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囚人番號) 1004'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by 코끼리 작가

‘오륙 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엄세호는 오늘도 공사장에서 낮술을 한잔 하고 혼자서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어 뺨을 스치고 있었다. 매일 집으로 오는 똑같은 길이지만, 왠지 오늘따라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엄세호가 사는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후미진 감나무가 있는 골목 끝집이었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잡부로 하루 일당을 받아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날에는 새참으로 막걸리를 먹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적당히 취해 있었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안방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은 옛날 기와집에 창호지를 바른 문짝이 있는 집으로 주인은 80대 중반의 남자와 60대 후반의 여자가 같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말이 시골집이지, 1970년대 초, 다 쓰러져 가는 옛날 집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집이었다. 엄세호는 대구에 살다가 의성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구에는 부인과 딸이 같이 살고 있고, 혼자만 의성에 와서 살고 있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성에서 살기를 고집하였던 것은 60대 초반의 나이도 나이이지만, 조용한 시골에서 살기를 희망했고, 친구가 공사장에서 일을 같이 하자며 제의가 있었던 탓이었다. 친구는 의성 토박이로 군대를 함께 다녔던 친한 동기였다. 군 생활을 할 때 힘들고 괴로울 때 항상 엄세호를 위로해주고 챙겨주었던 동기이기도 했지만, 제대 후에도 만나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친구 따라 강남으로 온 격이었다. 엄세호는 저렴한 전세금으로 살 수 있는 방을 구하다가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광고를 보고 집을 구하게 되었다. 엄세호의 방과 집주인의 방이 바로 붙어 있어서 남편과 부인이 이야기하는 것이라든가, 싸우는 내용, 기타 자녀들 이야기까지 여과 없이 다 들을 수 있었다. 엄세호는 은근히 신경이 거슬렸다. 특히, 80대의 남자와 60대의 여자가 민망할 정도로 섹스를 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도 했거니와 간간이 밤, 낮으로 들리는 여자의 신음 소리를 듣는 게 곤욕이었다. 엄세호는 두 내외가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있는 부부관계가 놀라웠지만, 집주인의 부인이 50대 초반의 여자 나이에도 불구하고, 늦둥이를 낳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남자는 대 정력가였고, 여자는 대 색정가였다. 방문을 여는데 여자의 신음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나 참, 저 연놈들 애정행각을 내가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내가 빨리 이사를 가든지, 해야지….’

엄세호는 집주인인 부부내외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투덜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방은 차디찬 냉방이었다.


- 1장 -


- by:코끼리 작가(kkhcop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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