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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Aug 25. 2017

자몽은 그렇게 '폭삭' 익어가고

자취본색 #2

복층의 원룸

한 쪽 벽면은 창문

다른 한쪽은 쪼매난 싱크대와 더 쪼매난 냉장고

작은 공간에 쑤셔(?)박은 살림살이는 어찌그리

차곡차곡 빈공간 없이 자리하고 있는지


빌트인(풀옵션) 원룸에는

혼자 먹을 것들을 넣기에 알맞은 냉장고가 있다

혼자 먹을 것들을 넣기에만 알맞다

그런데 문제는 대형마트들이

소량을 물건을 잘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1인 가구 배려 물품이 많이 늘긴 했다)


어릴 때 누나들 틈에서 자란 막내는

엄마 손에 들린 장바구니

아빠 손에 들린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관심을 거두는 즉시 음식이 바닥났기 때문에

그것은 어쩌면 생존 본능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낫개로 구매한 물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지냈던 유년시절

누나들이 순처적으로 결혼을 하면서

집에는 아부지 어무이 나 이렇게 셋이 남게 됐다

어머니의 장바구니는 가벼워졌고

이제 치킨 한 마리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렇게 갱식랑(닉네임)은 혼자가 되었다


냉장고에 음식을 다 못먹어 썩히는 일

그것은 마치 상상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를 걷는 일과 같았다


깻잎 안면이 흑빛으로 변해가고

청양고추의 꼭지가 거뭏게 시들어갔으며

오이는 한 시간은 족히 푹 삶았을 만큼 물러 있었다

딱딱했던 천도 복숭아에는 손가락이 푹 들어가고

장을 위해 구매한 유산균 음료는 유통기한을 지나

푹푹 발효되는 중이었다


칼로 도려내고 껍질도 벗겨보고

소금물에도 담궈보며 재생에 힘썼지만

모두 그 모냥으로 운명했고

그저 그렇게 음식물 쓰레기가 되었다


"아깝다"


그런 마음 지을 수 없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마트가 집앞 시장보다 싸고

가격 흥정 없이 누구 마주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장볼 수 있는 통로이니

눈물을 머금고 대량으로 구매하는 수 밖에


언제까지 이 악순환이 반복될지 모른다

개선책은 두 가지다

자취를 접고 다시 본가로 들어가거나

집에서 자주 끼니를 때우거나..

일단은 후자를 선택하려고 하는데

잘 해낼 수 있을지..


썩은 과일, 야채들을 다 버리고 났더니

냉장고가 공백기를 맞이한 적이 있었다

가끔 자기계발 서적들에서

비워놓고 내려놔야 한다는데

냉장고의 공백기는 그저 먹을게 없다는 뜻이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넣고 있느냐가

참 중요한듯 하다

잘 넣고 있다면 비우지 않아도 괜찮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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