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내가 미술치료사로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은 다양하지만,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각각의 증상과 원인은 다르지만,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시간 그 자체로
치유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치료사마다 접근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체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하려고 하는 편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활동을 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그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이후 부모를 만나보면
‘함께 하는 것’ 이 어렵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 활동은 재료도 필요하고,
집에서 하기엔 번거로운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꼭 미술일 필요는 없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하려는 마음,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만으로도
아이와 부모 사이의 유대감은 깊어질 수 있다.
그것이 긴 시간일 필요도 없다.
미취학 아동은 부모의 손길을 더 많이 필요로 하지만,
학령기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일정만으로도
부모와 온전히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
오히려 그만큼
짧은 시간의 ‘함께함’이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도,
자기중심적인 말이라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 번쯤은 귀 기울여 들어줄 필요가 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놀이가 된다.
그렇게 아이와 나 사이에
감정의 통로를 꾸준히 만들고 유지할 때,
많은 부모들이 걱정하는 사춘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는
정서적 토대가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