 정말 세상 걱정이 없어! 맨날 나만 속이 타요"
"아니거든. 나도 걱정 많다고요. 어린 네가 뭘 알겠냐!"
참새들이 토닥거렸다. 어리다고 죽음을 모를까? 인간들이 만든 지옥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릴 땐 어린 대로 나이들 어선 나이 든 대로 걱정이 있고 힘겨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 , 사는데 까지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지!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거니까."
"엄마, 그런 의미에서 우리 밥 먹으러 가자. 배고파!"
작은 참새가 양팔을 끼고 매달렸다.
"가자. 끝까지 버티려면 에너지 충전해야지!"
우리는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기쁨을 찾고 있는가?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
마니카르니카 가트의 화장터엔 하늘과 땅과 강이 열린 곳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자의 시신이 불과 함께 타오른다.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이 다시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은 한 줌 재로 남을 것을 욕심은 부려 무엇하나 싶기도 하고 내 몸에 뜨거운 불이 닿는 듯하여 지켜보는 일이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잘 산 사람이 잘 죽는다는 말이 있다.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한 때 분노였던 죽음에 대한 기억이 동경이 되었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이 싫어 도망치고 싶었다. 외할머니와 이모를 원망하면서 결국은 나도 그들처럼 세상에 굴복하려 했다. 하지만 도망치기엔 열심히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억울했다. 남은 사람의 슬픔도 잘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선례를 남겨 참새들에게 오지 않은 내일의 행복을 빼앗을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아닌 자유를 택했다. 지금 나는 마음으로부터 내려놓고 몸으로부터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달리고 사랑하고 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었는가? 오늘도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기쁨을 찾고 있는가?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