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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Mar 18. 2016

정장을 샀다

정장을 샀다. 작은 누나 결혼기념으로. 10년 전쯤 저렴한 가격으로 정장을 샀던 것으로 기억하니, 꽤 오랜만에 새로 정장을 맞췄다.

직업 특성상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게 일하셨던 아버지는 어릴 적,
"양복입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곳에서 일해라, 안 그러면 아빠처럼 고생이다."라고 여러번 말씀하셨다.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그리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인생 여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작은 누나가 결혼을 일주일 앞뒀다. 누나 결혼식도 잊고 교회 일정을 주도적으로 잡을만큼 나는 무심한 동생이다. 집안에 여러모로 기여를 많이 한 누나가 조만간 이 집을 떠난다. 그렇게 이 집에는 이제 꽤 늙으신 부모님과 시덥지 않은(아버지 표현으로) 직업을 가진 내가 남는다. 돈 모아서 장가가라며 집안 행사에 지갑도 못 열게 하신 부모님과 누나들 덕분에 그동안 기여 못한 아들이, 이제는 기여의 퍼센테이지를 조금 더 늘릴 작정이다.

정장을 샀다. 지금 나는 정장을 입어도 되고, 입지 않아도 되는 직장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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