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1004'

‘쫓는 자와 쫓기는 자와의 사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코끼리 작가

*

김태우는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동네 노인정을 찾았다.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말이다. 노인정에는 고만고만한 노인들이 모여서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김태우가 들어서자 노인들이 경계된 표정으로 김태우를 쳐다보았다.‘오늘 돈 좀 많이들 땄습니까?’‘땄으면 딴사람이 개평도 좀 주고, 막걸리도 한잔 받아 오고 해야지?’ 김태우는 노인정에 들어서자마자, 자신도 판에 끼워달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노인정에서도 가장 고령이신 황 씨 영감이 이내 김태우를 보고는 못마땅한 듯이 이야기하였다.

‘오늘 자네 또 여기서 행패 부리고 그러면 이제 이 노인정 에는 출입금지야!’‘재미 삼아하는 고스톱을 그깟 돈 좀 잃어 다고 훼방이나 놓고, 성질난다고 같이 있는 영감들을 패고, 상다리를 엎어버리고, 그러면 다시는 여기 발 들여놓지 못하게 할 테니….’ 황 씨 영감은 평소 노인정에 와서 자주 행패를 부리고, 판에 들어와 돈을 잃기라도 하는 날이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자기보다 나이 어린 노인들을 괴롭히는 김태우 가 못마땅한 듯 이야기하였다. 옆에 있던 동갑내기인 박 씨 영감도‘자네 나이가 올해 몇 살이야?’‘그렇게 혈기가 있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나이 값을 해야지? 라며 거들었다.

내일모레면 80대 중반인데….’‘와카능겨? 이젠 그만 좀 합시다!’‘다시는 소란 안 피울 테니….’ 김태우는 자신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자,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말은 끊었지 만, 자신뿐만 아니라 동네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더러운 성깔 이 언제 또 도질지 걱정이었다.‘자, 그러면 내도 한판 낍시 다.’ 김태우는 자신보다 두어 살 어린 송 씨 영감을 밀어 내고는 자리에 앉아서 패를 잡았다. 패가 돌아가고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패를 만지작거리며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김태우가 던지는 화투 장마다 짝짝 소리를 내며 패가 잘 들어붙었다.‘원고….’‘투고….’ 김태우는 투고를 외치며 몇 장 남지 않은 화투장을 들고 상대편 영감들을 매의 눈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화투가 마무리되어갈 즈음,‘쓰리고’를 외쳤다. 김태우의 쓰리고 소리에 모두가 기가 죽었다.

‘오! 지송 합니다. 형님들!’‘불쑥 불청객이 와서, 화투판에 끼어가지고 첫판을 모조리 쓸어가 버렸네요.’‘다음 판부터는 살살할게요. 하하….’다시 화투패가 돌려졌다.

또다시 김태우의 패가 짝짝 붙기 시작했다. 패가 붙는 소리가 마치 사람의 볼때기를 손바닥으로 때릴 때‘찰싹’하고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원고!’또다시 김태우의 목청이 커졌다. 김태우는 첫판에 이어, 두 번째 판까지 연타석 홈런을 칠 태세였다. 김태우는 몇 장 남지 않은 화투 패를 잡고, 상대편 영감들의 화투 패를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화투가 종반으로 치달을 즈음‘투고'를 외치던 김태우가 화투 패를 던졌으나, 그만 싸고 말았다.

이를 놓칠세라 황 씨 영감은 고돌이에 상피까지 대역전극이 일어났다. 황 씨 영감은 슬쩍 김태우의 눈치를 살폈다. 슬그머니 판돈을 가지고 오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김태우 에게 ‘어이 아우님! 초장 끗발 개 끗발이지? 도박판이 그런 거야! 운칠기삼…. 하하’ 황 씨 영감이 이겼으면 돈만 가지고 오면 될 것을 김태우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김태우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화투패가 놓여 있는 담요를 엎어 버렸다. ‘에이, XX 같은 것!’ 전투력 상실과 다짜고짜 욕설과 고함을 지른 자신이 창피하기도 해서 김태우는 노인정을 뛰쳐나왔다. ‘저 자식! 저 거봐. 그건 돈 몇 푼 잃었다고 저 지랄하는 거봐!’‘저럴 줄 알았다니까! 애당초 노인정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다니깐!’ 송 씨 영감은 노인정을 나간 김태우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김태우는 동네에서 내놓은 사람이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데다, 원체 성격이 개 같아서 아무도 그를 말릴 사람이 없었다. 또, 하루는 자기 집 앞에 세워둔 승용차 가 한동안 주차되어 있자, 집에서 못을 가지고 와서 타이어에 못을 꽃아 펑크를 내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차는 면사무소 행정차량이었다. 그 사실을 안 면사무소 직원이 김태우를 찾아가 변상 요구 및 항의를 하자 , 항의하는 면사무소 주사의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는 사건이 있었다. 주사가‘처벌하겠다’고 따지자, 김태우는 집에 있던 곡괭이를 들고 면사무소를 찾아가 유리창을 깨는 등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행패를 부린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동네 주민들과 말다툼이 있을 때면 ‘내가 특수부대에 있을 때 사람을 몇 놈이 나 죽였는지 알아? 너희들 까불면 다 쥐도 새도 없이 죽여 버 릴꺼야! 그러니 조심해….’라며 공갈 및 협박을 일삼기 일쑤였다. 그런 김태우의 괴팍한 성격을 엄세호도 모르는바 아니 었다. 엄세호는 전처와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고 정처 없이 떠 돌며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가 오롯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거처는 집인데, 집에만 오면 김태우의 고성방가, 혼자 떠드는 넑두리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런 김태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 이 지, 김태우의 그런 괴팍한 행동들이 짜증으로 밀려왔다.

