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끼리 작가 May 09. 2020

'희로애락'

'사람이 먼저다.'



정부 부처에 근무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선배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공직자인 선배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라는 뜻으로 교훈 삼아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선배가 초임 시절 시골 한적한 면사무소에 부임을 받아 근무를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근무여건이 여의치 않고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인원도 부족하여 많이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합니다. 하루 근무를 하고 있는데, 면사무소 앞에서 남자 2명이 싸우고 있다는 민원전화를 받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고,

신고를 받고 현장에 경찰관이 출동하여 보니, 젊은 친구와 당시 면사무소에 같이 근무하던 선배 직원이 엉켜서 서로 멱살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합니다.


그 경찰관은 면사무소 직원인 선배 직원을 금방 알아보았고, 현장에서는 모른 체하며 싸움을 하고 있는 두 명을 분리시키고 파출소로 임의 동행하려 고 하였다는데. 싸움을 하고 있던 선배 직원은 당일 비번이었고 술을 한잔 건하게 한 상태였는데,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하니 기세 등등하여 그 자리에서 오히려 젊은 친구의 뺨을 때리고 더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합니다.


당시 그 경찰관은 순간적으로 파출소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가면 누가 잘했든, 잘못했든 간에 그 선배 직원이 공무원 신분이라 큰 불이익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며. 젊은 친구를 잘 타이르고 두 사람을 화해시켜서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시키려 했다 합니다. 두 사람이 이의제기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고 두 사람을 훈방하려 했었는데, 젊은 친구가 면사무소에 가서 물 한잔 마시고 가겠다 하여 면사무소로 오게 되었고... 

사건의 당사자였던 그 젊은 친구는 당시 선배보다 나이가 8살이나 어린 친구였고 면사무소에서 와서는 술에 취한 나머지 마치 상전 노릇 하며 면사무소 소파에 기대앉아서 ‘어이! 주사 아저씨... 물 좀 갖다 주시오.’라며 비아냥거리며 물을 요구했고 물을 갖다 주니 바닥에다 물을 버리며 ‘요즘 면직원들은 청소도 안 하나 봐! 왜 이리 바닥이 지저분해...’라며 고성을 질렀다 합니다. 정말 가관이 아니었답니다.


그래도 선배 직원과 연관이 된 신고 사건의 당사자여서 인내하며 참으려고 노력하였고. 그리고 집으로 보내려고 하였는데, 갑자기 침을 땅바닥에다 뱉으며, ‘나, 갑니다.’라고 하며 면사무소 문을 나서려 하였다는데... 그제야 선배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 젊은 친구의 팔을 잡아당겨 의자에 앉히고는 ‘침을 어디다 뱉는 거야?’, ‘침 뱉은 것 청소 안 하면 집에 못 보내준다!’고 하며 면사무소를 나가려는 것을 제지하였다 합니다. 그랬더니 그 젊은 친구가 갑자기 선배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청소 안 하면 어쩔 건데?’라며 대들었고, 그 선배는 자신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어 그 젊은 친구의 뺨을 한 대 때리게 되었다 합니다. 주변의 직원들이 말려서 그렇게 면사무소에서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며칠 뒤에 그 젊은 친구가 그렇게 자신 있게 면사무소에서 자신 있게 한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하는데. 알고 보았더니, 그 젊은 친구의 아버지는 당시 지역 부군수의 아들이었고. 아버지를 등에 업고 위풍당당하게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던 것입니다. 나중 그 부군수는 면장을 통하여 사과를 요구했고 며칠간 군청에 찾아가 사과를 드렸다 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행정직 공무원으로서 엄정하게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마땅했다는 생각과 공무원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는 숙명으로 참는 게 맞았다는 생각이 교차한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젊은 친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권이 있지만 잘못된 행동이 있었고, 선배 역시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집행하는데 미숙한 점이 있었지만, 그 선배도 비록 공무원 신분이지만, 국민의 한 축으로서 인권이 있다는 생각으로 어느 것이 선순위냐의 문제를 떠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나 인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한편, 요즘 많은 교사들로부터 푸념 섞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느 시대나 상관없이 교사들의 권위는 인정되어야 하는데, 현재 교권이 많이 추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50대를 바라보는 나의 학창 시절에는 감히 선생님에게 대든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고, 심지어 선생이 말을 안 듣는다고 회초리로 때려도 아무 말 않고 맞는 것이 응당 정당화되는 시대였습니다.

일각에서는 학생의 인권이 교사의 교권과 상충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다 보면 교권이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인권을 주장하면서 학교 시스템에 저항하면 선생님의 권위가 도전받기 때문에 말 안 듣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식입니다. 이 같은 반응은 교권을 단지 교사의 권위로만 인식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교사의 권위를 통하여 통제와 처벌 그리고 학생의 순종을 통해 보장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권이란 수업을 자유롭게 할 권리, 교사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교사는 교육 이외의 행정 업무에 힘을 쏟아야 하고, 때로는 교장과 학부모의 어처구니없는 압박과 지시를 견뎌야 합니다. 

학생의 인권과 교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서로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으며 서로 누리는 권리입니다. 인권 친화력이 높은 공간에서 인권 감수성이 높은 학생과 교사가 모여 교육과 대화를 통해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때 학생의 인권과 교권, 둘 다 존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미투(mee too)’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미투' 운동은 미국의 흑인 여성 ‘타라나 버크’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불우아동을 위한 캠프에서 만난 한 여자 아이가 양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일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때 그 자신도 어릴 적 유사한 일을 겪었음에도 ‘나도 그랬어(me too)’라고 말하지 못했고 아이를 돕지 못했다며, 이후 이 일이 내내 그의 마음을 짓눌렀고 바로 ‘나도 그랬어’라는 호응과 공감을 위해 미투 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합니다. 

여기서 나는 그 아이의 고백, 즉 침묵을 깨는 개인의 진솔한 고백이 중요했다는 생각입니다. '버크'의 '미투 운동'은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각종 추문들이 드러나면서 들불처럼 전 세계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배우인 ‘알리사 밀라노’의 뒤를 따라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이 sns에 ‘나도 그랬어’라는 고백과 함께 해시태그(#me too)를 달았습니다. 캠페인은 하루 만에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리트윗 했고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sns는 사람들을 철저히 개인으로 만들지만 해시태그에 연결하는 검색어 노출을 통해 엄청난 관심의 응집력을 발휘했습니다. 미투 운동이 서서히 대세로 자리 잡아 안착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이 일회성 '쇼크'가 아닌 지속적인 ‘운동’으로 사회 저변에 번지길 바랍니다. 집단속에 침묵하지 않고 깨어나는 여성과 그들을 인정하는 환경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한 축입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인권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인권의 의식 수준은 그 어느 나라보다 높습니다. 다양한 구성원들과 글로벌 사회에서 인권의식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인권 친화력이 높은 환경 조성과 인권 감수성, 성 인지 감수성이 살아있는 개개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가치 실현을 이룰 수 있는 선진국형 인권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by: 코끼리 작가 (kkhcops@hanmail.net)

작가의 이전글 '희로애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