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囚人番號) 1004'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소설)

by 코끼리 작가

‘김 영감! 계셔?’ 마을 이장님이었다. 김태우는 방 안에서 빼고 방문을 열어젖히고 대문 쪽을 응시하였다. ‘무슨 일인겨?’ ‘아, 면사무소 통지문 좀 전달하려고...’ ‘그런데, 저 쪽방, 김 씨 아저씨는 통 안 보이네?’ ‘어디로 이사 간 겨?’ ‘이사 갔으면 내가 제일 먼저 알게 되는데, 이사를 안 간 것 같고?’ 이장은 한동안 태식이가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듯이 김태우에게 물었다. ‘글쎄요?’ ‘나도 며칠 못 보았어요.’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 ‘아니면, 대구의 딸 보러 갔는지도 모르겠고...’

김태우는 김태식의 행방을 전혀 모르는 척 퉁명하게 마을 이장에게 이야기하였다.

‘나 참! 이상하네...’ ‘알았소!’ ‘일단, 김 씨 아저씨 들어오면 나한테 연락 좀 주소...’ 마을 이장은 김태식의 행방이 궁금도 하거니와 혼자 사는 관계로 혹여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안 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미옥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아버지인 김태식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계속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았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받지 안 받으시고...’ 미옥이는 그다음 날도 전화를 걸었으나,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엄마! 아빠가 전화를 계속 안받으시 는데, 무슨 일이라도 난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번 달에 너희 아빠, 대구 온다 안켔나?’‘그러니까요, 이번 달에 집 정리하고 대구로 온다. 그러셨는데요.’ 미옥이와 엄마는 아빠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의성 아빠 집에 한번 가보자?’ ‘...’

다음날 미옥과 미순이 모녀는 시외버스를 타고 의성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여 방문을 열어젖히자, 방안에는 개지 않은 이불이며, 피다만 담배꽁초 등으로 악취가 진동을 하였다. 미옥이는 먼저 방안 청소를 끝내고 이것저것 아버지의 소지품 등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집에 누군가가 들어와 아빠를 해코지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아버지가 술을 먹고 술기운에 신변을 비관하여 욱하는 심정에 자살을 했거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아빠의 행적을 추측할만한 하나의 단서라도 발견하기 위해 집안을 샅샅이 수색했다. 미옥이에게만 알려준 장롱 안 이불속 통장하고 기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물건 등은 고스 란히 남아 있었다. 미옥이는 집주인인 김태우의 방 앞에서 주인을 찾았다. ‘주인아저씨!’ 김태우는 미옥이가 부르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저희 아버지 못 보셨어요?’ ‘내가 당신 아버지 행방을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해!..’ ‘며칠 전 마을 이장도 왔다 갔고, 공사장 소장도 왔다 갔고...’ 김태우는 오히려 자신이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는 투로 말을 하였다.

‘혹시 아버지가 이번 달에 방을 빼 달라고 하지 않으시던가요?’ ‘...’

미옥이의 질문에 한마디 대꾸도 없이 김태우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미옥아, 안 되겠다. 신고부터 하자!’ 엄마인 미순이는 아무래도 자신들의 힘으로는 행방이 묘연한 남편을 찾을 방법이 없어, 경찰서에 신고하기로 마음먹었다.

‘따르릉.’ ‘거기 경찰서죠?’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마자, 소 내근 무를 하고 있던 김 순경이 전화를 바로 받았다. ‘예! 중앙파출소 순경 방성혁입니다.’ ‘무슨 용무가 있으신지요?’ ‘예, 저는 황미옥이라고 하는데요.’ ‘저희 남편이 며칠째 집에 안 들어온다 하고, 연락이 두절되어 실종선고 좀 하려고요….’ ‘실종신고요?’ 김 순경은 시골읍네에서는 흔하지 않은 신고라 다소 당황하는 목소리였다. ‘예. 실종신고요!...’ 미순이는 남편의 실종선고를 목에 핏대를 세워 힘주어 말했다. ‘실종신고는 전화로도 가능하지만, 멀리 계시지 않으시면 파출소를 좀 방문해주시겠습니까?’ ‘방문하시면 저희 경찰에서 접수내용을 토대로 전국 경찰서에 수배 하달을 할 것이고요. 신고접수증도 발급하여 드릴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제가 파출소로 가겠습니다.’ 미순이는 딸 미옥이와 함께 부랴부랴 파출소로 향하였다. ‘어세 요새요.’ ‘아... 조금 전 신고한 분이시죠?’