엄세호는 고단한 공사판 현장에서 일하다, 여느 때와 마찬 가 지로 걸쭉하게 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대문 앞에는 어디서 낯익은 학생이 서 있었다. 김태우의 늦둥이 아들 김민식이었다. 김태우에게는 애지중지하는 귀한 자식이었다. 특히, 나이가 들어 잔소리만 늘어놓는 할망구로부터 다시 애정 살이 돋기 시작하게 만든 것은 늦둥이 아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피는 못 속이는 법.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학교를 안 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늘 같은 반 학생들과 싸움질이나 하기 일쑤였다.

학교는 안 가고 동네 공가에서 말썽꾸러기 동년배 아이들과 어울려 담배나 피워대고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등 온갖 농땡이 들의 나쁜 행동은 다하고 다니는 놈팡이이었다. 동네 여기저기를 빈둥빈둥거리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뒷머리를 묽어서 말총머리를 하고 해골바가지가 그려진 후드 티를 입은 모습이 천생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엄세호가 문 앞에 서있는 김태우의 아들을 힐끗 쳐다보자, 아들은 엄세호의 발 앞으로 침을‘퉤’하고 뱉었다. 김태우의 아들은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었지만, 엄세호는 매우 불쾌한 눈으로 바라보며,‘야! 이놈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하며 호통을 쳤다. 김태우의 아들은 엄세호의 얼굴을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아저씨! 내가 아저씨한테 인사를 왜 해요?’

‘나 참, 재수 없어!’‘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주제에….’ 김태우의 아들이 내뱉은 말은 엄세호의 평소 가지고 있던 열등 감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다음 달에 집을 나갈 계획을 세우고 집주인인 김태우에게 보증금을 달라고 말다툼을 하고 있는 즈음이었는데, 김태우 아들의 무례한 행동에 엄세호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뭐라고?’‘지금 뭐라고 그랬어?’ ‘이놈의 XX가 뚫린 게 입이라고 어디다 데고 어른한테 막말이 야!’‘너 인마!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치데?’‘예,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어요!’‘어떡할 건데요?’ 김태식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민식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더 세게 대들었다.‘아저씨,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이혼하셨다 면서 요?’‘어디 갈 데도 없으시면, 그냥 조용히 우리 집에서 개처럼 살고 계세요?’‘그렇게 저한테 소리칠 입장이 아니실 텐데 요?’‘뭐라고?’‘이 새끼가 정말….’

엄세호는 민식이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대 갈겼다.

얼굴이 휙 돌아갈 정도의 심한 가격이었다.‘무슨 일이야?’ 대문 앞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김태우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아버지, 이 사람이 저를 때렸어요?’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뭐? 너를 때렸다고?’‘어이! 네가 우리 아들을 때렸어?’‘이 XX아! 네가 뭔데 우리 아들을 때려?’ 김태우는 엄세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이거 놔요!’‘당신 아들이 내 발 앞에다 침을 뱉고, 대들어서 한 대 쥐어박았어요!’‘와요? 당신 아들이 잘못한 긴데, 아들이라고 편드는 겨?’ 엄세호는 김태우의 멱살을 뿌리치며, 화난 얼굴로 김태우를 쳐다보았다.

‘너, 이 XX, 두고 봐라.’‘너, 제명에 못 살 거다.’‘다음 달 보증금도 못주니, 네가 알아서 해!’ 김태우는 엄세호에게 고함을 지르고는 아들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엄세호는 김태우와 그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집은 엄세호 에겐 안식처이자 감옥이었고, 편안한 보금자리이면서 거대한 악몽이었다. 엄세호는 집안에 갇힌 노숙자 신세였고, 갈 곳 없는 방랑자였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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