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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닉스 불나방 Sep 20. 2016

Jeff in Heaven

내 친구 Jeff는 더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글을 쓰는 일이 처음입니다.

추모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리네요...

저는 오늘 3시에도, 어제 3시에도 생각하고 있는 제 첫 미국친구 제프 대한 기억을 적으려고 합니다...


지난주 이 곳 미국은 아무날도 아닌, 그렇지만 한국은 추석이었던 날 9월 15일에 제프는 갑자기 죽었습니다.  저는 불과 일주일 전에 그와 만나 새로운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하였는데 말입니다.

제프가 누구냐면요... 제가 살고 있는 피닉스하고도 해피밸리라는 동네에서 제 앞집에 살았던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젊고, 아저씨라고 하기엔 조금 늙은 듯한 그런 미국인입니다.

나이를 잘 까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 이 곳 사람들이지만, 저와 제프는 서로의 나이를 알았답니다.

저를 턱없이 28세로 봐줬기 때문에 (동양인의 나이는 정말 가늠하지 못하더군요) 속이기엔 너무 갭이 커서 순순히 나이를 밝혀주었고 제프와 저는 대략 10~12살쯤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제프는 제게 almost 60이라고 했기때문에 대략 57~59세라고 전 추정할 뿐이예요.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네요...


제프는 미시간에서 태어났고, 애석하게도 15년전에 이혼하여 아이는 없으며, 죽기전까지는 여자친구 펨과 살고 있었어요.  시카고 컵스를 너무 사랑하는 아저씨였고, 매주 한번씩 알콜홀릭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고, 4개의 씨푸드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지금은 은퇴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던 터였어요.  언제고 결혼을 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놓지않고 있었고, 아이도 갖고싶어했어요.  레스토랑이 너무 힘겨워 다 놓았다고 하더군요.  


제프를 처음 만난 건 제가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날이예요.   전 그날 섬과 같은 존재랄까요...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 혼자 뚝 떨어진 그 고립감이란... 그런데 그날 제프와 펨이 걸어오더군요.  바로 앞집이예요.

이름을 말해주고는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내밀며, 어떤 도움이라도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미국사람들... 무슨 도움이든 필요하면 말하라고 입에 달고 살아요.  그치만, 막상 전화번호를 건네주면서 도와준다고 말해오면 어떨 것 같으세요?  그 진심이 전화번호 적힌 종이 위에 춤을 추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누군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니 그것 만으로도 순식간에 맘이 편안해졌어요.  처음보는 낮선 동양인에게 선뜻 전화번호를 내밀 수 있는 맘의 여유와 용기는 아무나한테 있는 건 아닐거예요. (저희 동네에서 동양인은 제가 유일해요)  그러더니 잠시 후 핫도그 번, 소시지, 칠리소스를 봉투째로 들고와 먹으라더군요.  이사하는 날이니 음식도 제대로 먹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는지 자기네들이 먹는 거라며, 좋아하냐고 묻고는 괜찮다고 하니까 바로 통째로 가져다 주더라구요.   생각해보세요... 전화번호에 이어 한국으로 치면 '나 먹는 밥이다' 하면서 핫도그를 준거잖아요.  눈물이 왈칵했어요.  이렇게 제프는 이방인인 저와 아이들에게 정말 감사한 사람이었어요.

그 후로도 제프는 저의 흑기사가 되어 주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할 때도, 재활용 쓰레기통을 교체해야할 때도, 인터넷 요금이 턱없이 나와 서비스센터 직원과 싸울 때도, 이 곳에 조금은 살아줘야 알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바로 바로 알려주었답니다.


참, 제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인터넷과 TV 요금이 계약 조건과는 다르게 턱없이 높게 나왔던 어느 날, 영어로 따지고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저는 지나가는 제프에게 말했더니 선뜻 전화를 걸어준다더군요.  정말 구세주가 따로 없었죠.

그래서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세상에나!  제가 부탁하기도 전에 신발을 벗어주더군요.

그는 제가 먼저 말하기 전에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 신발을 벗어 준 유일한, 그리고 첫 미국인이었어요.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한번쯤 먼저 생각해주는 그런 마음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제 돈을 아껴주려는 그의 노력에 무한한 감사를 보냈지만, 사실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와 준것이 감동이고 고마웠어요.  절대 잊지 못할 일이랍니다.


