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는 말이 없다' (소설)
때는 바야흐로 신군부세력이 비상계엄 하에서 국보위를 설치하고, ‘국민적 기대와 신뢰를 구축한다. 는 미명하에, 사회정화 작업을 추진했고, 그 일환으로 삼청교육대를 설치하여 소위,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사회풍토 문란사범’, ‘사회질서 저해사범’ 등을 마구잡이로 검거하여 삼청교육대에 끌고와서 개처럼 교육을 시켰다. 태우가 사는 동네에도 빨간 완장을 차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군인들이 트럭을 몰고와서, 동네 경로당 앞에 서더니, 집집마다 수색하여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 태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멀쩡한 사람들을 끌고 가놓고는 상부에는 ‘동네의 쓰레기들 소탕’이라며, 큰소리를 치고는 삼청교육대로 넘겼다.
삼청교육대 입소 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태우와 같이 넘겨진 무리들이 제법 많아 그들은 사회악 척결을 위해 노력한 공으로 포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삼청교육대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깡다구가 세다는 태우도 훈련을 받는 내내 죽음을 경험할 정도로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말이 훈련이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극한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훈련도중 쓰러져 들것에 실려 가는 사람들….훈련으로 인한 부상으로 병신이 된 사람들….심지어는 죽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특히, 태우가 속해있는 조(組)는 독하기로 유명한‘독사’라고 불리는 교관이 훈련을 시켰는데 그에게서 훈련을 받다가 죽은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혹독한 훈련에도 태우는 꿋꿋이 잘 버티어 냈다. 태우는 어릴 적부터 한을 품은 사회에 대한 불신, 불만을 가지며 독기를 키워왔기에 그런 냉혹한 분위기는 문제되지 않았다. 단단히 내성이 다져져 오히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식으로 훈련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삼청교육대 퇴소가 임박할 즈음, 태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굿간같은 숙소 매트리스위에 누웠다. 눕자마자 피곤함에 지쳐 천근만근 같은 눈꺼풀이 스스로 감기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김태우!’‘일어나봐.’그 무시무시한 독사였다.‘예?’‘왜 그러시죠?’
‘어, 잠간 내방으로 와봐.’ 태우는 부스스 눈을 비비며, 독사교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안은 희미한 백열등이 하나 켜져 있었고 다 쓰러져 가는 책상위에는 막걸리와 김치, 그리고 담배 한 개비가 놓여 있었다. ‘저를 오라한 이유가 뭔가요….’ ‘일단 의자에 앉아봐. 천장 안 무너지니.’ 독사교관은 태우를 부른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고 좁은 책상 앞에 마주 앉았다. ‘자 한 사발 받아.’ 독사교관은 태우에게 막걸리를 따른 사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발에도 막걸리를 한잔 따르더니 ‘자, 지금부터 편하게 마시자고….’ 태우는 독사교관이 따라준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간만에 마신 막걸리가 위를 급하게 타고 내려가더니 오장육부를 단번에 씻어내는듯한 시원한 느낌이 났다. 독사교관은 담배를 한 개비 물고는 성냥불을 댕겼다.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천장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이내 책상위에 놓여있던 담배 한 개비와 작고 각진 네모난 성냥갑을 태우 앞으로 던졌다. ‘자네도 한데 피워?’ 태우는 독사교관이 준 담배 한 개비를 주워 입에 물고는 성냥에 불을 붙여 길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실로 오랜만에 피워보는 담배였다. 머리가 어질어질 하며, 헛기침이 나왔다. 방안은 담배연기로 이내 자욱이 번졌다. ‘자네에게 오늘 할 말이 있어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네.’
‘예? 저에게 요? 무슨 할 말이요?’‘자네, 여기 끌러 온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 ‘왜 끌려 왔는지 모를 테고?’ 태우는 독사교관의 물음에 한참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여기 삼청교육대에 끌려온 사람 중에 사회에서 쓰레기로 낙인찍힌 애들도 많고, 애석하게도 여기 끌려올 정도의 잘못이 없는데도 끌려온 애들도 있을 테고….’
‘이렇듯 저렇듯 우리는 국가의 명에 의해 일정수준의 머리수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부득불 자의적인 판단하에 삼청교육대에 끌고 온 사람이 많다네. 자네도 그중 한명이고
….’‘저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태우는 독사교관이 하고 있는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였다. ‘내가 삼청교육대로 입소한 애들 중에 훈련을 시키면서 유심히 일거수일투족을 보았는데, 자네는 그중 독보적인 존재였어.’‘다시 말해, 삼청교육대에 들어와서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병신이 되거나, 심지어는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인데, 자네는 아무리 힘든 훈련일지라도 다 견뎌내고, 그런 훈련을 마치 즐기고 있는 듯 느껴졌어. 그리고 자네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것도 먹여 삼킬 듯 한 분노에 찬 눈을 하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섬뜩섬뜩할 정도였어!’ 독사교관은 담배한대를 더 입에 물고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며칠 전 국가안전기획부로 부터 좀 쓸 만한 놈들을 000 특수부대로 추천 해달라는 특명을 거기있는 영감한테 연락을 받았어.’ ‘내가 보니까, 자네가 딱 적임자라 생각해서 추천을 했어. 또, 자네만한 깡다구 있는 사람도 없고해서 ...’ 독사교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태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교관님. 제가 거기에 왜 가요?’‘제 의사도 미리 물어보지 않고 교관님 마음대로 추천을 하나요?’‘그리고, 제가 교관님이 추천했다고 거기 당연히 갈까라고 생각했나요?’ 태우의 눈썹이 팔자를 그리며, 눈에는 핏기가 감돌았다. 독사교관의 얼굴을 강하게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교관님! 말씀 잘 하셨네요. 제가 여기 왜 끌려 왔는지도 모르겠고, 동네에서 싸움 한두 번 한 것은 있지만, 여기에 끌려올 정도의 쓰레기는 아닌데요. 그리고 저는 홀어머니가 있는 몸이 예요. 제가 없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지, 교관님이 아시나요?
오직 저만 바라보고 사시는 어머니인데요….’ 태우는 목청을 높여 독사교관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잘 알아!’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내가 자네에 대해서 좀 알아봤어.’ ‘자네가 사는 동네에서 “태우” 그러면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자네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어머니를 괴롭히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는다며?’
‘마치, 저승사자가 되어 동네를 싹 쓸어버렸다 하던데?’‘내가 자네 눈만 봐도 충분히 그럴 것 같았어.’‘자네가 가진 분노가 얼마나 큰지, 자네가 마음속에 담아둔 응어리가 얼마나 깊은지, 난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아.’‘나도 자네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나 또한 000 특수부대 출신이니까!’ 태우는 독사교관의 의미심장한 말에 멈칫 놀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자네가 000 부대에 입대하면 자네 어머니는 군에서 책임져 줄 거야.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국가가 책임져 줄 거야.’‘자네가 가진 사회의 분노와 불만을 국가를 위해 사용하게. 그게 자네 어머니도 살고, 자네도 사는 길 일걸세!’
‘설사, 자네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자네의 공과는 국가가 충분히 인정해 줄 거고 ….’
- 3장(계속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