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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Aug 22. 2017

잠시를 허용하지 않는 '여기'

그리고 그렇게 오늘의 잠시는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돌아보세요."

"잠시,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들 들어보세요."

"잠시, 자판 위에 손을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세요."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는 디제이들의 멘트다. 

이러한 멘트들은 보통 고민 상담 후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여유가 없이 사는 것 같아 지친다는 고민

가만히 앉아 음악들을 시간이 없다는 고민

업무에 치여 하늘을 돌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는 고민 등등


디제이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생각이 있는 것만 같다. 

여유, 쉼, 회복 없는 삶이 라디오 청취자 대부분의 삶이라는 것을.

씁쓸하다. 그것은 아니라고 분연히 일어나 반대를 외칠 재간이 없다. 

요즘 엄두를 내기도 어려운 것이 정서적인 쉼이니 말이다. 


신약성서를 보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추종하는 제자, 군중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의 필요 때문(병고침, 팬심 등등)이기도 하겠지만

공통적인 목적으로 예수를 추종하며 따라다닌다.

예수는 그런 회중에게 기적과 이적을 보이기도 하고,

믿음 없는 자들을 탓하시며 복음에 대해 강력히 설파한다.

예수는 회중에게 돌파구였고, 구세주였다.

생전 못들어 본 말들이 실제 사건으로 일어나고, 

가난한 자, 병든 자, 상대적 약자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시니

이들의 마음에 예수는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무언가'였던 것이다.


근래 사람들 마음속에 예수가 사라졌다. 

추종하고 따르고, 시간과 마음을 쏟았음에도 위로와 치유가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와 대립했던, 

율법의 한점 한획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원칙에 목숨 걸었던 바리새인들이

다시 등장하는 형국이다. 

혹독하고 가혹한 기준들, 세계의 잣대들이

사람들 마음속의 예수를 지워버린 것이다. 


'잠시'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잠시 쉬어가지 못하니, 다리가 아프고 골치가 아프다.

옆에 가는 사람이 어떻든 말든 그것은 더 이상 상관이 없다.

계속 가야하는데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의지 할 데가 없으니, 추종할 대상도 없다.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허용되지 않는 것일지도.


회사에 1시간 쯤 먼저 출근해 전기포트에 물을 부었다.

엊그제 로스팅 된 르완다 원두를 핸드 그라인더에 갈아서 종이필터에 붓고

조금 식은 물을 원을 그리며 조금씩 붓는다.

커피 찌꺼기를 종이 위에 골고루 펴 말리고 

창문을 열고 커피 향을 머금는다. 

잠깐 밖으로 나와 연남동 골목길, 

사이 사이 문 열기 전인 작은 가게들 간판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서 숨을 고른다.


그렇게 '잠시' '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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