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와의 사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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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팀장! 내방으로 좀 들어와 보게!’ 아침 출근을 하여 당일 보고해야 할 일보 등을 챙기고 있던 강 팀장은 수사과장의 호출 인터폰을 받았다.‘무슨 일이신지요?’
‘강 팀장! 지금 서장님한테 연락이 왔는데…. 그간 사건 발생 이후 현재까지 경과사항을 쭉 수사보고서 형식으로 보고 해 달라는군….’‘그건 그렇고, 사건은 어떻게 돼가나? 좀 진척이 있나?...’‘...’ 수사과장은 서장님한테 연락받은 것을 빌미로, 강 팀장에게 사건 해결에 대한 독려를 넌지시 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형사팀 1개 조가 전담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수확 아닌 수확이라면… 신원 확인 후 탐문 수사 중 읍내에 거주하는 김태우라는 사람이 죽은 엄세호 씨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 는 것!’‘그리고, 주변 인물에 대한 탐문수사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정황들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정황?’ 수사과장은 강 팀장의 그간 수사내용 중 뭔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스모킹건’이 있는지. 자못 궁금한 모습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예! 김태우라는 노인과 그의 외동아들의 행적이 미심쩍은 부분이 좀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그래?’‘그러면, 향후 수사 예정 사항은?’‘그간 목격자 진술과 용의자들의 알리바이 등을 종합해 볼 때 김태우의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 불가피해 보입니다.’‘그래?’‘그러면, 지체하지 말고 지청에 연락해서 일정을 잡아 ‘영감님(검사를 지칭)’을 만나 뵙고 사건 조율 좀 해!’‘지금, 서장님은 말할 것도 없고 치안본부에서 연말 방범 비상기간 전까지는 이번 사건을 해결해 주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니까!’
강 팀장은 사무실 의자에 파묻혀 살며시 눈을 감았다.
피곤함과 노곤함의 크로스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꿈나라를 배회했고, 눈을 떴을 때는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팀장님! 지청에서 영장이 떨어졌습니다.’
강 팀장은 관리계에 근무하는 김 형사로부터‘압수수색 영장’ 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고는 비장한 각오로 사무실을 나섰다. 경찰서 입구 옆 게시판에 새 유인물이 붙어 있었다.
강 팀장은 게시판 앞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면서 새로 붙은 유인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이번 토막살인 사건의 제보를 해달라는 전단지가 처량하게 붙어 있었다.
작년부터 생긴 강 팀장의 버릇은 이따금 지명 수배된 사람들의 사진을 쳐다보면서 그들의 죄명과 나이 등을 통해 쓰레기 더미 같은 범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흥미진진하게 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왜 그런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했지만,‘몽타주’라는 사내 프로그램을 배운 뒤로는 그냥 지 나칠 수 없게 되었다. 범인을 잡으려는 파파라치처럼,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이 말이다.
강 팀장과 감식반원이 영장집행을 위해 김태우 집에 들이닥쳤을 때, 김태우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집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강 팀장은 김태우에게 영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거?’‘경찰서, 형사계 강진호 팀장입니다.
관내에서 발생한 토막살인 사건 관련, 집과 부속물에 대해 압수수색 나왔습니다. 수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압수수색영장?’‘나를 범인으로 지목한 거요?’ 김태우는 강 팀장이 제시한 압수수색영장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날 잡아넣겠다고?’‘야, 이 사람들아! 무슨 근거로 나를!...’ 김태우는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한 기세로 강 팀장을 노려보았다.‘뭘 그리 화를 내십니까?’‘어디까지나 수사는 해봐야 하는 거고…. 만약, 혐의가 없다면 그걸로 마무리될 텐데….’‘우리는 적법한 공무집행을 하는 것뿐입니다.’ ‘뭐라켔노? 적법한 공무집행?’‘살다 살다 별꼴 다 당하는군! 여기가 어디라고?...’ 김태우는 울분을 토하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강 팀장과 감식반 직원들은 그런 김태우의 고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안부터 부엌을 거쳐 구석구석 집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강 팀장은 혹시라도 빠뜨릴 수 있는 단서의 흔적을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반원들의 감식활동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강 팀장이 마당 장독대 부근을 수색 하 던 중, 장독대를 받치고 있던 벽돌 사이로 빛에 반사되어 빛나 는 한얀 은백색의 녹슨 사시미칼이 눈에 띄었다.
‘어이! 여기...’‘여기 한번 봐!’
강 팀장의 고함소리에 감식반원들이 급하게 강 팀장 쪽으로 몰려들었다.‘이 형사! 손전등 좀 비춰봐!’ 강 팀장은 장독대 밑 벽돌 사이 깊숙한 곳을 지목하며 사시미칼을 응시하고 있었다.‘팀장님! 사시미칼 이것 말입니까?’‘응, 그래!’
