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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작가 May 26. 2020

'좋은 사람'

나는 작가다 공모전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집안일을 듣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던 하루 전날 야근을 하고 집에서 부인과 같이 조용히 거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부인은 자꾸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합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부인이 아파트 베란다로 가더니 뛰어내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가까스로 부인의 발목을 잡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나머지 이유를 물었는데, 부인은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부인의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고 지인(남편)은 부인의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른 체 몇 년을 지내왔다는 것으로 그 지인은 부인을 데리고 병원에 데리고 가게 되었다 합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담당 의사가 남편을 불렀고, 검진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의사는 ‘부인의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인데, 그간 그런 기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냐고? 반문하며, 일단 약을 조제해주지만, 계속 신경을 써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황이라’고 했다 합니다.

추가적으로 지속적인 약 복용 외에 애완견도 키워보라고 조언을 했다 하는데.. 그 이유는 가족들이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애완견이라도 있으면 애완견 하고 시간을 보내게 됨으로써 덜 외롭고 애완견과 같이 산책도 하고 돌보는 사이 다른 생각을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다 보면 조금이라도 우울증이 완화되지 않겠냐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작가 ‘사노 요코’의【‘사는 게 뭐라고’】라는 책을 읽다 보니, 유방암 수술을 받고 가슴을 잘라낸 자신의 삶을 시크하게 그린 대목이 나옵니다. 작가는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의 살이 속 빠지는 등 형상이 말이 아닐 정도로 피폐해졌다며. 이후에 자신의 삶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 ‘암은 좋은 병이다’라고 미소 짓는 그는 이미 삶을 달관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 속에서 그녀는 우울증이 암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몇 배나 더 차갑게 대했고, 친했던 지인들이 엑소더스처럼 다 사라져 가고, 사람들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자신이 변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폐인이 되어 몇십 년이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내심 암에 걸린 사람이 부러웠다했습니다. 세상에나 암에 걸린 사람이 부러웠다니! 우울증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더라도 무기력과 함께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으리라 추정됩니다.

요즘 식사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중 단골 주제 메뉴가 있습니다. ’ 삶이 우울하다는 자기 고백입니다. 자신의 힘든 삶에 대한 비관, 자녀들과의 갈등관계 등 오늘이라도 당장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하는 우울한 병리적 상태를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 심지어 청소년들까지도 ‘헬조선’이라 외칠 만큼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청년들도 우울합니다. 연애도 결혼도 취직도 내 집 장만도, 어느 것 하나 행복한 삶의 여정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더구나 노인 자살률은 단연 세계 1위, 사회적 수명이 짧아지고 직장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느라 가족관계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들에게 삶의 위로가 되어줄 삶의 동반자는 연금만큼이나 부족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가고 있지만, 우리가 얻은 경제성장은 ‘행복을 대가로 바친 명예롭지 않은 상처’만 남은 훈장입니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 이후 일본은 ‘우울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돼버린 지 오래라 합니다. 언제 급여가 삭감될지 모르고, 언제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가 올지 모르기에 불안해하며 일하는 반복된 일상,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기도,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도 힘든 그들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물가는 치솟지만 자신의 월급으로는 삶의 질을 유지하기 힘들어 ‘소확행’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생 말입니다.

부모를 부양하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으나, 자식은 독립하겠다며 내 노후의 의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낀 세대’인 중장년층에게 삶은 더없이 각박한 시간으로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인가? 최근 들어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무얼 얻자고 그토록 달리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인생 별거 없어!’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잠시 멈춰서 삶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달리는 이유가 그저 그동안 계속 달려왔고, 다들 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면, 이 무한질주는 멈춰야 합니다.
 
삶은 마라톤이나 100m 질주가 아니라, 탐험이고 여행이며 산책이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힘든 삶을 이겨내고 잠시나마 위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은 아이스크림 같은 달달한 농담과 유머를 건넬 수 있는 나의 가족, 친한 친구와 지인들과 좋은 시간 ․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무거운 삶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 많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처방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종종 애완견이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 같은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애완견(강아지)은 충성심이 강하고, 말을 잘 들으며, 영리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집에서 애완견을 키우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애완견이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며 기쁘게 안기며 주인을 즐겁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사회 심리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서로 좋아하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 사람이 지위가 높거나 똑똑하거나 잘 생겼거나 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그가 나를 좋아해 주기 때문에 상대방도 그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매사 호의적인 마음으로 다가갈 진데, 그런 사람을 싫어하고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처방전은 ‘희로애락 (喜怒哀樂)’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입니다.

by: 코끼리 작가 (kkhcop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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