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병이 도졌다. 6개월 만에 다시 항공권 티켓팅.
자칭, 타칭 태국병 환자인 나는 이번 여름에도 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거의 매 해 여름과 겨울 휴가 중 한 번은 태국을, 엄밀히 말하면 방콕을 찾았다.
남편의 휴가가 취소되면서 나라도 혼자 떠나야겠다 결심하고 보니 또 태국이 생각났다. 어느 정도 치안이 보장되는 곳, 여러 번 발걸음을 해서 낯설지 않은 곳, 매콤 달콤 새콤한 산해진미들, 왠지 모르게 그리워지는 레몬그라스 냄새, 남국의 '훅' 들어오는 열기와 묘하게 몸을 흔들게 되는 태국 뽕짝 '머람'과 '룩퉁'까지...
혼자를 결심했지만 운 좋게도 친구와 함께 떠날 수 있게 됐다.
방콕을 자주 갔던 이유는 워낙 태국을 좋아해서이기도 했지만 직항편이 많아 접근이 쉬웠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가항공사들의 취항이 늘어나면서 30만원 가량이면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점은 나 같은 '태국병 환자'들을 양성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콕이 아니라 치앙마이다. 떠나기 두 달 전에야 티켓을 찾아보니 방콕 돈므앙을 경유하는 에어아시아마저 짐과 기내식을 추가하니 60만원에 육박했다. '어쩌나...다른 곳을 찾을까?' 하다가 그냥 지르기로 했다. 직항으로, 무려 '대한항공'으로. 출발 5일 전 땡처리로 나온 나트랑 행 비행기를 빼고는 국적기를 탄 것이 도대체 언제인지...
방콕행의 두 배를 지불하고 치앙마이로 향한 건, 이번에는 그냥 좋은 호텔에서 쉬고, 맛있는 음식 먹고, 마사지받는 휴양이 안 땡겨서다. 거대한 규모의 쇼핑몰과 마천루 루프탑 바는 없어도, 레스토랑의 세련미는 떨어져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여행을 하고 싶었다.
7년 전 치앙마이를 비롯한 태국 북부를 여행하다가 물벼락을 맞은 일이 있었다. 썽태우(소형 트럭을 개조한 태국식 버스)에 탄 채 더위에 넋이 나가 있는데 정차한 틈을 타 현지인이 물을 한 바가지 퍼붓고는 활짝 웃는 것이다.
체력적으로 지쳐 화낼 힘도 없이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같이 탄 이들이 하는 말은 "축제가 시작됐다"였다. 태국의 설날인 '쏭크란'이란 거다. 그 길로 옷 안에 수영복을 장착하고 나와 물총을 샀다. 일부러 그 시기를 맞춘 것도 아닌데 큰 행운이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정신줄 놓고 놀아본 기억이다.
태국이 곧 방콕이거나 푸켓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치앙마이에 있다. 이른 새벽 구시가지를 도는 탁발승들을 만날 수 있고, 란나 왕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건축물들이 즐비한 그곳. 불교의 나라라는 것을 끊임없이 깨우쳐 주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원들도.
치앙마이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조금 더 태국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워낙 관광대국인지라 어느 지역을 가도 여행자가 없는 곳은 찾기 드물지만 소도시일수록 소박하고 포장이 안 됐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치앙라이를 베이스캠프 삼아 국경도시 매싸이에서 미얀마를 넘어가 볼까?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의 국경이 모여있는 골든 트라이앵글을 다시 한 번 찾아볼까? 아니면 중국에서 내려온 국민당 병력들이 정착해 차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는 매싸롱은 어떨까?
이번 태국 여행에서도 역시 식도락은 가장 즐거운 행복일 것이다. 처음 맛보던 순간 '매콤한데 시큼하기까지 한, 이 요상한 액체는 무엇이더냐!'라고 생각했던 똠얌꿍은 이제 나의 베스트 해장 메뉴가 됐다. 파파야를 채 썰어 갖은 양념과 태국식 액젓에 버무린 쏨땀은 더운 나라에서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국수들, 코코넛 밀크를 잔뜩 넣은 그린커리에 풀풀 날리는 쌀밥을 쓱쓱 비벼서!
배가 터질 듯 불러도 후식으로 망고, 망고스틴, 람부탄 같은 열대과일은 빼놓을 수 없다. 더워 진이 빠질 때마다 당을 보충해 주는, 연유를 넣어 진하고 달콤한 커피나 밀크티는 보일 때마다 마셔줘야 한다. '쌩쏨(럼의 일종)+소다+라임'의 태국식 주법(酒法)은 어느 음식과 함께해도 어울림이 좋다.
그래서 또 만나러 갑니다. 이제 남은 기간 보름, 이번에 가면 내가 몰랐던 태국을 조금 더 맛보고, 맡아보고, 만져보고 오리라. 다녀와서도 내 주방에서 태국을 맛볼 수 있는 각종 식재료들이 짐가방에 가득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