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소설)
김태우는 전날 친구들과 마신 술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불을 휘감고 오른쪽, 왼쪽을 반복하며 뒤척이다, 마당에서 살살이가 짖는 소리에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방문을 열었다. ‘속 좀 괜찮아?’ 철민이었다.‘어제 많이 마셨지?’ ‘응, 오래간만에 너네들을 만나서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그래? 어서 나와라! 속풀이 해장해야지?’‘해장에는 해장국이 최고지….’ ‘역전에 내가 자라는 해장국집이 있으니, 그리고 가세.’ 김태우는 전날 과음을 한 자신을 위해, 함께했던 친구 철민이가 해장국을 사준다며 집에 온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거북해서 해장 겸 식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침 식사되죠?’ ‘당근이지…. 철민이 오랜만에 식당에 왔네?’ ‘근데, 옆에 친구는 못 보던 친구네?’ ‘아, 예. 이번에 휴가 나온 친한 군 발이 친구예요. 이 친구가 학교 다닐 때 주먹 좀 쓴 보스 같은 친구예요.’‘이 친구랑 읍내를 돌아다니면 무서운 게 없었는데, 하하 ….’ ‘아저씨,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야! 어제 그렇게 술 먹여놓고 또 무슨 소주를 시켜?’ ‘나를 술독에 빠뜨리려고 그러는 거야?’
김태우는 철민이가 해장국에 반주로 소주를 시키자, 못 마땅한 어투로 이야기를 하였다. ‘야! 해장은 해장술로 푸는 거 몰라? 푸웃...’ ‘나 참, 너도 대단하다.’‘친구를 위하는 건지... 친구를 죽이려는 건지...’ 김태우와 철민이는 소주를 한잔씩 따르고는 벌컥 하고 들이마셨다. ‘아저씨, 요즘 읍내, 그놈들 조용한 가요?’ ‘뭔, 조용하겠어?’
‘오늘 저녁에도 그놈들이 식당에 오려고 했어.’ ‘왜요?’ ‘왜긴 왜야?’ ‘당연히 월정금 받으러 오는 거지….’ ‘아니, 이 식당에까지 온단 말이 예요?. 그 새끼들이 요?...’ 철민이는 대구 OB파 깍두기들이 시장 통에서부터 영세 식당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태우야! 들었지?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이...’ ’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유분수지, 그래 어디 상납받을 데가 없어서 이런 해장국집까지 와서 손을 벌려?’
‘내가 이제는 못 참아, 언제 기회가 되면 손을 봐줘야겠어!’
철민이의 흥분한 목소리가 김태우의 심장까지 전달되었다.
휴화산이 언제 활화산이 되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김태우는 철민이와 헤어진 후, 어머니가 있는 시장 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박 4일의 특박이지만, 어머니가 하는 장사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단골 미용실이 눈에 띄었다. 미용실에 계신 아주머니는 김태우가 어릴 적부터 본 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흰머리가 많이 보이는가 말고는…. 시장 골목 옛 방석집 골목 앞에서 어머니가 좌판을 깔고 채소와 나물을 팔고 계셨다.’ ‘어머니, 저 왔어요.’ ‘오, 태우는구나!’ ‘친구하고 놀러 다니지, 왜 여기까지 왔어?’ ’그래도 어머니 고생하시는데, 하루는 어머니 일을 도와 드려야죠.’ ‘예가 무슨 소리 하노?’ ‘빨리 들어가거라!’ ‘내일모레 복귀하지?’ ‘예...’
어머니는 치마 속 고쟁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꺼내더니, 김태우에게 건넸다.
‘자,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고, 필요한 것 있으면 사라.’ ‘어머니, 됐어요! 무슨 돈을 요...’ 김태우는 어머니가 준 용돈을 뿌리치고 돌아서려 하자,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김태우의 바지 주머니에 돈을 밀어 넣었다.’ 어머니...‘ 김태우는 학창 시절부터 말썽을 부려 늘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었고,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고 욕해도, 그런 김태우를 이해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분은 어머니뿐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군대에 끌려간 마당에 어머니가 힘들게 번 돈을 용돈으로 받은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쿠! 보기 좋네요. 아들 인가 봐요?’ 그 놈들이었다. 한분에 봐도 험악한 생김새 때문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놈들 중 우두머리 격인 놈은 얼굴이 희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두 볼은 홀쭉하게 들어가고, 코는 높고 턱이 뾰족했다. 말투부터 확실히 짜증 나는 건달 새끼들이었다. 철민이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구지역 OB파에서 행동대장까지 지냈다고 들었으나, 자세한 내력은 알 길이 없었다. ‘당신들 뭐요?’ 김태우는 그 무리들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우리들? 우리는 이 지역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지, 푸하핫...’ 그 무리 중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강골의 사내 새끼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뭐 하러 왔어요?’ ‘여기?... 자네 어머니한테 물어보지?. 우리가 왜 왔는지? 호호...’ 어머니는 김태우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태우야! 신경 쓰지 말거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냥, 재들 만 원짜리 한 장 쥐어 주면 고만이다.’
