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는 종종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대부분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아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기차를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열차의 종류와 번호, 역 이름을 줄줄이 외우며
이야기할 때면 눈이 반짝인다.
또 다른 아이는 곤충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곤충을 좋아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 아이는 특정 곤충 하나에 깊이 빠져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그 자체를 무척 즐거워한다.
아이들이 이렇게
특정한 주제에 몰입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아이의 단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는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를 좋아하고,
오래 관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후의 삶에서도 어떤 것을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는
지구력을 이미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이 아이들이 사회적 상황 속에서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내가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만 계속 이어가거나
그것을 중심으로 한 놀이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또래 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쉽게 섞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다시 혼자만의 놀이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정말 혼자가 좋은 아이들일까.
내가 만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은
누구보다 관계를 원했다.
다만, 그 방법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관계를 시도했다가 어색해지고,
거절당하고, 멀어지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 부정적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이의 마음에 불안정함으로 남게 된다.
이런 아이를 둔 부모는
가정에서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사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아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면
집에서라도 해야 한다.
부모가 귀 기울여 들어주고, 끊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충분히 함께 머물러 주는 경험은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정서적 토대가 된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그다음에는 아이가 조금씩 알게 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줄 수 있다.
“엄마, 아빠는 네 이야기가 재미있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항상 재미있어 하지는 않을 수도 있어.”
이런 말들을 훈계가 아니라 설명으로,
평가가 아니라 정보로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다.
또래와 함께할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상대도 같은 마음인지
먼저 물어보는 경험을 집 안에서부터 천천히 해 볼 수 있다.
아이가 사회적 눈치를 조금씩 배워갈 때까지는
부모가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이자
상담사가 되어 주면 어떨까.
만약 그것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아이를 혼자 두거나 방치하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이를 위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혼자라서 행복한 아이는 없다.
함께가 되는 방법을 아직 잘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