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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닉스 불나방 Oct 06. 2016

피닉스 오는 길

From L.A to Phoenix




나는 지금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 부부' 중이다.

(이 말에 대한 공감 여부, 사실 여부는 논외로 한다^^)

남편은 Los Angeles에서, 나와 아이들은 Phoenix에서 지내다 주말엔 피닉스에서 온가족이 함께 하는데,

이번 주말은 아이들의 FALL BREAK를 핑계로  L.A로 갔다. 


피닉스집에서 L.A집까지는 387마일(623킬로미터)로, 이 곳의 도로상황을 기준으로 단 한번도 쉬지않을 경우, 

6시간을 달린다.  물론 L.A 시내에 진입했을 때 러쉬 아워를 피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거리에 대한 좀 더 친절한 설명을 하자면, 서울에서 부산의 거리가 394킬로미터이고 평균적으로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피닉스집에서 L.A집까지는 서울에서 부산을 갔다가, 다시 서울로 반절보다 더 올라온 거리와 맞먹는 셈이다. 


  <좌: ARIZONA 주 경계 WELCOME SIGN                                          우: CALIFORNIA 주 경계 WELCOME>



오늘이 L.A 장거리 운전 다섯번째 날이다.

다섯번쯤 되니 이젠 6시간 운전 쯤은 그리 어렵지도 부담스럽지도 않다.  또한 처음 장거리 운전을 했던 그 때처럼 두렵지도 않고,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넓은 땅에 대한 WOW도, 부러움도 이젠 없다. 다만, 뒷자석에 앉은 두 아이들의 티격 태격 다툼 소리가 가끔씩 거슬릴 뿐이다.   '너희들 자꾸 싸우면 둘다 내려놓고 갈거야!'라고 큰소리로 엄포를 한번 놓고는 라디오 볼륨을 좀 높여준다. 지금 막 100마일이 남았다는 사인을 보니 얼마 안남았네 싶어 속도를 조금 올려본다.


우리 부부가 주말부부를 하게 된 배경은 설명하자면 긴데, 결론적으로 짧게 말해 '서울 기러기'보다는 'L.A기러기'가 그래도 낫다는 것이었고, 여러 기러기 가족들의 선례를 통해 가족의 해체를 간접 경험한 터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주기 위해서 혹은 미래를 보장받기 힘들어서 혹은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고 싶어서 등등 저마다 각각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어쩌다 보니 그러한 사람들의 반열에 속해 있는데, 오늘 피닉스로 돌아오는 길에는 유난히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가족의 다른 말, '식구(食口)'가 있다.  함께 살면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같은 밥솥, 같은 숟가락 쓰는 사람들이다.  같은 밥솥에 숟가락 꽂아가며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가족 혹은 가족같은 사람은 자꾸 몸을 부비고 서로 부딪치며 끈끈한 정을 쌓아간다.  그래서 같은 밥솥, 같은 숟가락이 주는 시간의 깊이와 무게감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  특히, 인간 관계에서는 시간의 힘을 믿는 나로서는, 그것이 오롯이 쌓여갈 때 아이들과 나와 남편의 깊이는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마저 생기는 터다.


남편이 퇴근해서 아이들과 내가 떠난 집에 혼자 들어왔을 때 허전하지 않도록 밥 냄새라도 솔솔 풍기라고, 쌀을 씻어 얹히고는 밥솥 타이머를 맞춰두고 왔다.  그 따뜻한 흰밥을 오늘 저녁, 우리 가족 넷이 모두 함께 할 순 없겠지만밥 냄새 가득 서로에 대한 믿음은 차고도 넘치리라 기대한다.  


남은 100마일, 얼른 달려서 난 아이들하고 같이 숟가락 꽂아가며 밥을 먹어야겠다.

피닉스 오는 길, 오늘은 그리 길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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