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주비행사

by 김공대희

그날 금요일 오후 7시. 국방부 사이버전략과 사무실엔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떠난 자리, 단 한 사람이 불빛 아래 홀로 남아 있었다. 루시는 하나스페이스 건으로 하루 종일 국회에 불려 갔었다. 초임 주무관인 그녀는 의원 보좌관들의 말도 안 되는 각종 자료 요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이제 겨우 사무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NASA 발 신호 원문이 떠 있는 모니터를 보며 주말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녀를 스쳐갔다. 국정원에서 어렵게 입수했다는 ‘NASA 극비정보 관련 국방부 공조 업무’가 금요일 오후 무렵, 사이버전략과에 배정됐다. 주말을 앞둔 상황이므로 당연히 과의 막내인 루시의 업무가 되어 있었다.

“... 좌표 04T12:78:00Z. 지구기준 관성좌표... 어디야, 이게?”

그녀는 커서를 움직이며 좌표를 확인했다. 위치 계산 결과, 좌표는 한반도 남해 위였다.

“설마... 우리 쪽 상공?”

그때, 전화가 울렸다.

“루시, 미국에서 NASA 협조 요청이 왔는데...”

사이버전략과장의 다소 미안한 말투가 스마트폰 너머로 느껴졌다.

“각 우방국에 지원 요청을 했는데, 우리 한테는 생명공학에 대해 이해가 있는 파일럿을 달라 하네”

“공군본부 쪽 인원 풀 좀 뒤져봐. 월요일 오전 중으로 바로 통보해야 해...”

루시는 고개를 흔들며(상하가 아닌 옆으로) 스마트폰을 껐다. 손가락이 노트북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과장의 ‘미국 NASA 요청’이라는 단어는 초짜 주무관에게 중압감으로 다가왔고 일단 각종 자료를 두 개의 보조 모니터 화면이 넘치도록 잔뜩 뿌렸다.

과장에 이어 바로 선임 주무관의 전화가 왔다.

“루시 그거 말이야! 각국이 미국의 상황을 봐 가며... 미국이 요새 머 그렇잖아... 뭐 베스트는 아니고 스페어 요원 파견 쪽으로 가고 있다 하니까, 너무 어려워할 필요는 없어”

“네 네 감사합니다.”

루시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한반도 남해? 캡슐? 파일럿 파견 요청?”

“좀 빡씬데?”

“내가 대단해진 건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노량진 뒷골목에서 공무원 시험을 열나게 준비하는 좀비 중의 하나가 나였는데, 이게...”

공군본부에 이어 국방부, 국정원 그리고 여러 특수기관 등 대한민국의 전체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졌다. 그리고 특별한 적임자는 당연히 없었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그녀는 대학시절 택견 서클에서 했던 공중 동작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발차기는 예술이란 말이야"

"어차피 에이스급 요원이 아니고"

"아 집중 안돼... 퇴근해야 하는데, "

"수학적, 논리적 패턴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간단한데, 이건..."

PSAT 최고점으로 국방부에 임용된 루시에게 세상은 언제나 풀 수 있는 문제집이었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NASA 협조 요청’이라는 중압감과 선배의 '적당히'라는 멘트 사이의 간극은, 루시에게 양자역학보다 더 어려운 난제처럼 보였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 어느 사이에서 비몽사몽 한 루시의 눈에 섬광처럼! 운명처럼! 수학적, 논리적 사유와 전혀 관계없이, 이름 하나가 포착되었다. 검색 필터를 바꾸고 또 바꾸며 후보 리스트를 좁히며 군 경력, 항공체력지수, 전공 스펙트럼 끝자락에 애매하게 걸린 이름 '로빈'이었다.

모니터를 잠깐 바라보다가, 차트의 새로 탭을 열었다. 유전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경력의 파일럿이었다. 학부 전공뿐이나, 그래도 요청된 가이드라인은 충족했다.

김로빈, 공군 대위.

> 유전공학 전공. 학사장교 출신. 비행성적 “근성으로 통과(교관 코멘트).”

> 주요 기록: 집중력 보강필요(동기들 평가, 말이 많음).

> 비고: 독신, 연락 빠름(바로 됨)

우선 서류철 제목을 단단히 적었다. 〈NASA 파견: 김로빈 대위(안)>

과장이 좋아할 멋진 표지를 만들고 보고서 내용을 깔끔히 정리하여 긴급 보안 메일에 첨부했다. 송신 버튼을 정성스럽게 꾹 누르고 마무리하는 순간, 사무실 어딘가에서 오래된 냉장고의 소음이 끊겼다. 별빛이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건물은 너무 고요했다.

루시의 NASA 파견 안 보고서는 국방부/국가정보원 등 당연히 있어야 할, 별도의 심각한 논의가 생략되고 그날밤 사이에 바로 승인되었다.



공군 제11비행단 BOQ, 로빈의 주 서직지이다.

그는 공군 학사장교를 로맨틱한 이유로 지원하여 임관했다. 당연히 낭만적인 대학 생활과 우수한 전공 성적은 병행이 어려웠다.


루시가 뜨거운 밤과 새벽을 보내고 난 그 토요일의 새벽 여섯 시. 로빈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빛에 천천히 눈을 떴다. 공군 기지 숙소의 얇은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빛줄기가, 이른 아침의 냉기를 부드럽게 덮고 있었다.

꿈을 꾸었다. 대학 시절, 캠퍼스의 봄 냄새와 함께 떠오른 기억이었다.

입학 때부터 4년 동안, 새벽마다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던 J. 안쪽 창가자리, 가장 좋은 그녀의 자리를 맡아두는 게 그의 아침 일과였고 대학생활의 나침반이었다. 그 시간은 늘 설렘으로 시작됐다.

중앙도서관 뒤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햇살이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던 오후. J가 말했다.

“나, 하늘을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난 파일럿이 돼 볼까?”

그 말에 J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그 짧은 순간이, 마치 인생의 한 문장을 고쳐 쓰듯 그의 마음에 새겨졌다. 꿈속의 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날의 말은 여전히 현재를 움직이고 있었다.

로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하늘을 나는 사람...”

비행 이론서로 밤을 지새우고, 체력훈련으로 새벽을 맞았다. 낙오자 명단에서 이름이 불릴 때마다 이를 악물었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처음 비행복을 입던 날,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그는 비행장 활주로 끝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J, 나도 이제 하늘을 난다.”

사랑의 승리였다.

문제는, 하늘에서 길을 찾아도 마음에선 자주 길을 잃었다는 것. 파일럿 배지를 가슴에 단 그 순간... 모든 것의 의미였던 그녀는 없었다. 로빈의 불투명한 미래에, J는 한치의 빈틈도 주지 않고 졸업과 함께 사라졌다.


침대 위의 스마트폰 알림음이 울렸다.

[국방부]

"NASA 파견, 파일럿 소집 긴급 통보. 공군사령부 승인 완료"

로빈은 화면을 멀뚱히 보다가 우습다는 듯...

“나라고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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