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囚人番號) 1004'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by 코끼리 작가

미옥이의 손에는 아빠 엄세호가 좋아하는 삼겹살이며, 과일 등을 담은 장바구니가 쥐어져 있었다. ‘뭘 이런 걸 사 왔니? 그냥 오면 되는데….’‘어서, 들어가자, 내가 네가 좋아하는 닭볶음탕 맛있게 해 줄게.’ 엄세호는 딸 미옥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미옥이는 혼자 사는 아빠의 방이 너무 지저분하자, 방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생각해보면, 부모가 자식인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려운 형편에 경제적인 지원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가 그리 능력 있는 분도 아니었고…. 그러나 어릴 적 먹는 것만큼은 아빠는 풍족하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 미옥이의 까다로운 입맛이었다. 김치를 싫어하는 것은 기본이고, 채소는 상추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 찌개는 국물만 떠먹고, 한참 맛있게 잘 먹던 국에서 대파 쪼가리라도 나오는 날이면 숟가락을 놓았다. 돈 없어서 못 사 먹는다는 최고급 쇠고기도 미옥이 입에만 들어가면 질긴 생고무로 둔갑되었다.

음식 중 잡채를 끔찍하게 좋아하는데, 잡채에 넣은 돼지고기는 또 발라서 먹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입맛이니 밥상을 책임진 아버지에겐 식탁을 차리는 일이 그야말로 고군분투였다. 엄세호는 딸 미옥이가 사 온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고, 닭볶음탕도 같이 만들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에 구운 노릿노릿한 삼겹살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웠고, 갖은양념을 넣은 닭볶음탕의 냄새까지 온 방안을 진동시켰다.

‘자, 밥 묵자. 아빠! 혼자 살면서 음식 솜씨 많이 늘었는데, 어디 한번 먹고 미옥이가 평가 좀 해줘 봐라. 호호’‘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음식 하기를 좋아하셔서 그 솜씨는 익히 잘 알고 있어요. 물론 맛도 좋았고요. 뭐, 먹어보나 마나지요…. 푸하핫’


- 22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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