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엄세호가 문 앞에 서있는 김태우의 아들을 힐끗 쳐다보자, 아들은 엄세호의 발 앞으로 침을‘퉤’하고 뱉었다. 김태우의 아들은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었지만, 엄세호는 매우 불쾌한 눈으로 바라보며,‘야! 이놈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하며 호통을 쳤다. 김태우의 아들은 엄세호의 얼굴을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아저씨! 내가 아저씨한테 인사를 왜 해요?’‘나참, 재수 없어!’‘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주제에….’ 김태우의 아들이 내뱉은 말은 엄세호의 평소 가지고 있던 열등감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다음 달에 집을 나갈 계획을 세우고 집주인인 김태우에게 보증금을 달라고 말다툼을 하고 있는 즈음이었는데, 김태우 아들의 무례한 행동에 엄세호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라고?’‘지금 뭐라고 그랬어?’‘이놈의 XX가 뚫린 게 입이라고 어디다 데고 어른한테 막말이야!’‘너 인마!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치데?’‘예,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어요!’‘어떡할 건데요?’ 김태식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민식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더 세게 대들었다.‘아저씨,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이혼하셨다 면서요?’‘어디 갈 데도 없으시면, 그냥 조용히 우리 집에서 개처럼 살고 계세요?’
‘그렇게 저한테 소리칠 입장이 아니실 텐데요?...’‘뭐라고?’‘이 새끼가 정말….’
엄세호는 민식이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대 갈겼다. 얼굴이 휙 돌아갈 정도의 심한 가격이었다.‘무슨 일이야?’ 대문 앞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김태우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아버지, 이 사람이 저를 때렸어요?’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뭐? 너를 때렸다고?’‘어이! 네가 우리 아들을 때렸어?’‘이 XX아! 네가 뭔데 우리 아들을 때려?’ 김태우는 엄세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이거 놔요!’‘당신 아들이 내 발 앞에다 침을 뱉고, 대들어서 한 대 쥐어박았어요!’‘와요? 당신 아들이 잘못한 긴데, 아들이라고 편드는겨?’ 엄세호는 김태우의 멱살을 뿌리치며, 화난 얼굴로 김태우를 쳐다보았다.
‘너, 이 XX, 두고 봐라.’‘너, 제명에 못 살 거다.’‘다음 달 보증금도 못주니, 네가 알아서 해!’ 김태우는 엄세호에게 고함을 지르고는 아들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엄세호는 김태우와 그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집은 엄세호에겐 안식처이자 감옥이었고, 편안한 보금자리이면서 거대한 악몽이었다. 엄세호는 집안에 갇힌 노숙자 신세였고, 갈 곳 없는 방랑자였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18장 (출간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