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또래보다 글씨를 많이 아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간판의 글자를 읽고,
지하철 역 이름을 줄줄 외우며,
숫자나 사실적인 정보에
유난히 빠른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상담실에 오게 된 이유는
대개는 관계 때문이다.
한 아이는
친구들과 놀이터에 가면
지하철 이야기를 쉼 없이 늘어놓는다.
자기가 아는 노선,
환승 방법,
역의 이름들. 이야기는 길어지지만,
친구들의 표정은 점점 멀어진다.
아이도 그걸 느끼는지,
더 많은 정보를 꺼내 놓는다.
그 아이는 그것이
함께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요즘은 아이의 학습 시작이 많이 빨라졌다.
글씨를 빨리 읽고 쓰는 것이
발달의 중요한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종종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글씨를 많이 아는 아이보다
친구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아이,
지금 이 놀이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주변 상황을 살피기 어려운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 그 마음 한쪽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다루는 것이 아직 어렵다.
그래서 명확하고 바뀌지 않는 것들에 기대어
스스로를 안정시키려 한다.
지식이나 반복되는 행동은
아이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가 되어준다.
문제는 그 방식이
사람 사이에서도 그대로 사용될 때다.
아이들은 함께 놀고 싶지만,
어떻게 마음을 주고받아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래서 아는 것,
익숙한 것,
혼자 안전한 세계로 잠시 숨어버리곤 한다.
만 6세 이전의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지만 정서적 교감은
그보다 훨씬 먼저 자라야 한다.
이 시기에 경험한
‘함께 있음’의 감각은
학령기 사회성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된다.
글씨는 조금 늦게 자라도 괜찮다.
하지만 마음은,
친구들과 함께 비슷한 속도로 자라면
아이에게 더없이 좋은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