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중일 전쟁에 대한 私說

임진왜란

by 김공대희

명한 학자가 아니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일개 서생에도 감히 임진왜란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인 견해의 私說(사설)로써 중언부언함을 양해 부탁드니다.

러나 한편으로는 제법 그럴듯하여 무릎을 탁 치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해봅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고 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지정학적인 세계사 관점으로 보면 랜드파워(육지세력)가 득세하던 세상이 지나고 시파워(해양세력)가 지구를 점령하기 시작하는 그런 시기였다.

조선 건국을 기준으로 보면 딱 200년 만에 큰 전쟁이 발생했고

그 당시 조선은 중국에 딸린 소중화를 자처하는 육지세력 이었다.

유럽에서의 1592년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대립하고 절정에 다다른 혼란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대항해시대 즉 유럽 관점에서의 미지의 세계 발견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으로부터 정확히 400년 후 1992년, 필자가 신입사원으로 통신사에 입사했었다.

필자가 통신사에 입사한 후 통신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변하는 시기가 왔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개인과 개인들을 디지털 혁명으로 빨아들였다.

필자가 통신사에 입사하는 바람에 이렇게 세상이 디지털로, AI로 탈바꿈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매우 조심스럽게 해 본다.


임진왜란은 여러 각도로 설명될 수 있다.

즉 조선, 일본, 명, 유럽, 청(여진) 등 여러 국가들이 개입된 대규모 국제전쟁이었고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전쟁이었고 해양세력과 육지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인 전쟁이기도 하였다.

592년 백제로부터 영향을 쎄게 받아 근대국가를 시작했던 일본이, 그로부터 천 년 후 조선을 침공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의 당사자인 조선과 명나라, 일본 내부로 들어오면..

조선은 이황, 이이, 조식 등 대학자가 배출된 시기이고 소위 당쟁이 심화되고 분화되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학자의 관념론이 의의가 있는지, 당쟁이 무조건 나쁜 것인지, 서민의 관점에서는 이런 게 의미가 있는지 등 또 다른 생각할 거리가 있는 주제이다.

명나라는 서서히 '명'이 다하는 시기로, 대체로 우리나라는 500년 주기로 왕조가 교체된다면 중국은 200년이 지나면 왕조가 서서히 무너진다는 말이 있듯이 명나라의 운이 다하는 시기이다.

일본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로써는 매우 수치스러운 한일합방의 시발점이 임진왜란부터가 아닌가 싶다.

포르투갈 등 서양 세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일본이 대륙을 침공하려 시작했고 결국은 300년 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당나라가 한반도를 침략하고 백제가 밀려서 일본에 상륙하는 상황과 몽골이 고려로 밀려와 여몽연합군으로 일본을 침공하는 그간의 육지세력 중심의 역사에서 거꾸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해양세력 중심의 패러다임 변화를 시작하는 전쟁이기도 하였다.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20만 대군이 배를 타고 부산진을 침공한다.

물론 20만 대군이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고 1 군인 소서행장의 1만 9천 명이 먼저 오지만 대략 20만이 전부 배를 타고 타국을 침략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없을 것이다.

부산진을 지키는 정발과 동래성을 지키는 송상현은 그 시대 교육받은데로 사대부의 뜻을 끝까지 지키고 전사하였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을까...

그 후 파죽지세로 북상한 일본은 신립과 탄금대에서 일전을 치른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대표적인 사례로 관심이 많이 간다.

단순한 신립의 고집으로 그런 졸전을 하고 패전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신립장군의 탄금대 전투에 대해 조금 깊이 알아보았다.

알아보는 관점은 디테일한 사실을 깊이 파보기보다는 대부분의 역사가 정치적인 관점으로 왜곡 혹은 다르게 쓰이다 보니 반대편의 정치적 관점으로도 살펴보고, 당시 전쟁 당사자인 중국과 일본의 관점도 알아보는 그런 입체적인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부연하면 정치적(당파적)으로 극명하게 인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원균이다.

원균에 대한 해석도 임진왜란의 전개에 따라 나중에 다루어 보도록 할 예정이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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