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모처럼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어수선하던 날, 나는 기분 전환 삼아 이발소에 갔다.
문을 여는 순간 풍겨오는 비누향과 은은한 스피커 소리, 그리고 벽에 걸린 오래된 거울과 바랜 액자들이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여자들이 속상한 날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며 마음을 정리하듯, 나 역시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과 함께 복잡한 생각도 조금은 덜어내고 싶었다.
평소 자주 찾는 그 이발소의 사장님은 오늘도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가위를 쥔 손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움직임만큼은 여전히 경쾌했다.
머리를 자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식 이야기가 나왔다. 딸은 이미 시집을 갔고, 아들은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했다.
아들이 업무를 열심히 해 시장상을 받았고, 또래보다 승진도 빠르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그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번졌다. 자식 이야기 앞에서 반짝이는 눈빛은 세상의 어떤 훈장보다 빛나 보였다. 누구나 그렇듯, 자식은 부모 인생의 또 다른 자부심이자 희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사장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50년을 한길로 걸어왔다고, 이발은 자신에게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천직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 이발소로 출근하는 길이 여전히 설레고, 60대의 나이에도 가위를 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허풍이나 과장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사랑해 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과 함께 나왔다.
그는 또래의 다른 이발소 사장들 중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힘겹게 일하는 분들도 있고, 정성은 줄어들었는데 가격은 오히려 높아 손님이 끊긴 경우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목표가 하나 있다고 했다.
기네스북에 최고령 이발소 사장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꿈이라고.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건강을 챙기며, 오늘도 변함없이 가위를 든다고 했다.
자식들은 이제 그만 쉬시라고 말하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일할 겁니다. 이게 내 삶이고, 내가 가장 나다운 자리니까요.”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의 나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한켠이 묵직해졌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던가. 건강한 몸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일,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 가족이 무탈하다는 것, 큰 부자는 아니어도 작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형편이라는 것. 그것들이 얼마나 큰 복인지 잊은 채, 늘 나보다 더 잘나 보이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마음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거창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갖는 것.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는 것...
사장님에게 이발소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종종 ‘언젠가’라는 말에 기대어 산다.
'언젠가' 더 많은 돈을 벌면, '언젠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면, '언젠가' 남들만큼 인정받으면 그때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늘 오늘을 지나쳐 가버린다.
오늘을 소홀히 하면서 내일의 행복을 꿈꾸는 삶은, 어쩌면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 역을 향해 달리는 기차와도 같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건강한 것이 복'이고, '지금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복'이며,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복'이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마음 한켠에 작은 여유를 둘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한 삶이 아닐까?...
복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축복이 된다. 불평으로 바라보면 모자람뿐이지만, 감사로 바라보면 넘침이 된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말이, 그날 이발소에서 비로소 마음에 와닿았다.
하루하루 작은 것에 만족하며 자신만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남과 비교하기보다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 더 나아지려 애쓰는 사람. 자신의 자리를 사랑하고, 그 자리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는 평범해 보일지라도, 누구보다 단단하고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발소 문을 나서며 나는 조금 가벼워진 머리만큼이나 가벼워진 마음을 느꼈다.
'삶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오늘을 기쁘게 살아내는 태도에서 빛난다는 것'을, 나는 한 평 남짓한 이발소에서 작은 인생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