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囚人番號) 1004'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by 코끼리 작가

미옥이는 모처럼 꽃단장을 하고 외출을 하기 위해 대문을 여는데, 있으나 마나 한 대문이 삐걱대며 그의 불안한 외출을 알렸다. 대문을 나서자 하늘이 흐리게 변하더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우산을 받치고 있었지만, 비는 계속 미옥이의 어깨와 등을 두드리며 옷 속으로 살며시 파고들었다. 옷이 젖고 몸에 물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큰길에 나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 때는 오히려 빗줄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미 흠뻑 적신 빗줄기는 땀 흘린 후에 하는 세수처럼 시원했다.

미옥이는 아버지가 있는 의성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가 오는 차창 밖은 운치가 있어 보였다. 늘 보는 차창밖 풍경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미옥이는 화장품 손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어 비를 맞아 지워진 손 등을 문질렀다. 엄마와의 이혼 후에도 엄세호는 미옥이를 끔찍이 예뻐하였다. 딸 미옥이의 생일이나 기념일 에는 용돈을 주든, 선물을 사주든 꼭 잊지 않는 자상한 아빠였다.

그럴 때마다, 미옥이는 아빠가 예전처럼 집에 계셔 엄마와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렸으면 하는 희망과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시외버스는 어두운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길에는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쏟아져 나온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엷은 운무처럼 뿌연 빗속에서 달리던 차들이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면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 20장 -


by:코끼리 작가 (kkhcops@hanmail.net)

152919120752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인번호(囚人番號)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