이건 제프의 차예요.  시카고 컵스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번호판도 CUBWIN1 이네요.  그러고보니 기아차이기도 하죠... 전 3개월전 한국에 한달동안 나와있었어요.  그때 새벽 4시반까지 공항에 가야비행기를 탈 수 있는 스케쥴이었어요.  저는 택시나 우버를 이용할 계획이었는데요, 제프가 새벽 3시 50분에 집앞에 이 SOUL를 대고 가방 6개와 저, 아이들을 싣고 공항에 데려다 주었답니다.  친구가 편하게 공항에 가기를 바라는 맘이라고... 마침 남편이 없어서 공항나갈 일이 한걱정이었는데 제프가 데려다주었죠.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해보면, 왠만해서는 하지 않는 엄청난 일이라고 해요.  미국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잖아요.  남편이 괜찮겠냐고 미안하다고 하니까, 제프는 남편에게 '입장바꿔 생각해봐라, 너 친구 와이프와 아이들이 같은 상황이면 넌 차 태워주지않을거니?' 라고 물었어요.  남편과 저는 할말이 없었어요. 그저 고맙다고 했고, 안심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었죠. 이제 이 차는 따뜻한 마음의 주인을 잃었네요... 조만간 어디론가 가지 않을까 싶어요.



이 맛난 음식들은 제프가 제게 만들어 준 저녁식사랍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발목이 너무 아파서 걷지를 못했어요.  응급실을 가본 적이 없어 또 제프에게 가까운 응급실이 어딘지 물었죠.

그 다음 날, 전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제프에게 문자가 왔어요.  아이들과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어야 하니 6시쯤 집으로 잠깐 들리겠다고요... 이번에도 펨(제프의 여친)과 제프는 오븐에서 직접 나온 저 멕시칸 요리들을 들고 와서는 식탁에 놓아주고,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덜어주고는 가더라구요.  전직 요리사였던 제프가 다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친절하다는 말로는 부족하죠?  


제프는 제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은 첫 미국인 친구였답니다.  미국인이라는 단서를 자꾸 다는 것 같아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왜 제가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많이 먹은 나이는 아니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하며 맘을 나누는 일이 쉽진않은 나이예요. 성격도 그렇구요... 그런데, 고작 6개월동안 저는 제프를 알고 지냈는데요... 적어도 6년을 함께한 친구같네요.  제프는 국적, 인종, 문화와 상관없이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알려 준 제게는 의미있는 첫 친구였어요. 


이제는 그 친구를 다시 볼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아침에 마당을 쓸다보면 만날 것 같고, 차고에서 차를 빼며 창문을 내려 HOW ARE YOU를 외칠 것 같아요.  새로 시작한 사업(수제 소스 판매)에 대해 고민이라며 제게 또 물어올 것 같아요.  한국에서 광고회사를 다니고 마케팅 일을 했다고 말했더니, 조언을 구하더군요.  되도 않는 이야기들을 해주었지만, 무척 고마워했구요... 저 또한 그 일이 너무 즐거웠답니다.

제프를 내일쯤 만나서 그간 생각했던 아이디어들을 들려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그날, 추석 날 제프가 가버려서요... 얘기를 해줄 수가 없네요.  진즉에 해줄 걸 후회스럽네요... 뭐가 바빴는지 일주일을 그냥 보내버린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제프의 소스들, 제품 설명이 왜없냐고 물었더니 저리 달아두었네요, 처음엔 없었더랬어요>


제프는 분명히 좋은 곳에 있겠죠... 적어도 몸이 아프진 않을테니까요.   심장이 문제가 있었던 거같아요.

아침에 일어나 순식간에 갔다해요.  그는 길고 지난한 고통이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더 좋은 곳으로 홀연히 갔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다만, 준비된 죽음이 아니어서 당황스러울 틈 조차 없는 순식간이었겠지만, 그 깊고 따뜻한 마음에 대한 보상이었을까요... 제프는 고통없이 잘 갔다고 믿어지네요.

내일 아침에도 제프의 인사는 들을 수 없겠지만, 그가 제게 베풀어준 사랑과 정을 깊이 간직하며 그의 명복을 빌어요.   


다음 번엔 제프의 장례식을 적을께요.

그의 친구들이 준비 중이랍니다.  저도 도우려고 해요.  좋은 곳에 있을 제프를 위해 즐거운 음악과 음식을 준비하는 장례식을 다음 글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함께 제프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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