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와의 사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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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강 팀장과 형사계 직원들이 업무 노트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팀장, 계 팀원들이 원형 테이블에 수사과장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여러분!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여러분들의 노고는 모르는바 아니지만, 조금 더 탄력을 내서 이번 사건을 조기에 해결해야 되겠습니다!’‘오늘 회의는 그간 경과보고, 향후 수사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여러분들의 기탄없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수사과장은 애써 편안한 분위기로 회의를 주재하며 이야기해보라 했지만, 수사과장이 질책성 모두 발언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다운된 상태에서 직원들 개인의 의견을 이야기하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비겁한 짓이었다. 마치 퇴근 후,‘나는 사무실에서 잔무 좀 처리하고 갈 테니, 직원들은 먼저 퇴근하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통상 회의가 엄격한 서열에 따라 정해진 자리에 앉아 가장 높은 직위의 상관이 지시하는 것을 받아 적는 시간이라 면, 혹시, 자신의 사견을 상사의 의중과 다르게 생뚱맞게 이야 기라도 할 경우에는 레이저 같은 눈총을 받는 자리가 될 것임 이 틀림없었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형사계의 특성상 할 말이 있어도 상사의 눈치만 보고 제대로 할 말도 못 하는 상황
이라면, 그건 무늬만 그럴싸한 공유와 소통의 회의일 것이다. ‘과장님! 토막사체 발견 신고 후, 그간 저희 형사계 직원들이 밤낮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그래도 다행히 신원이 확인되었으니, 조금씩 실체 가 드러날 것으로 봅니다.’‘주변 탐문수사도 다시 하고, 정밀감식, 통신수사, 피해자 행적수사 등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신다면, 저희 팀이 기필코 이번 사건을 해결해 보이겠습니다.’‘범인이 나름 증거를 인멸했을 수도 있지만, 사건을 해결할 단서는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강 팀장은 수사과장에게 확신에 찬 어투로 사건 해결의 의지를 보였다. 수사과장의 지루한 질문과 형사계 팀원들의 형식적인 답변이 이어지는 동안, 긴장이 풀어지고,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회의는 그렇게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소가 되새김을 하는 것처럼 별 소득 없이 의지만 확인하는 회의였다.
강 팀장은 모처럼 읍내에 있는 신라 다당에 들렀다. 새로운 미스 윤이 생기발랄하게 읍내의 노인네들을 다 홀리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미스 윤이 처음 오던 날 읍내에서 건설업을 하는 박 회장이 애국자가 되어 팀원들을 다 불러 고기 집에서 거하게 격려의 자리를 마련해준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스페셜 게스트로 읍내에 있는 다방래지들을 머리수만큼 합석을 시켜, 거하게 술파티가 이어졌다. 그때 강 팀장의 파트너가 바로 미스 윤이었다. 자신을 청주에서 온 ‘키다리 아가씨’로 소개하며 웃음을 팔았었는데, 술자리 후 팀원들 모두가 삼삼 오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자신은 과음 탓으로 신선하고 아리따운 그녀와의 ‘거사(巨事)?’를 그만 놓치고 말았었다.
‘나야!.. 그간 잘 있었재?’‘오, 강 형사님! 오랜만이네요?’
미스 윤은 강 형사를 반갑게 맞았다.‘그간 많이 바쁘셨어요? 통 안 오시고?...’‘그래서 이렇게 왔잖아!’‘커피 한잔 가져와. 니도 한잔 묵고...’‘장사는 좀 어때?’‘뭐, 그럭저럭 그래요...’‘강 형사님이 자주 안 오시니 매상이 안 오르네요. 호호...’‘안동호 부근에서 토막살인 난 것 들었재?..’‘예! 들었어요.’
미스 윤은 강 형사의 토막살인 사건 이야기에 머리를 끌어올리며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그 사건 범인 아직 못 잡았죠?’‘...’‘그 사건 때문에 우리 경찰서 형사계 직원들 지금 죽을 맛이야!’‘어떤 개 XX인지 몰라도,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의 신체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 지금 어디서 숨어 있는지... 나 참!’ 강 팀장은 미스 윤의 오뚝한 콧날과 목선을 타고 흐르는 곡선의 굴곡이 가슴골까지 이어지며 하얀 속살이 훤히 보이는 관능미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스트레스가 폭발해버렸다.
‘저도 늦게까지 배달을 하는데, 겁이 나서 어두운 골목길을 갈 때는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후∼∼∼’ 미스 윤은 강 팀장의 이야기를 듣자, 걱정스러운 눈치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꼭 잡아야 하는데!’‘꼭 잡힐 거야!’ 강 팀장은 그렇게 호기 있게 이야기는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미스 윤은 피로가 누적돼 초췌해진 강 팀장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강 팀장의 팔꿈치에 풍만한 가슴을 들이대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굶주린 사자에게 먹잇감이 되어주듯, 강 팀장의 입술을 포개더니, 혀를 내밀 었다. 혓바닥이 실핏줄을 핥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강 팀장의 몸뚱이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강 팀장은 미스 윤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만 원짜리 한 장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나, 가야 된다!’ 강 팀장은 다방 주차장 앞에 세워둔 자신의 차량에 승차하여 시동을 걸었다.‘우리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강팀 장차에 올라탄 미스 윤이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인간의 더러운 기억들을 흘려보내는 하수도 같은 건 없다. 있다면 망각 같은 것, 정도겠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니코틴은 그녀의 날카로운 신경을 누그러뜨렸다.‘한번 자줄까? 강 형사님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강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스 윤은 자신이 본능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수십 킬로의 지표를 뚫고 땅속 깊은 곳의 흔들림을 감지해내는 지진 탐지기처럼 제 감각은 예리하고 정확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을 노려 보는 강 팀장의 차가운 표정을 보자 웃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남자 새끼들 원하는 건 다 그거잖아? 당신 역시 마찬가지 아니야? 미스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강 팀장 은 부담스러워졌다. 미스 윤을 잠시 바라보던 강 팀장은 안동 시내 한적한 여관으로 차를 몰았다. 여관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불을 껐다. 방안은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앞 건물 창밖으로 새어 나온 불빛이 강 팀장과 미스윤의 얼굴로 향했다. 강 팀장은 마치 빛의 그물에 사로잡힌 한 마리 들짐승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도망쳐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다리는 움직일 기세가 전혀 없었다.
당연히 섹스는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여관이라는 장소 때문에 이미 마음이 풀어져 버렸고, 하룻밤 상대라는 부담 없는 존재로 여관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서로의 몸을 탐하던 뜨거운 손길과 혀로 몸 구석구석을 음미하며 느껴지던 그녀 와의 접촉... 기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대신 느낌 은 더욱 생생해진다. 그날 밤 느꼈던 그녀의 살결과 향기, 뜨거운 숨결들이 문득 요 몇 달 사이에 경험했던 섹스 중 가장 자극적인 것이었다.
그녀 역시 그날의 느낌을 잊지 못한 것 같았다. 서로가 나누었던 섹스를 떠올리면서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도 굶주린 숯놈이 암놈을 위해 미친 듯이 교합을 또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