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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Mar 25. 2021

캔슬 컬쳐

리뷰오브북스의 리뷰, 리뷰의리뷰의리뷰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하여 얼른 정기구독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서평과 해제는 독자적인 연구물로 그다지 인정되지 않는데 이런 시도가 무척 반가웠기 때문. 주례사 서평을 지양하고 세간의 여러 금기 때문에 꼭 논해야 할 책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글을 읽는게 참 오랫만이기도 했다.


이번 창간호의 특집은 "안전의 역습"


지금 다뤄야할 매우 중요한 주제. 왜 평등과 정의에 대한 요구가 안전으로서 수렴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안전담론은 한끝만 잘못 나가면 타자에 대한 혐오정치를 승인하는 길로 빠질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어디에서도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안전담론 내러티브를 요즘 인터넷 문화와 젊은 이들에 대한 씁쓸함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는 것 역시 문제일터다. 여기에서 어떻게 생각을 더 이어나갈지 고민이었는데, 안전의 역습에 실린 특집글 필자들도 대부분 같은 고민이신듯. 조금 더 주장하고 논증하면 좋았을텐데, 매우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잡아놓고는 말끝을 흐린달까. 그럼에도 여러모로 재밌는 독서였다. 이런 특집 기획도 반가웠고.


그 중에서 특히 제목을 보고 관심을 가진 건 최근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캔슬 컬쳐 얘기를 발빠르게 실은 "취소가 문화가 되지 않으려면" 송지우의 글.


캔슬 컬쳐란 말그대로 "너 취소야!"라고 하는 일종의 보이콧 운동.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이런 운동을 비판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송지우의 글에서는 미국의 데이터분석가 데이비드 쇼어가 블랙라이브즈매러운동이 한창일 때 '폭동이 민주당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한 정치학 연구논문을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논란에 휘말리고 해고된 사건이 캔슬 컬쳐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키면서 등장한 캔슬 컬쳐에 대한 논란의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각각 입장을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안전주의 내러티브에서 캔슬컬쳐는 인터넷 세대의 안전집착증이 낳은 극도의 위험회피 성향으로, 그리고 다시 비현실적인 도덕적 완벽주의로 발현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바마의 표현에 따르면) 정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결함"이 발견되는 순간 취소되어야 하며,  초고속 대규모 소통에 능숙한 인터넷 세대의 규범은 빠르게 진화하고, 발맞추어 따라가지 못하거나 오래던에 저지른 실수가 빌견되기라도 하면 "신속하고 강렬한 응징"을 각오해야 한다"(60쪽).


이러한 안전주의 내러티브에 대해 기성세대 자유주의자들의 걱정이 크다. 2016년 시카고 대학교 학생처장 존 앨리슨은 신입생에게 보내는 환영편지에서 "우리는 논란이 되는 강연자들의 강연 초청을 철회하지 않는다. 이는 스스로 생각과 충돌하는 생각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지적 안전공간을 용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썼다. 앨리슨에 동조하는 기성세대 교수들은 모든 권위에 도전할 나이에 "지적 안전공간"을 찾는 학생들의 모습에 낙담한다. 이들은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대학의 "과잉보호" 행각에 경악하고, 대학생의 아동화를 개탄하며 요즘 젊은이들의 심리적 허약함과 도덕적 결벽증을 염려한다.


흠...그런데 정말 그 점이 문제일까?


예컨대 군사독재를 한 전 대통령의 강연회를 반대하는 것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학교 내에서 각종 혐오발화를 승인하는 안티 페미니즘, 성소수자 혐오, 인종차별주의자의 강연과 페미니즘, 퀴어운동, 인권운동의 강연이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페미니즘 강연이 족족 취소되고 있는데. 이런 강연이 취소되는 것과, 강의실 안팎에서 성차별과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는 교수의 강연을 보이콧하는 것은 동일선상의 일이 아닌데도, 모두 "지적 안전공간"을 찾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문제. 그런 점에서 캔슬컬쳐에 대한 논란 자체가 이미 기울어져 있기도 하다. "주변인과 소수자만 취소되던 문화가 주류인과 다수자 역시 취소될 수 있는 문화"(64쪽)가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것은 온당한 지적.


캔슬 컬쳐의 선택적 적용이 문제라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취소문화를 확장하여 모두를 취소의 위험에 노출하는 길이 있고, 전면적으로 축소하여 누구도 섣불리 취소되지 않도록 하는 길. 그런데 취소의 기준과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무엇을 왜 어떻게 취소하고자 하는가. 차별과 편견 때문인가 아니면 권위에의 도전인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서로 추방하고 취소하는 문화가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저자가 존 롤스의 배경정의 개념을 인용하며 지적하듯이 우리 사회의 불공정이 구조적으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항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판단해서 일 수도 있으며, 제도적 병리가 만성적이라면 차라리 "저항과 내전"의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진정한 사회협동의 조건을 만들거나, 우리의 저항에 직면하라"는 선전포고라는 것.


하지만 "인터넷 세대는 윤리를 심리화하고 심리를 윤리화한다"(59쪽)는 것 역시 중요한 분석.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공동체 등에서 통용되던 안전공간의 개념은 이제 학내 대중 구성원들 전반에 걸쳐 높아진 차별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하면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안전공간은 임시도피처가 아니라 보편의 요구가 되기 시작했다. 중간지대. 타협과 대화. 이런 것에 대한 경험도 사회적 상상력도 없는 상태에서 기분이 입장이 되고, 정치적 순결함과 무해함에 대한 강박적 욕망 앞에서 남는 것은 '사라지는 것' '취소시키는 것' 이 두가지 뿐이 된 상황.


역시 이 리뷰의 리뷰에도 답은 없다. 캔슬 컬쳐가 기존 제도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상대의 결함을 찾아내는데 몰두하고 근거없이 상대를 비방하는 괴롭힘 문화가 되고 있는 점도 어느 정도 사실이고, 다른 한편으로 효용감이 있는 유효한 정치적 수단인 것도 사실이니까. 결국 지금으로선 하나 하나 좋은 사례 문제적인 사례 더 고민해볼 사례 등 구체적 경험치를 쌓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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