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섬의 세계문화유산
"안녕, 카타니아!"
우버를 타고 카타니아 공항으로 이동했다. 간절했던 시칠리아 렌터카 여행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돌아온 공항에서 렌터카 업체를 찾았고 줄을 서서 10분 정도 기다렸다. 기다림의 미학은 실천하기 힘들다. 여행 중에 종종 전형적인 한국인임을 깨닫는데 그게 또 여행의 묘미다.
'문화와 배경이 이토록 다르다니!'
또 여행은 다른 측면에 서서 세상을 꿰뚫는 시선을 갖게 한다. 친절하고 공손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마음으로 이어져, 연결고리 같은 것이 생긴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나쁜 사람도 있다. 튀르키예에서 사기당한 적이 있어 해외에 나가면 조심성이 극에 달하지만, 시칠리아에서는 그럴 걱정은 필요 없다.
무사히 '이탈리아 카 렌트(italycar rent)'에서 약 10일간 풀커버로 소형승용차를 대여했다. 총 35km를 달려야 에트나 산에 다다른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달렸다.
산 쪽으로 향할수록 거무죽죽한 날씨가 나타났고 이윽고 하늘을 뚫고 소나기가 내렸다. 케이블카 탑승장과 가까운 곳에 주차를 했고 사뭇 다른 모습에 눈이 동그래졌다. 인산인해를 짐작할 수 있는 수십대의 대형버스와 자동차는 겁부터 나게 했다.
줄지어 오른 언덕길 끝에는 케이블카(funivia) 매표소 가 있다. 등정하는 등산인들과는 상반되어 6인승의 푸니비아에 올랐다. 지구의 종말이 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구름이 땅끝까지 내려와 시야를 가렸고 거뭇거뭇한 화산재는 비를 머금고 더욱 짙어졌다. 10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정상으로 향하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시칠리아 동쪽 해안의 <에트나 화산>
2,500m 높이에 위치한 휴게소 문을 박차고 나갔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도사리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반바지, 반팔을 입고 '에트나 산'을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객기를 가장한 패기다. 패기로 무장해 성큼성큼 화산재 밭을 거닐었고, 마음에 앙금이 또다시 꿈틀꿈틀대기 시작했다.
(독백)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에 와서 그런지 모르겠다. 내면의 불씨가 커지면서, 화가 턱밑까지 차올랐고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인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다. 카타니아에서부터 틀어져 버렸고 여행의 참된 이유와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어디를 가는지보다 누구와 어떻게 여행하는지가 중요해졌고 그로 인해 나의 추억여행 챕터는 무궁무진해 언제든 꺼내어 시간 여행이 가능한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서랍을 꺼냈을 때 후회는 쏙 빠진 채 행복만 남았으면 하기 때문에.
"에트나 산에서 운영하는 전용 셔틀버스를 타면 정상에 가까운 곳에 내려다 주는데, 대기 시간과 인원을 고려해 근처 분화구에까지만 걷기로 했다. 버스는 해발 2,920m 지점에 내리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야지만 정상 부근의 분화구를 탐방할 수 있다."
해발 3,329m이자 밑변 둘레가 약 150km인 에트나 산은 9월 말이라도 얼음을 갈아서 바람에 뿌리는 듯했다. 짐을 간소화하면서 등산화나 겨울옷도 없었기에 씩씩하게 화산재로 뒤덮인 산을 올랐다. 비가 온 직후라 그런지 미끄럽진 않았고 둘이서 걸으니 적잖이 걸을만했다. 가장 가까운 분화구에 오를 때까지도 하늘이 개었다 다시 구름이 덮이곤 했다.
에트나 산에는 지속적으로 가스와 증기 등을 내뿜는 분화구가 총 4곳이 있다. 가장 활발한 분화구는 정상에 도달해야 만날 수 있는데, 화산재로 인해 가이드 투어만 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인 8월 4일까지도 에트나 화산이 폭발하면서 카타니아 공항이 마비되기도 했다. 인근 마을 용암이 흘러나면서 검은 화산재로 뒤덮였으며, 영국항공, 이지젯, 라이언 에어 등 유럽을 오가는 항공사들은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아웃 일정을 카타니아보다 팔레르모나, 코미소로도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중 한 곳을 들르기로 했다. 방금 내려온 분화구가 어땠냐고 물었더니 나이스하다고 답변을 해줬다. 지나가는 무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시칠리아에서 우리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행인이자 은인을 만나 갑작스레 기대가 부풀고 설렘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