김 순경은 소 내근 무중 파출소를 방문한 미순이와 미옥이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바로 인사를 건넸다. ‘다음부터는 실종선고 등 민원신고가 있으실 때는 “182” 콜센터로 바로 전화하시면 더욱더 친절한 상담을 받으실 수 있으니, 그건 참고하세요.’ ‘일단 좀 앉으시죠.’ 김 순경은 미순이와 미옥이를 파출소 소네 민원 탁자 앞 의자에 앉기를 권유하였다.

김 순경은 소네 업무용 캐비닛에서 간략한 서식 용지를 들고 민원업무용 탁자 앞에 앉았다. ‘제가 접수를 받기 전에 먼저 좀 여쭈어 보겠습니다.’ ‘통상 단순 가출로 집을 나간 분을 대신하여 가족들이 실종으로 오인하고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가출은 아닌지요?’ 김 순경은 미순의 얼굴을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제가 현재는 이혼하여 떨어져 살고 있는 전 부인이지만, 누구보다도 남편에 대해 잘 압니다.’ ‘우리 남편은 아무런 이유 없이 가출을 하거나, 집을 나갈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친구도 없고, 더더욱 낯선 여자를 만나 희희닥거릴 그런 위인도 못됩니다!’ 미순의 말에 김 순경이 멋쩍은 듯 입술이 실룩거렸다. ‘예! 잘 알겠습니다.’

‘제가 그걸 여쭈어본 것은...’ ‘통상 실종으로 신고한 분들이 며칠 지나면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고, 실종, 가출 신고를 접수하면, 저희 경찰에서 “실종아동 등 프로 파일 시스템”에 그런 내용을 상세히 적게 되어서요...’

김 순경은 미순이로부터 남편의 자세한 개인정보를 기재한 신고서를 받아 들고 실종아동 등 프로 파일 시스템에 입력을 하였다. ‘예, 다되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혹시, 남편 분께서 댁에 들어오시면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미순과 미옥 모녀는 김 순경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파출소를 빠져나왔다. 남편이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순이는 마을 이장집을 찾았다. 아무래도 동네 사정을 제일 잘 아는 이장님에게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때마침, 마을 이장이 집 앞에서 이불을 털고 있었다.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미순과 미옥 모녀를 발견하고는 ‘뉘시오?’

‘아, 예…. 저희는 저기 감나무 골목 끝집에 세 들 어사는 김태식이라는 사람의 가족입니다.’ ‘아... 그 말없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김 씨 아저씨?’‘근데, 무슨 일인겨?’ 마을 이장은 김 씨네 가족이라는 말에 대번에 잘 알고 있다는 듯하던 일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저희 남편이 며칠부터 보이지도 않는다 하고, 저희 딸이 매일 한 통화씩 안부전화를 하는데, 전화도 안 되고 해서 그간 우리 남편에 대한 소식을 좀 알고 계신가 싶어 이렇게 방문했습니다.’‘그러게요?’‘내도 그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순이는 마을 이장의 묘한 뉘앙스의 말에 궁금증이 일었다. ‘김 씨 아저씨는 어디 가서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는 사람이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항상 공사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면 우리 집 앞을 지나서 가야 하니, 꼭 나한테 인사를 하고 가곤 했거든...’ ‘그런데, 며칠 전부터 통 보이지 않았어!’ ‘그게 10일 정도 됐지!’ ‘10일요?’ ‘예! 10일요...’ 미선이는 마을 이장의 남편이 안보인지 10일이나 되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내가 그걸 정확히 말 한건, 김 씨 아저씨가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꼭 막걸리를 한 병 사 와서 우리 집 마당에서 한잔하고 돌아갔었거든...’ ‘사실, 이런 이야기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김 씨 아저씨가 많이 외로워 보였어.’ ‘나보다는 한, 두 살 어린것 같던데? 친구처럼 그렇게 편하게 지냈거든!’‘김 씨 아저씨가 친구가 없었어!’ ‘그걸 내가 알고 난 후부터 김 씨 아저씨하고 술친구가 되어 주었지.’‘집안 이야기까지 나한테 다 했거든...’

미선이는 남편이 마을 이장을 많이 의지했고, 집안 이야기까지 할 정도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내가 아까 10이라고 했지?’‘김 씨 아저씨 안 본 지….’ ‘예!’ ‘그걸 기억하는 이유는...’ ‘김 씨 아저씨가 막걸리를 사 와서 매일 같이 먹었었는데... 한동안 집에 안 와서 내 혼자서 막걸리를 사다가 먹었거든!’

'내가 아침에 술병을 세어보니 꼭 10 개이더라고... 그래서 10일이라고 이야기한 거야!' '아! 예...' 미선이는 마을 이장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10장 (출간 예정) -


* 코끼리 작가 (kkhcop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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