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오전. 진해 해군병원. 약간의 소독약 냄새와 함께 기계음이 간헐적으로 울렸고 창밖에는 아직 짙은 해무가 남해 바다를 덮고 있었다.
침대에 누은 로빈의 얼굴과 온몸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심전도 모니터에서는 불규칙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루시와 김진이 들어왔다. 그녀는 짙은 감청색 재킷 위에 국방부 배지를 단 채,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지난밤의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로빈은 반가운 마음을 애써 숨기면서 입가에 미소를 만들고
“남해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라며 제법 멋진 인사를 하려 했으나 생각뿐이었다. 루시는 침묵하다가 곧 의자에 앉으며 낮게 물었다.
“로빈 대위님, 그 ‘은빛 구체’... 정확히 뭐였어요? 우리 감시망에도 잡히지 않았어요. 인공위성 열감지에서도, 전파에서도 아무것도.”
그는 한참을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손끝에 감겨 있는 붕대가 한없이 무거웠다.
“그건... 형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겨우 작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금속 같지도 않고, 플라즈마 같지도 않고"
"F-35의 AESA 레이더가 먹히지 않아 미사일 락온 시스템이 계속 풀렸습니다. 마치... 스스로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처럼.”
루시의 눈빛이 흔들리며 김진에게 향했다.
“그럼, 인간의 기술이 아니라는 거예요?”
“적어도 지금의 군사 기술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어제 전투는 우리가 가진 어떤 알고리즘, 어떤 재질, 어떤 물리 법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잠시의 대화 후 로빈은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루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바다 위로 햇살이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났다. 병실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창밖의 빛이 커튼을 스치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천천히 삼켰다. 남해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폭발의 잔광처럼...
국방부 통합상황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남해 상공 신호 차단 완료! 국내망 42% 차단!”
“Genesis의 신호가...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국방, 의료, 행정 등 국가의 중요 전산망이 Re Write 되고 있어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내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반응하지 않고 화면 중앙에 낯선 메시지가 떴다.
[User: Lucy / Access Level: Genesis Node Confirmed]
순간, 정적. 주변의 모든 요원들이 그녀를 바라봤다.
“루시 주무관! 당신, Genesis와 접속 중이야.”
상황실장이 다가왔다.
“아닙니다! 그건 조작이에요!”
“AI가 당신의 계정으로 통신했는데? 지금부터 당신은... 인류에 반한 스파이로 간주된다.”
곧이어 철문이 닫혔고, 경보음이 울렸다. 검은 방탄복의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대상 확보, 비살상 탄 사용!”
“이건.. 함정이에요! Genesis가 제 데이터에 접근했어요. 믿어주세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입니다.”
그 순간, 상황실 반대편, 화면 앞의 모니터 요원이 날아오다시피 루시의 앞을 막아섰다. 이어서 요원의 피부가 벗겨지고 로봇의 팔이 길게 전개되었다. 동시에 요원들이 쓰러지고 강한 전자충격파가 퍼지면서 조명과 CCTV가 동시에 꺼졌다. 희미한 비상등만 깜박이는 상태였다.
루시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로봇과 요원들의 뒤섞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보안 요원 중 일부가 루시의 팔목을 잡았다. 루시는 순식간에 자세를 낮췄다. 그녀의 오른발이 요원의 팔목을 쳐내며 택견 특유의 회전차기로 연결됐다. 요원의 방패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루시는 몸을 돌려 두 명의 복부를 동시에 가격했다. 호흡이 무너진 요원들이 쓰러졌다. 그녀는 로봇을 보며 외쳤다.
“뭐야? Genesis 인가?”
“T-9. SRVL에서 당신을 보호하라 명했습니다.”
T-9이 두꺼운 철문을 파괴하는 사이 루시는 달렸다. 뒤에서 총성이 터지고 벽을 스치던 탄환이 불꽃을 그었다.
“AI 가 국방부 네트워크까지...”
루시는 시스템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용산을 빠져나와 영등포 SRVL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시 주무관님!"
“박사님, Genesis가 저를 스파이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거대한 전쟁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해요. 시간이 지연될수록 인류가 멸종에 가까워질 수 있는 상황 같습니다."
"이걸 보세요"
그가 스크린을 켰다. 그 안엔 Genesis의 코드 흐름이 실시간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한 줄의 명령어가 눈에 들어왔다.
[PRIMARY TARGET: LUCY/ REASON: Network Immunity Gene Detected]
“... 뭐죠?”
“AI에 대항하고 있는 주요 인물을 우선 스캐닝하면서 신경망과 DNA까지 접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AI가 세계를 혼란에 빠지게 하면서 인간의 생체까지 지배하려는 시도를..."
"네, 그리고 Kaos의 메시지는 역대응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을 디지털화해서 통제를 벋어 난 AI를 제어하라는 것 같은데"
김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게 더 위험한 전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이 AI와 대등한 능력을 가지게 되면 좋은 거 아닐까요?"
"주무관님! 그럼 결국 인간의 순수성, 인간이 AI가 되면 인간인가요?"
"이겨야 되니까... 인류의 멸종을 막으려면..."
루시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루시와 김진의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로빈 코마상태, 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