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囚人番號) 1004'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by 코끼리 작가

‘소장님, 제가 오늘 집에 일이 있어 2시간만 일찍 퇴근 좀 하려는데. 편의 좀 봐주면 안 되겠는가?’‘김 선생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복장이 평소 때 하고 다른데?’‘예... 오늘 제 딸이 저를 보러 대구에서 온다캐서요...’‘조금 일찍 집에 가서 집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준비도 좀 해야 해서요.’‘아! 딸내미가 오는군요?’‘그래요. 딸내미가 온다는데, 일이 무슨 소용이에요.

여기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일찍 들어가세요.’ 엄세호는 공사장 소장의 배려로 평소보다 2시간 먼저 현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염매시장을 들러 딸이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할 생닭 하고 양념, 채소 등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미옥이가 와 있었다.‘아니 미리 연락이라도 했으면 내가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마중은 무슨….’‘다 큰 숙녀가 길 못 찾을까 봐요?’

미옥이는 잠시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를 떠 올렸다. 그날 많은 부모들이 입학식에 참석했지만, 자신은 엄마와 단둘이 있었다. 아버지는 미옥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엄마와 이혼을 했다. 어린 소녀에겐 큰마음의 상처였다. 중학교 때부터 미옥은 사춘기 소녀의 냉소적인 반항심으로 부모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스스로‘자학(自虐)’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의 직업을 적으라는 학교 통신 문란에‘원수(怨讐)’라고 적기도 했었다. 미옥이는 그토록 멀리, 그토록 일찍 자신을 떠나가 버린 아빠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그 시간 이후 변해버린 아버지는 더없이 초라해 보이는 ‘촌로(村老)’였다. 축 늘어진 어깨며, 남루한 옷차림이 더 이상 최고 존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지난 몇 년간 아버지가 살았던 삶과 아버지가 좋아했던 취미, 장점,

그 모든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지갑 속에 감춰두었던 가족사진을 보고, 자신과 닮은 아버지 얼굴의 특징들을 알아보면서, 옛날 아버지와의 다정스러웠던 시간으로 돌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 21장 -

MyPhoto_1185375563_039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인번호(囚人番號)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