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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Mar 01. 2021

3월 1일과 여성혁명가 14인

나라 잃은 여성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해방 당일인 1945년 8월 15일에 건국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바로 그 다음 날이었던 8월 16일 건국부녀동맹이 결성되었었다이 정도의 적극성이었다면 여성들이라고 해서 독립운동이 참여하지 않았을리가 없었겠는데 3월 1일 만세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여성은 왜 한 명도 없었을까? 33인은 스스로를 민족대표라고 했지만, 당연히 그들이 정말 모두를 대표하지는 못했다.


만세운동의 주역은 3월 1일 이후에 독립운동을 이어간 사람들이었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는 식민권력의 통계로도 60만에서 100만에 달하며, 이 숫자는 당시 인구 1,600만을 적용하면 전 인구의 3.7%에서 6.2% 가량이다. (권보드래, [3월 1일의 밤], 11쪽) 3.1운동은 나라를 '잃었다'는 것을 실감조차 하지 못하던 조선인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의식개혁운동이자 국제외교전략이자 대규모의 비폭력저항운동이었다. 3.1운동에서 여성의 참여가 매우 도드라졌다고 알려져있기도 하다. 유관순이 이화학당에서 이문회 동료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그렸던 것처럼 말이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따라가서 읽다보면, 나라면 어땠을까 고문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혹은 당대의 현실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상념이 든다. 그러다가 "나라를 잃었다"는 감각이 무엇이었을까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종종 이른다. 그 전의 조선왕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을 터인데, 나라를 구하고자 한 여성들이 세우고자 한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윤석남 그림, 김이경 글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너는 영웅이다' 김마리아 초상화

김마리아. 독립운동을 한 여성 얘기를 나올 때마다 가장 첫 손에 꼽히는 인물. <싸우는 여성들, 역사가 되다>. 여성독립운동가 14인에 대한 그림과 글이 실린 책에도 김마리아가 가장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재판 중에서 김마리아는 어째서 여성의 몸으로 독립운동을 하오? 라는 판사의 질문에 나라를 잃은 것으로 치면 남자와 여자 같으므로, 나라를 구하는 일에도 함께 나서야 하지 않겠냐며 이렇게 답했다. "세상이란 남녀가 협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다. 좋은 가정은 부부가 협력해서 만들어지고 좋은 나라는 남녀가 협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마리아에게 독립운동은 곧 여성운동이었고, 나라를 구한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여성이 주권자로서 함께 나라를 건설한다는 의미였다. 서구와 같은 여성참정권운동이 한국에는 없었고, 여성참정권은 해방 이후에 어쩌다 얻어걸린 권리였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런 시각이 얼마나 서구중심적인 시각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에피소드다. 한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은 바로 독립운동이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여성이 원하는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한 소망을 담아 독립운동을 했던 것. 


<싸우는 여성들, 역사가 되다>에는 14명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자화상을 한국의 페미니스트 미술가 1세대 윤석남 작가가 그렸고, 식민지 시대를 전공한 역사학자 김이경님이 글을 썼다. 어떨 때는 서간문으로 어떨 때는 연대기 기술 방식으로 쓰여져 있어서 가독성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윤석남 작가가 그린 초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 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다. 

 

윤석남 작가가 그린 박자혜 초상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 중 한 명은 '과격한 간호사 박자혜' 편. 윤석남 작가는 신채호의 부인으로 알려진 박자혜가 신채호의 뼈가 담긴 궤짝을 안고 서 있는 모습을 초상으로 그렸지만 남편을 잃어 슬픔에 잠긴 부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단호한 미간의 주름과 표정이 자신에 찾아온 비극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자 하는 기개가 서려있다. 박자혜는 조선 시대 당시 여성이 할 수 있었던 일 중 하나인 궁녀로서 약방 관련 일을 하다가 이후 간호학부를 진학하여 근대 의료기술을 접하고 이후 중국으로 갔다가 돌아와 조산원을 차린 근대 여성의학의 산역사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인상적이다. 3.1 운동 직후 병원에 부상당해 입원한 조선인들이 고관대작도 아닌데 일제 앞에 당당하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을 보고 감읍하여 며칠 후 병원 옥상에서 간호사 동지들을 규합해 간우회를 조직하고 그 길로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처럼 여성독립운동가들 역시 상당수가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거나 해방과 분단 이후에 소식이 끊겼다. 그래도 사회주의 계열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과 공유가 이제는 가능해져서 여성독립운동가 인명사전도 나오고 여러 독립유공자들이 사후에 인정되고 있는 점은 조금이나마 진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라잃은 여성의 싸움, 여성이 주권자가 되기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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