강 팀장은 이번 사건의 증거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오랜 연륜의 형사 짬밥으로 촉이 느껴졌다.‘이 형사! 그 칼, 이물질 묻지 않게 신문지에 잘 싸서 치안본부 감식과로 보내게….’ ‘예, 알겠습니다.’‘감식 결과는 나오는 대로 좀 알려주고….’ 강 팀장은 그간 탐문수사로 얻은 정보와 형사 팀의 판단, 그리고 확실한 물증이 있다면 이쯤에서 사건을 빨리 마루리 짓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휴가를 내어 집에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고 조용한 날들을 보내고 싶은 기대감이 일었다. 강 팀장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유력한 용의자의 집에서 수거한 사시미칼이 확실한 물증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고, 사건을 해결해가는 뿌듯함과 자신이 많은 사건을 해결해 왔던 베테랑 형사라는 자긍심이 일었다. 강 팀장은 강력사건이 있을 때마다 걸치고 다녔던 국방색 잠바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입에 물었다. 돌이켜보면, 국방색 잠바를 입고 강력사건 현장을 많이 뛰어다녔지만,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고 도 해결하지 못한 몇 건의 사건이 있었다. 강 팀장은 그게 징크스라는 생각을 하니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강 팀장님! 감식 과에서 결과에 대한 회신이 왔습니다!’ ‘아! 그래?’ 강 팀장은 이 형사가 전해주는 치안본부 감식과 의 사시미칼에 대한 분석 결과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사시미칼 모서리 부분에 옅은 혈흔 흔적이 나왔고,
그 혈흔은 피해자 엄세호의 혈흔과 동일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됐어!...’ 강 팀장은 예상했던 결과라고 탄식을 하며, 손바닥을 탁 쳤다. 강 팀장은 감식 결과 회보서를 들고 수사과장 사무실을 열어젖혔다. 수사과장은 신문을 읽고 있다가 강 팀장이 들어오자, 곁눈으로 슬그러미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어?’‘보고할 거라도?...’‘예. 과장님! 김태우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현장에서 녹슨 사시미칼을 하나 수거했고, 치안본부 감식과 에 감식을 의뢰했는데, 오늘 결과가 나왔습니다.’‘그래? 결과는?...’‘피해자 엄세호의 혈흔과 동일한 혈흔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사과장은 강 팀장의 사건에 대한 유력한 증거물을 확보했다는 환한 얼굴과는 대조 적으로 의외로 덤덤하게 강 팀장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강 팀장! 내가 보기에는 그간 형사들의 탐문수사 결과로 볼 때 김태우와 또 다른 공범이 있을 것 같고, 용의자는 충분히 압축되었다고 생각은 드는데...! ‘그런데, 그들이 순순히 자백을 하지 않거나, 확실한 목격자가 없다면, 100% 김태우를 구속시킬 수 있겠어?’‘그리고, 수거한 그 칼도 마찬 가지야. ’‘자네나 나나 수사 짬밥을 오랫동안 먹은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수거한 사시미칼이 깊숙이 숨겨져 있었고,
그 사시미칼에서 피해자와 동일한 혈흔 반응이 나왔다면 충분히 범죄에 사용된 증거물로 볼 수는 있을걸 세!’‘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100% 김태우가 엄세호를 살해했다고 밀어 붙이 기엔 다소 한계가 있을 듯한데?...’‘자네 생각은 어떤가?’ 수사과장은 강 팀장의 감식 결과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조목조목 반문해가며 질문을 던졌다.
강 팀장은 한동안 수사과장의 얼굴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수사과장의 이야기가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과장님! 과장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를 들어 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그럼에도 그간 오랜 시일 동안 사건을 끌어왔고 상부에서도 사건을 조기에 해결하라는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시골 주민들의 민심이 너무 안 좋습니다.’
‘제 생각엔….’‘….’ 강 팀장은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수사과장의 눈을 응시했다.‘이야기해보게나. 자네 생각을?….’‘지금까지 김태우에 대한 탐문수사 과정을 보면 김태우 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엄세호와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사실 이었 고, 주변인들의 진술에 의하면, 자주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 하 고요. 사건이 발생하기 전, 동네 철물점과 구멍가게를 방문 하 여 범죄도구로 추정되는 망치, 톱, 마대자루를 산 것과 현장에서 발견된 사시미칼에서 피해자의 것과 동일한 혈흔 양성 반응이 나온 점 등을 종합적으로 미루어볼 때 김태우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그리고, 토막 살인을 하여 시신을 옮기기까지 나이 먹은 노인네가 혼자 옮기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듯하고, 김태우의 외동아들인 김민식이가 시체를 유기하는데, 공범으로 함께 가담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따라서, 남은 것은...’‘유력한 용의자인 부자들을 소환해서 강하게 조사를 하고 그간 알리 바이 등을 추궁하여 자백을 받는 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수사과장은 지그시 눈을 감고 강 팀장의 수사 방향을 듣고 있었다.‘그래!’‘다 좋단 말이야!’‘그래서, 조사를 진행하다 다 부인하거나 묵비권 행사를 하거나 하면, 그것으로 영장 쳐서 구속시킨다?’‘뭔가 2%가 부족한 것 같지 않아?’
‘자칫 영장이 기각될 수 있을 것도 같고….’‘암튼, 강 팀장 자네의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니 신속히 조사해서 자백을 받아보게!’‘사건이 잘 해결되면 자네나 나나, 좋은 일이 많이 생길 테니…. 기대해봄세!’ 강 팀장은 수사과장에게 보고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이 수사과장에게 이야기했던 것 외, 미처 이야기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강압수사!’ 강압수사를 통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겠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