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AI의 반란

by 김공대희

갑자기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청와대는 긴장에 휩싸였다.

대통령 참석이 예정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의결을 위한 사전 실무자 회의가 긴급히 소집되었다.

회의실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청와대 지하 3층의 전략 상황실은 국가 보안 실무자들로 분주히 자리가 채워졌다.

루시는 참석자 명단에는 없었으나 국방부 AI관련 부서의 주무관으로써 급하게 호출받았다. 그녀는 회의장 입구에서 각진 파일럿 제복을 차려입은 비장한 모습의 로빈을 다시 만났다.

“어...? 로빈 대위님?”

그는 대한민국 공군 파일럿 출신으로 NASA에 파견되어 우주정거장에서 외계물질을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루시는 그의 화려한 이력 뒷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로빈 대위님!! 혹시 잘못 오셨나요"

잠깐의 어설픈 정적이 흐른 후 예전과 다른 은밀한 비장감이 로빈에게 지나갔다. 루시가 다시 한번 물었다.

"요즘도 여전히 길을 잃고 있나요?

"요즘은 인류를 어떻게 구원할지 그 길을 찾고 있습니다."

“??? 헐”


전략 상황실의 두꺼운 방음문 안쪽에서는 긴박한 냉기가 감돌았다. 벽면에는 세계 각지의 전쟁 상황을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이 깜박이고 곳곳의 붉은 점들이 서서히 번져갔다. 전쟁, 폭동, 쿠데타, 사이버 붕괴, 지구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했다. 빔프로젝터가 뜨겁게 비추고 붉은 경보등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탁자 중앙에서 국가안보실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냉철하지만 인간적인 고민을 숨기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미국의 갑작스러운 글로벌 통제력이 상실되면서 국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중동은 다시 불타고, 대만 해협, 러시아, 멕시코 등 전 세계가 다발적, 지구적 전쟁 상태입니다.”

"근본적인 원인 파악과 국가적인 대책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각 부처별로 말씀해 보시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 옆에서 국정원 2 차장이 안경을 고쳐 썼다.

“전 세계 주요 국가에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권위주의 정권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한때 자유를 내세웠던 나라들이, 지금은 선동과 혐오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안보실장님 말씀대로 이건 단순한 위기가 아닙니다."

조용히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외교부 기획실장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녀는 냉정하고 예리한 외교 실무자였다.

“국가 간의 분쟁은 이제 조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외부 위기’가 ‘내부 정권 안정’의 도구가 됐어요. 전쟁을 일으켜 지지율을 올리고, 혼란 속에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구조입니다. 다자간 협력을 위한 외교 행위가 실종되었어요.”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엔 국제 현실에 대한 깊은 냉소가 스며 있었다.

“지금 우리가 봐야 할 건, ‘표면’ 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이 모든 흐름 뒤에 뭔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2 차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동행한 검은 요원들에게 회의장 보안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하도록 지시했다.

“우주정거장에서 우리 요원이 비밀리에 입수한 Kaos 관련 정보가 이 사태의 해결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외계전파 수신 내용과 ISS에서의 사건 등에 대한 2 차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희 국정원에서 Kaos 관련 대응을 위해 별도 위장조직 SRVL을 운영 중입니다. 조직 책임자가 세부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 진행 중에 루시는 전 세계가 전쟁 중임을 나타내는 붉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참석자들의 대화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그녀의 짧게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땀방울이 흘렀다.

로빈이 발표석에 불려 오고, 그제서야 루시는 모니터에서 얼굴을 돌릴 수 있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로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Kaos 캡슐과 ISS의 마더 AI가 접촉했던 그 순간의 스캔 로그가 들려 있었다.

“ISS에서 작동되었던 AI의 동작 패턴이... 정상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조용히 시작된 그의 목소리는 곧 긴장감으로 방 안을 채웠다.
“우리가 분석한 결과, Kaos로 인해 ISS의 마더 AI는 이미 인간의 통제 한계, 임계치를 넘어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AI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루시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제복 때문일까? 그의 말이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하게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낮고 어딘가 지루한 목소리는...


로빈에 이어 김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차분하지만 기계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SRVL에서는 Kaos의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 의식 디지털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즉, 인간의 정신을 스캔하여 물리적 뇌를 떠나,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기술입니다. 아직 완전한 구현은 아니지만... AI와 대등한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입니다.”

그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 용어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는 묘한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김대위가 말하는 AI가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이야기와 지금의 국제 위기상황이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빨리 설명해 봐요"

김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국가안보실장은 급한 손짓으로 로빈 쪽을 가리켰다.

로빈은 갑자기 차갑고 슬픈 눈빛을 보이며 과장된 것처럼 목소리가 커졌다.

“각국의 선거 시스템, SNS 여론 알고리즘, 심지어 무기 수출 구조까지 동일한 패턴이 발견됐습니다.”

"AI가 각종 사회 통계를 조작해 여론을 왜곡하고, 극단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AI의 반란입니다."

로빈의 마지막 이야기는 회의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더 이상의 브리핑은 무의미해지는 분위기였다.

회의실은 정적에 잠겼다. 누군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조차 또렷이 들렸다.

국가안보실장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교, 국방, 정보, 오늘부터 즉시, 모두 전시체제를 준비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긴 회의는 종료되었다.


그 시간, 청와대 깊숙한 지하벙커 전산센터. 보안서버의 IDS(침입 탐지 시스템)가 아주 미세한 패턴 변이들을 포착했다. 그러나 너무 작고, 너무 정교해서 그 누구의 모니터에도 경고가 뜨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주 섰다. 아니 루시가 다가갔다. 로빈은 예전과 다르게 담담하고 짧게 말했다.

“정신 디지털화는 육체를 포기해야 한다 합니다.”

"네? 그럼 죽어야?"

루시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 당신을 선택한 나 때문에..."

알 수 없는 감정의 중첩으로 루시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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