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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Jan 04.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6

## 배낭 속에 뭐가 들었니?  D-1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담아라. 감당할 수 없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누구도 네 짐을 대신 져주지는 않는단다."


 나의 두 참새에게 주의사항 몇 가지를 알려주고  각자의 배낭을 꾸려보라고 했다.  나 역시 배낭여행 초보이니 특별히 알려줄 것은 없지만 지난번 경험을 토대로 배낭의 반쯤은 비워가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길 것. 인도는 현지 물가가 싸서 옷가지를 비롯한 생필품은  그곳에서  구비하면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챙길 필요는 없다. 완벽하게 챙긴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여행 배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아니면 절대 안 되" 하는 것만 챙기면 된다. 대신에  아이들에게 책과 노트 한 권은 꼭 챙겨가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배낭 속에 뭐가 들었나 볼까?"

 

 큰 참새   진아가 배낭 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 둘 꺼내 놓았다.  배낭 속으로 서너 번 손이 들락날락거리더니 "끝" 이란다. 요즘 애들 말로 헐~~ 이다. 간단하게 챙겨 오라고는 했지만 간단해도 너무 간단하다. 세면도구 몇 가지와 옷 한 벌 그리고 스케치용 공책과 연필이 전부였다. 복잡한 거 싫어하는 진아답다. 나도 모르게 긴 날숨을 쉬고  되는대로 구겨 넣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돌돌 말아 작은 수납가방 속에 넣어 주었다.

 

"내 것도 봐주셔요"

 군용 배낭을 선택한 작은 참새가 생글생글 웃으며 배낭을 엎기 시작했다. '엄마! 난 제대로 잘 쌌어요.' 칭찬을 기다리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또다시 헐~~ 이다. 끝도 없이 나오는 작은 수납가방들과 그것들을 하나하나 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들춰보다 박장대소를 하고 뒤로 벌러덩 눕고 말았다.

 손세정제를 시작으로 입안 청결제, 눈썹 정리 칼, 여드름 패치, 여드름 연고, 수많은 피부보호제와  화장품 그리고 넉넉한 옷가지들이 방안 가득 펼쳐졌다.


 "맙소사! 이건 진짜 아니다."

내가 집어 든 것은 고데기였다. 인도에 가서 고데기를 쓰겠다고? 그래 쓸 수도 있다. 아무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참새, 삼주 내내 이거 다 짊어지고 다닐 수 있어? 짐은 계속 늘어날 텐데 괜찮을까? "

"짐이 왜 늘어요?"

 작은 참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잠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아무 설명도 하지 않기로 했다. 타협 끝에 몇 가지를 걸러냈다.

"고데기는 절대 포기 못해!"


그래 포기하지 마라. 엄마가 고추장을 포기 못 하듯 너도 하나쯤은 지키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나는 작은 참새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가방은 여전히 빵빵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담아야 해.  감당할 수 없다면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단다. 누구도 네 짐을 대신 져주지는 않을 거야. 왜냐하면 자신의 짐을 지기도 버겁기 때문이지"


 참새들에게 잠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여행길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배낭여행은 배낭을 풀었다 쌌다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챙길 것이 많으면 잃어버리기도 싶고 잊기도 싶다. 낯선 곳의 기후와 음식, 문화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배낭까지 무거우면 몸이 아프다.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버겁게 느껴져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마음이 아프면 작은 것에 노여워지고 서러워진다. 그때부턴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좀 봐줘!'

 혼자라면 어차피 혼자니까 의지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 잡겠지만 동행이 있으면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게 된다. 낯빛이 변하고 튀어나온 입 사이로 새어나온  말들은 잡을 새도 없이 제멋대로 퉁퉁 튀어나간다.


"그래 한번 짊어져보아라. 짊어져보지 않고 그 무게를 어찌 알겠니? 짊어져 보고 감당할  수 없으면 그때 하나씩 버리면 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각자의 무게를 책임지라고 말했지만  벽 한쪽에 나란히 기대앉은 배낭 세 개를 보고 있노라니 저걸 어쩌나 하는  마음에 깊은 한숨이 나왔다. 큰 참새의 두 배쯤 되는  작은 참새의 배낭이 밤새도록 걱정되었다.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가? 어쩌면 나는  참새들의 짐이 내 짐이 될까 봐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참새들이 감당할 수 있다지 않는가?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나를 믿어야 한다. 여행길에서 나를 믿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서로를 믿지 않으면 부딪치게 된다.

우리는 내일 새벽 6시 청도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창밖으로 빛나는 수많은 불빛들이 별처럼 깜박인다. 이 밤에도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을 짊어지고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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