‘니는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거라!’ 김태우는 어머니가 장사하는 시장 통에서 싸우거나 말다툼으로 더 이상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시장 통을 빠져나왔다. 김태우는 시장 입구 염매시장 간판이 보이는 곳 전봇대 기둥에 기대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하고 있는 그 놈들을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우무 머리 격인 사내 남자에게 무언가를 쥐어 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어머니가 이야기한 데로 돈 만원을 주고 흥정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놈들은 돈 만원을 받아 든 채로 시장 통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김태우는 그놈들을 따라 먼발치에서 살금살금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놈들은 서로 ‘낄낄’ 거리며, 복개 천을 따라 걷고 있었다. 구봉상 등산로 입구에 다다랐을 때 두목 격인 사내 남자와 그 무리들은 각자 주머니 속에서 돈뭉치를 꺼내더니 서로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읍내를 비롯하여 시장 통을 헤집고 다니면서 회수한 월정금을 정산하고 있는 듯했다. 두목 격인 남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헤어지고 있었다. 태우는 혼자 가된 타깃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 남자는 김태우의 미행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구봉산 등산로 입구에서 문소루(聞韶樓)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길에 폐허가 된 공사장이 있었다. 그 남자는 그 앞에 멈춰 서더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20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차츰차츰 간격을 줄이고 있었는데, 그놈의 멈춤에 흠칫 놀라며 흙담 밑으로 몸을 숨겼다. ‘저놈이 내가 미행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것인가?...’ 김태우는 흙담 밑에 고개를 처박고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놈은 바지 지퍼를 내리 더니, 노상방뇨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태우의 미행을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잠시, 인적이 드문 공사장 부근에서 소변을 보려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우는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이놈을 여기서 완전히 끝낼 작정이었다. 거사를 이루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순간 김태우는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또렷해졌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살기의 오싹함이 일었다. 그리고 극도의 긴장감으로 혼미해지는 정신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놈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공사장 안 계단 쪽에 세워진 ‘대림 핸디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 오토바이를 어디론가 타고 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놈이 주머니에서 키를 뽑아 시동을 거려는 순간, 김태우는 순간 ‘이때다’싶어 공사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음산한 기운을 감지한 그놈이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김태우는 머리의 정수리 부분을 세게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그놈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휘청휘청하는 그놈의 목을 잡고 세게 눌렀다. 목젖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설골(舌骨)’이 골절되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놈은 사지가 풀리더니, 그대로 푹 주저앉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놈의 눈을 보니, 시장 안에서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많은 피해상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태우는 공사현장에 있던 빠루를 집어 들고는 쓰러져있는 그놈의 얼굴 부위를 계속 미친 듯이 내리쳤다. 그의 머리와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흥건한 피와 육편(肉片)이 비산 되어 김태우의 얼굴과 옷으로 튀어 올랐다.
그야말로 ‘오버킬 (overkill)'이었다. 김태우는 주머니에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결국 자신이 해야 할 거사(擧事)를 완수했지만, 두 다리가 풀리고 긴장이 풀어지면서 모든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김태우는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김태우는 땅바닥에 있는 사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김태우는 무릎을 탁 쳤다. 군대에 있을 때 멧돼지를 사체로 생각하고 절단하는 방법부터 처리하는 과정을 수없이 훈련받았던 특수요원 출신이었으므로, 사체를 토막 내어 유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놈이 타려 했던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로 나왔다. 읍내에 있는 시장에 들러, 마데 자루, 검은색 비닐봉지 2개 및 사시미칼을 샀다.
공사장으로 돌아온 김태우는 현장에 있던 목장갑을 끼고 공사장 바닥에 놓여있는 시체의 살점을 포를 뜨듯이 시신을 분리했다. 뼈마디는 공사장에 버려져있는 톱으로 토막을 내어 얼굴, 몸통, 팔, 다리 순으로 분리했다. 장기는 다 끄집어내어 마대자루에 담았다.
토막 내는 과정에서 혈흔이나 육 편(肉片)이 사방으로 튀었다. 땅바닥에는 다량의 피와 육 편 조각이 떨어져 그야말로 처참한 현장이었다. 김태우는 분리된 시신 일부와 장기를 대부분 마대자루와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았다. 공사현장에 있던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피와 혈흔 자국을 깨끗이 씻어냈다. 씻어내고 또 씻어내고 하던 중에 김태우의 얼굴은 어느새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모든 현장을 완벽히 정리했다고 판단한 김태우는 토막시신을 담은 마데 자루와 비닐봉지를 오토바이 뒤 짐칸에 실었다. 오토바이를 끌고 공사장을 나오자, 달이 중천에 떠서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계절이 완연한 초겨울인데도 부는 바람이 그렇게 매섭지는 않았다. 김태우는 의성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인 신평면 연못으로 향했다. 김태우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신평면에 살았던 탓에 그 지역에 연못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시신을 유기하는데 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평면을 지나 신평면까지 가는 길이 험지이고, 오토바이 짐칸에 시신을 실은 짐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극한 감정의 상황에서 자제를 했더라면 이런 참상은 없었을 것인데... 김태우는 잠시 후회하고 있었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처음 그놈을 죽이는 순간, 죽었다는 것을 안 순간, 김태우는 잠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 싶었다. 몇 번이고 놈을 죽여 버리고 싶었던 터라, 그런 마음이 현실이 되어 버린 이상, 멍하니 영혼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시신을 신속히 유기하여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가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신평면에 접어들어 인가가 보이지 않을 즈음, 다행히 오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김태우는 연못 도로 부근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고는 오솔길을 벗어나 나무들이 우거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해 동안 쌓이고 쌓인 낙엽은 밟을 때마다 푹신했다. 점점 계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나뭇가지들이 툭툭 몸을 스치며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왼손에는 마데 자루, 오른손에는 비닐봉지를 질질 끌다 보니, 몇 걸음 못 가서 벌써 숨이 가쁘고, 이마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계속 가다 보니 연못이 보였다.
김태우는 시신이든 마대자루를 먼저 연못 중에서도 수심이 깊은 곳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그리고 장기(臟器)가 든 비닐봉지는 소나무 밑에 깊게 구덩이를 파서 흙으로 묻어버렸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태우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 8장 (계속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