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구시가지의 북적이는 대로변에서 대나무로 아치를 만든 비밀통로를 따라가니 갑자기 고즈넉한 리조트가 나타났다. 그림이 걸린 회랑을 따라 걷다 컨시어지 앞에 섰는데 야시장에서 산 조잡한 무늬의 티셔츠를 입은 7년 전의 내가 보였다. 짐을 들고 이 숙소, 저 숙소를 돌며 '얼만가요?'를 물어보는 그때의 나 옆에서 지금의 내가 호텔 바우처를 내밀었다. 새까맣게 탄 앳된 나는 가격표를 확인하고는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짐짓 점잖은 체를 했다.
란나 스타일로 꾸며진 타마린드 빌리지. 초록초록한 정원이 싱그럽다.
예전에 가봤던 곳을 다시 여행하다 보면 "예전엔 이랬는데 지금은 아니네? 그때가 좋았어"란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땐 이렇게 중국인 단체 여행객이 많지도 않았고, 현지인들도 순박했고, 물가도 쌌는데" 등등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대감이 무너지면 화가 치밀기도 한다. "누가, 무엇이, 내 추억의 장소를 망가뜨린 거냐!"며 그곳이 마치 내 고향이라도 되는 것 마냥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처음부터 새로운 곳으로 찾아갔다면 느끼지 않았을 서글픈 감정이다.
처음부터 '익숙한' 여행자라는 말에 어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몇 년 전 잠깐 들렀던 여행지가 언제나 그 모습 이리라 단정하는 것도 일종의 오만함일 수 있다. 변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곳이 갖고 있는 수많은 모습 중 하나를 본 뿐인 것을...
뭐, 변했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흘렀는데 변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거기만 변했을까? 학생이던 2009년에 다녀온 이후 7년이 흘러 다시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를 찾았다. 그곳 보다 더 변한 것은 나였다.
'나중에 돈 벌면 꼭 저 호텔을 가봐야지' 다짐했던 치앙마이 '타마린드 빌리지'에서 체크인을 할 때 앳된 나를 만났다. 뿌듯한 마음 반, 가슴 아린 느낌 반이었다. '큰 사치는 못 부려도 열심히 살다 보니 위시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는구나' VS '고작 7년일 뿐인데 30년은 더 늙은 느낌'
여행 내내 '힘든 여행, 이제는 못 해'와 '저 때가 더 반짝반짝했었다'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치고받고 싸웠다. 그래서 예전 여행의 흔적이 있는 곳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일부러 지도는 보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감으로 찾다가 못 찾으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걸었다. 빠뚜 타패 근처의 '나이스 아파트먼트'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애교 많은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기대했건만 아쉽게도 리노베이션 중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아침마다 크루아상을 구워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던 치앙라이 투어리스트 인(INN)에도 들렀다. 배낭여행자의 숙소 근처에는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가게와 1kg에 30밧을 한다는 세탁소가 예전처럼 있었다.
치앙라이의 뒷골목.
당연하게도 내 머릿속 싸움의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났고, 그곳이 변했고, 나도 변했다. 미화되고 왜곡된 기억에 갇혀 궁상스럽게 굴다가 현재 내 눈 앞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놓쳐버린 게 아깝다. 치앙마이를 다시 오게 된다면 쓸 데 없이 센티멘탈했던 32살의 나를 미래의 내가 안쓰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